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얼굴 가족아카데미아 공동대표 이근후,이동원 부부 이인영



남편과 아내
화사한 봄날. 삼청동의 어느 오래된 이층집 정원에 앉았다.
어머니 방이었다던 이층 방 창 가까이 후박나무, 아직은 덜 자란 이파리를 내놓고 봄볕을 받고 있다. ‘예띠의 집’ 간판 뒷 벽면의 빨간 바탕엔 잎의 회색 그림자가 멋지게 그림을 확대해 그리고…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며 4월 새잎의 아름다움을 알려준다.
바람결에 풍경소리 맑게 울리면 가까이 전봇대의 전깃줄도 덩달아 정답다.
이대 부속병원 정신과 과장 및 교수를 역임한 남편(이근후)과 이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낸 아내(이동원)가 네 자녀를 키우고 어머니와 살았을 그 집. 그 정원에 앉자 세월도 따라왔는지 오랜 지기마냥 편하다.

정년 퇴임하고 더 열심인 두 학자에게 연애 얘기부터 물었다. “여동생 친구 중에 좋은 사람이 몇 있었는데 같이 뭉쳐 다녀 고민했어요(이동원 교수도 그들 중 하나). 용광로로 좋은 점만 뽑아 한 사람 만들면 좋겠는데… 선보러 다닌다는 말이 들려….” 그는 빙긋이 얘기하고 아내도 미소로 듣고 있다.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의 ‘향수’ 중에서

사철 발벗진 않았어도 향수 어린 곳에서, 의학도와 사회학도로 만난 최고의 지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호기심이 발동한다. 현재 부부는 ‘가족아카데미아’ 공동대표로 건강한 가족, 건강한 사회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그들은 바라보는 시각도 참으로 조화롭다. 아내가 거시적으로 사회를 내다보면, 남편은 개인의 내면을 통한 미시적인 깊은 성찰로 전체를 말해 준다. 역동과 변화의 이 시대에 부부가 뭔가를 할 수밖에 없는 건 운명처럼 당연하다.
하나, 그들의 교육은 꼭 강의실에서 받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부부의 삶을 들여다보면 산 공부가 되고 내 가정의 모습을 절로 돌아보게 되니까.

삼대(三代)
부부는 결혼한 네 자녀와 구기동에 집을 지어 함께 살고 있다. 순전히 큰 아들이 발의해서 이뤄진 일이다. 나머지 형제들의 동의를 받아 가족 수, 경제 형편에 따라 평수를 달리해 집을 지었다.
삼대가 사는 ‘예띠의 집’(그는 이 집 이름도 똑같이 지었다) 헌장엔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들은 각 가정이 고유한 가치관과 종교관을 갖고 간섭없이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서로 같음은 나누면서 즐기고 다름은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우리들은 아무리 좋은 세상도 나 없이는 없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소중한 나도 세상 없인 없다는 것을 공감합니다.
-우리들은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나누면서 항상 이웃과 함께 이를 봉사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부부는 말하고 있다.
철저히 독립성이 유지되므로 자식은 일주일 내내 못 볼 때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손주들은 매일 만난다. 일층 할머니 할아버지 집엔 제일 성능 좋은 컴퓨터가 2대나 있기 때문이다.
이동원 대표가 개발한 ‘예비노인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내용을 다룬다.
늦어도 50대부터는 노년을 준비하고 연습해야 한다. 젊을 때부터 자녀에게 투자해야 노년기에 가족으로부터 정서적 지원을 얻을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손자보기’를 꼽는다.
참 확실한 답을 시원하게 제시하고 있다. 손자보기는 자식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을 위한 일이다. 노인은 자부심을 얻게 된다. 육체활동은 건강을 지키게 한다. 물론 전적으로 양육을 떠맡는 것은 무리. 하루에 몇 시간만, 혹은 주말에만 본다든가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왕 손주들을 보려면 공부해서 잘 보살피도록 한다.
이근후, 이동원 부부의 경우, 매일 저녁 식사는 도우미가 있는 큰아들 집에서 하지만 나머진 당번제로 한다. 한 달에 한 번(한 자녀로선 네 달에 한 번) 아버지가 지정한 날에 여행을 가든 함께 떠난다. 자녀들은 적금으로 가족 기금을 마련해 공동 경비로 쓴다.
부모도, 자녀도, 손주도 좋고, 맏이도 부담이 적은, 이들만의 창조적 가족형태이다. 참 재밌는 구조다.

예띠(Yeti)
‘예띠’란 히말라야에 살고 있다는 네팔 전설 속의 설인이다. 실존이든 아니든 네팔이나 파밀 고원의 사람들의 정신적 내면에는 이미 실존 이상의 존재로, 그곳 사람들처럼 서로 돕고 사는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이근후 대표가 얼마나 네팔과 히말라야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인 순수의 땅, 영혼과 신의 목소리가 있다는 그 땅을.
그는 그 외에도 열린마음클리닉 원장이면서 시인이고, 석불 사진 전문가로 석불연구회 회장이며, 광명보육원 이사요, 네팔 의료봉사단의 봉사자, 불교 상담가이다. 그가 그 많은 역할 중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만 하라면 무엇을 할 건지 궁금하다. 혹 1989년부터 매년 해 온 네팔의료봉사단의 봉사자는 아닐는지….



‘단 한번이라도 히말라야를 걸어 본 사람이라면 다시는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김인자 씨도 동감하였다. 이 대표도 히말라야를 다녀왔고 그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곳을 찾고 있다.
이미 의예과 시절 ‘학생산악연맹’을 설립했던 그에게 히말라야 등정은 오랜 꿈이었다. 1982년 ‘마칼루 원정대’가 결성되었고 문교부에서 지원을 했다. 산악인이며 교수인 그가 선택된 건 학술조사도 할 수 있는 적임자라서만은 아니리라. 그 내부에서 오랜 세월 꿈틀거리던 희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긴 꿈의 파장이 역동적인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히말라야가 매년 부르고 있다면 왠지 영적인 힘에 무게를 더 두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외동아들인 그는 산을 좋아했다. 산에 가면 평안했다. ‘강가에 가지 마라’는 부모의 엄명을 고교 시절 가끔은 어겼지만 속이긴 힘들었다. 산은 좀 나았다. 산은 그에겐 반쪽의 해방과도 같았다. 그의 어머니는 대단히 진취적인 신여성으로 봉사도 많이 하셨다. 하지만 아들 사랑만큼은 너무 무거웠다.
그가 말한다. “자녀의 자발성은 부모가 용납하는 수준만큼 자란다”고. 자녀의 독립성도 부모가 먼저 독립을 용납할 수 있는 만큼이겠다는 말로도 이해되며 수긍이 간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녀를 억압했던 경험이 누구라도 있을 수 있으므로.
무욕의 땅 히말라야의 정기에 휩싸여서인가. 그는 히말라야를 걷듯 평평한 땅으로 내려와서도 형형한 눈빛으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

신명나게 사세요
“사인 했어?” 네팔 아이가 물었다.
절친한 네팔 친구와 자녀를 1년씩 교환해 살며, 서로의 문화를 접하도록 했기에 네팔 아이가 있었다. 이 약속은 지금까지 이어져 손주들도 교환 손주로 오가고 있다.
아이들 어릴 때 일이다. ‘엄마 아빠 돌아가시면 이 집 누가 갖나?’ 이런 게 주제였나 보다. 다들 이런 저런 이유로 안 가져도 된다고 했다. 그때 셋째가 “그럼 이 집은 내꺼네?” 하고 웃었다. 그때 네팔 아이가 불쑥 사인 얘길 꺼낸 것이다.
지식인이며 사장인 네팔 친구는 사회에 재산을 환원하기로 하고, 자식은 공부와 결혼만 시켜주기로 했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은 어려도 문서에 사인을 했다는 것이다.
그 애의 은근한 당당함이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 그의 2남 2녀 자녀들은 부모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상의 끝에 500만 원씩을 들여 결혼을 했다.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형식만 지키고. 늘 자녀들과 혼인 문화에 대해 얘기했었다. 살아가는 데 무엇을 얼마나 차려놓고 시작하는가보다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했다. 예단으로 100만 원 정도, 결혼식은 대학교 복지관에서, 식사는 구내 식당에서 대접했다.
“신명나게 사십시오. 창의적으로 사십시오. 잠재력을 서로 키우도록 도우십시오.”의 세 가지가 이근후 대표가 주례사에서 강조하는 말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신명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꽃피는 가족 문화
“한 집에 살아도 같은 신분이 아니에요. 그는 중산층이고 난 서민이에요.”
부부는 무일푼으로 시작하고 오히려 오랜기간 빚을 져야만 했다. 남편의 뜻이 다른 곳에 있으니 아무리 부부 교수라도 돈이 부족했다.
“그래도 저는 어느 선이 있다고 봐요. 능력, 시간, 노력봉사도….” 그녀가 그를 수도승이 아님에도 현실 속에서 존경받는 인격자의 삶을 살게 한 장본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눈빛이 담담히 빛난다.
“본인들만 여행하고 즐기는 가족은 이기적인 가족입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갈등을 해결해 나가고 사회에 열려 있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고 말했다. 우리는 급격한 변화로 세대차가 특히 큰 만큼, 과거에 대한 환상을 경계하고 우리 나름대로의 규범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조직 운영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요즘 결혼 문화도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결혼할 때 이미 이혼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상대에게 환상을 갖고 탐색하지 않는 결혼, 정서적으로 엄마로부터 자립하지 못한 부부 등. 긴장은 있어야만 한다. 소위 애정 호르몬은 몇 개월 지나면 떨어지게 되므로. 그뿐인가? 여성의 경제력, 평등사상 등으로 결혼 안하는 사람의 비율도 높아만 간다고 한다.

두 학자는 결론지었다.
‘대대적인 가족문화운동이 절실하다. 결혼 준비 교육도 남녀가 받아야 한다. 청소년 교육, 부모 교육, 노인 교육 등도 절실하다. 가족도 디자인해서 설계하고, 결혼 5개년 계획 등을 세워 같은 방향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
그래서 부부는 정년 후 더 바쁘다. 석불 사진 인연으로 네팔 문화 예술에도 정통하게 된 이근후 대표. 전시회를 통한 수익은 양쪽 작가들이 서로 NGO에 내놓았고, 남은 작품을 봉사자에게 한 점씩 나눠도 준다. 삼청동 집도 가족아카데미아 세미나실로 제공했다. 마구 내놓다 아내의 선(Limitation)에 걸리지나 않을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깨달음이기에 이 부부에게선 히말라야의 천년 침묵이 주는 눈빛 냄새가 난다. 예띠의 냄새인가?

글쓴이 이인영은 아산재단 편집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