나눔과 비움 ' 나 아닌것 ' 들과의 공생을 꿈꾸며 반칠환


' 나 아닌것 ' 들과의 공생을 꿈꾸며 , 장회익 녹색대학 총장

새들의 교육난을 들어보셨는가? 다람쥐들의 선행학습, 물고기들의 과외, 노루들의 조기유학 바람을 들어 보셨는가? 학벌과 패거리를 위해서, 동물들 최고의 명문 籃攬?대학篤?가기 위해 머리가 빠지도록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공부하는 어린이, 청소년 동물들을 보았는가? 동물나라의 주류인 대머리독수리의 말을 배우기 위해서 혀 수술을 받는 제3세계의 앵무새 어린이를 보았는가? 과중한 입시공포로 21층 참나무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다람쥐를 보았는가?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탄식하며 곰방대를 빨고 있는 호랑이를 보았는가?

인간의 뛰어난 지력과 학습 능력은 뭇 동물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으로,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안락함을 가져다주었다. 더불어 세계 인식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켜 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학문이 발달할수록 개인의 직관과 통찰력이 줄어드는 것은 무슨 때문인가? 고도로 세련된 과학문명의 빛을 바라볼수록 두려운 생각이 스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머릿속에 잡다한 지식을 채우면 채울수록 달팽이의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개구리의 교외별전(敎外別傳)이 부러운 까닭은 무엇인가?

청미래 마을 프로젝트
꼬리를 무는 질문을 앞세워 달려간 곳은 그러나 ‘앞산 대학’이 아니고 한창 개발중인 구 일산 변두리 마을의 한 아파트였다. 지면에서 본 ‘낯익은 초면’의 얼굴로 나를 맞이한 것은 서울대 물리학부 장회익 교수였다. 깡마른 체구지만 곧고 단아한 모습이 영락없는 선비의 모습이다. 저이는 올봄 경남 함양에서 문을 여는 ‘녹색대학’의 총장으로 내정되었다.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듯 새 집 내음이 가시지 않은 아파트 베란다에는 연분홍 동백이 활짝 피어 있었다.

“녹색대학에 대해서 소개해 주십시오.”
“녹색대학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대안 대학입니다. 경남 함양에 위치한 폐교 백전중학교를 수리해서 올 봄에 열게 되었습니다. 녹색대학은 제도권 대학교육의 한계를 절감한 사람들이 뜻을 모아 9년만에 선보이는 새로운 대학입니다.”
녹색대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대안적 생태공동체의 일부로 건설되고 있다는 점이다. ‘청미래 마을’로 명명된 이 공동체에는 1차로 20여 가구가 입주하여 유기농을 지으며 정착할 예정이다. 이 마을에서는 독자적인 녹색 화폐를 사용하고, 주민자치회를 통해 마을의 모든 일들이 결정된다. 녹색대학의 학생들은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의무적으로 공동농장의 일에 참여함으로써 교실 밖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녹색대학에서는 시험도, 숙제도 최소화하고 성적도 등급을 매기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스스로 문제 제기를 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물고기를 주지 않고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4년 후 졸업할 때에는 자기 내면의 교수님 한 분을 모시고 나가도록 할 겁니다.”
“녹색대학이 추구하는 교육 목표는 어떤 것입니까?”
“녹색대학을 설립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전문 일꾼의 양성에 앞서 ‘제대로 된 교육’이 무엇인가를 새로운 방식으로 추구해 보려는 것입니다. 졸업장과 취업 위주가 아니라 앎과 삶을 일치시키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하며, 소박하고 순환적인 삶을 추구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첫 신입생들을 뽑았다고 들었는데요, 선발 과정이 궁금합니다.”
“수능, 내신 성적과 관계없이 무시험으로 뽑았습니다. 지원서와 자기 소개서를 받았을 뿐입니다. 대신 심층 면접을 통해 우리는 ‘이 학생이 우리 교육에 적합한가?’를, 학생들은 ‘내가 원하는 대학인가?’를 살펴본 다음 입학을 결정했습니다. 상호 면접인 셈이지요. 수와 질적인 면에서 우리가 원하는 적정 인원을 뽑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모두 서른다섯 명입니다. 신입생들은 모두 내 힘으로 좋은 학교, 좋은 교육을 해 보자는 각오가 대단합니다.”
녹색대학에는 학부 과정에 녹색문화학, 녹색살림학, 생명농업학, 생태건축학, 풍수풍류학과 등이 있으며, 대학원은 자연의학, 침구학, 녹색교육학, 생태건축학 등의 과정이 있다. 학부생은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대학원생은 주말 수업을 받게 된다.

온생명이 건강한 세상
서울대 정년을 8개월쯤 남겨둔 그이가 퇴직을 서둘러, 녹색대학으로 달려간 데에는 까닭이 있다. 그것은 그이의 오랜 관심사 중의 하나가 생명과 생태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이는 이른바 ‘온생명론’의 주창자이다.
물리학자인 그이는 주변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 ‘생명’이라는 주제를 천착해 왔다. 그런데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선행되었음에도 ‘생명’에 대한 정의조차 명쾌히 정리되지 않은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나름대로 생명을 연구하던 그이는 지구상에 나타난 모든 생명들이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음을 깨닫고 이를 ‘온생명’이라 이름하게 된다. 이에 따르면 한 개체 생명의 생존은 필연적으로 온생명과 함께 이루어진다. 또한 자신의 생존이 자신을 제외한 온생명의 나머지 부분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나를 살리는 것은 나 아닌 것들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자 그이는 이 지구의 ‘온생명’을 해치는 문명의 그늘에 시선을 던지게 된다. “우리의 문명은 반생태적, 반온생명적입니다.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조화롭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온생명이 먼저 건강해야 합니다. 동, 식물 혹은 물과 공기까지도 우리 몸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고마운 존재들을 억지로 변화시키고 개조하며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이는 온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위기의식을 폭넓게 공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모든 교육과 학문도 온생명 중심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도 보다 폭넓은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이 자기 눈으로 온생명을 볼 수 있도록 교육의 기초를 닦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자신의 생각을 몸으로 실현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녹색 꿈을 꿈꾸며
제도교육의 폐해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많으나 개인이 그것을 거부하기란 매우 어렵다. 생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큰 마음 내어 귀농한 사람들의 경우도 아이들의 교육문제로 도시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 녹색대학 생태공동체는 그 동안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머물러 있는 대안학교 운동의 마지막 단계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교육을 마친 사람들이 자립적 공동체에 뿌리박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구체적이며 삶과 밀착되어 보인다.
녹색대학에 합격한 학생들 중에도 학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포기한 경우도 있다. 그이도 처음 가는 길이 두렵지 않을까?
“두려워하면 일을 못합니다. 교육에서는 실험을 해야 합니다.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이 있습니다.”
젊은이 못지않은 결의와 패기가 엿보인다.
녹색대학은 인가를 받지도 않았고, 고작 폐교된 교사(校舍) 하나를 바탕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새로운 교육과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로부터 지대한 관심과 주목을 얻고 있다. 저 대안 교육의 성패는 우리 교육의 파행이 보다 오래 고착될지 새로운 궤도에 접어들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온생명을 꿈꾸는 새로운 세상의 한복판에 저이가 서 있다.

글쓴이 반칠환은 시인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대산문화재단에서 시부문 창작지원 수혜를 받았고, 서라벌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뜰채로 죽은 별은 건지는 사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