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얼굴 풀꽃평화연구소 정상명 부장 이인영


변화
풀꽃평화연구소 미화부장인 정상명 씨는 얼마 전 그만 둔 민간 환경단체 ‘풀꽃세상’의 창설자며 전 대표이다. 그녀의 사무실엔 소파 옆 두어 개의 난로가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고, 한쪽에 책꽂이, 한쪽엔 그려지다 만 캔버스, 그리고 차를 끓이는 공간이 절로 조용조용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게끔 만든다.
“지렁이는 익충인데… 달팽이는 모르겠어요. 농약을 안 치니 민달팽이가 있던데 배추 잎을 다 먹어치우던데요?”
처음 지어 본 농장의 경험을 떠올리며 친근함을 드러냈다.
“사람의 입장에서 그렇지요? 달팽이 입장에선 좀 같이 먹고 살아야 하는데요.”
그녀가 곱게 웃는다. 자연을 존경하고,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인간이 자연에게 그간의 일을 사과하고, 말없이 먼저 위해 주고 사랑으로 대한다면 과연 자연은 가만히 있을까? ‘스스로 당연히 그러한 자연(自然)이?’ ‘자연을 자연답게 놔두면 인간도 인간답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까?’ ‘자연스레 자연의 일부로?’… 사고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잔치
환경보호의 중요성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이제는 한 귀로 막힘없이 흘려버리는, 혹은 내 일이 아닌 양 느끼는 위험불감증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때 부드럽게 다가와 다르게 접근하며 귀에 박인 굳은살 풀어 주고 속삭이며 다시 조용히 말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요해요~”라고.
그들이 바로 ‘풀꽃세상’이며, 그들이 벌이는 일들이 ‘풀꽃운동’이다. 그 풀씨로 이름 붙여진 사람들이 ‘풀꽃상’을 마련하고 잔치를 벌인다. 자연을 초대해 상을 주는 상. 참으로 멋진 발상이다.
첫번째 상 ‘동강의 비오리’에서 시작하여 ‘보길도 갯돌’, ‘정선 민둥산 억새’, ‘인사동 골목길’, ‘새만금 갯벌의 백합’, ‘지리산 야생화 물봉선’, ‘지렁이’, ‘자전거’, ‘논’이 역대 수상물들이다.
비오리는 나그네새였지만 텃새가 되었고, 보길도 해변을 빛내 주는 아름다운 갯돌, 우리보다 덜 중요하지 않은 억새 한 포기, 메마른 땅에 흐르는 개울과 따뜻함을 주는 골목길, 갯벌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백합, 수몰되면 안 될 지리산 계곡의 물봉선, 자신이 살 수 없다면 사람도 살 수 없음을 말해 주는 지렁이, 세상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자전거, 우리 삶과 생명의 뿌리인 논….
그러나 풀꽃세상은 단순함으로 은은히, 그러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환경이 맘에 들어 눌러앉은 비오리… 동강댐 건설에 문제 있다’, ‘검은 예송리 해변의 갯돌 한두 개씩 가지고 가지 마세요’, ‘도시에서 잃어버린 골목길 같은 마음의 여백을 회복하자’, ‘새만금 간척사업의 문제’, ‘지리산 계곡 물은 댐 만들어 막지 말고 흘러야 한다’, ‘지렁이는 흙을 기름지게 하고 자양분인데 혐오하는 것 미안하다’, ‘자전거는 차처럼 환경파괴를 하지 않는다’, ‘땅과 이어주는 논 없애 공장 짓지 말자’며….

조약돌 도글도글…
그는 나의 혼의 조각이러뇨.
앓는 피에로의 설움과 첫길에
고달픈 청제비의 푸념겨운 지줄댐과,
꾀집어 아즉 붉어 오르는 피에 맺혀,
비 날리는 이국 거리를 탄식하며 헤매노나.
-정지용의 ‘조약돌’중에서

언젠가 갯돌을 도로 가져다 놓겠다는 사과 편지도 받았다. 탐욕을 느낀 것일까?
파도 소리와 더불어 돌돌돌 자르르 잘잘 바다를 연주하는 신비한 돌을 한 해에 놀러온 30만 명이 하나씩 가져가면 30만 개가 따로 놀고 있을 터. 개인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하게 만드는 건 큰 목소리의 구호보다 사랑을 호소하며 감수성의 민감한 지대를 부드럽게 터치하는 게 아닐까?

‘草英’
초영이란 딸이 있다. 하늘 나라에.
미국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그녀가 방학 때 집에 왔었다. 촛불을 켜 놓고 잠이 든 23살의 풋풋한 새봄 같던 딸이 화마에 눈앞에서 쓰러지고…. 8대의 소방차는 골목에 새로 들어선 몰염치한 건물에 막혀 소방도로를 확보하지 못해 그 기막힌 장면을 보고만 있었다. 화재의 순간 거실에 있었다던 그 어머니와 아버지…. 상상하는 게 힘이 들어 눈을 감고 싶다.
부모는 남아 그 사랑을 통곡하다 살기로, 그리고 살리기로 한다. 왜 그 아름답고 깨끗한 청춘들이 사랑만 남기고 일찍 부모 곁을 떠나는 건지. 그 아픔은, 그 절절함은 분출될 수밖에 없다. 넘치게 아프므로.
정상명 씨도 표현했다. 초영이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 시골집. 봄날 꽃짐을 지고 놀던 아이. 노란 국화와 대화하던 아이. 이름 ‘草英’ 그대로 ‘세상을 가득 덮는 풀씨’로 피어나고, ‘다시 태어난 여자아이’라는 뜻의 세례명 ‘레나떼’인양 ‘풀꽃세상’이 태어났다. ‘파리채로 세 번 두드리고 휴지를 많이 풀어 잡았다. 나는 벌레야 미안하다 이렇게 말하고 버렸다.’
떠나기 며칠 전 아이는 일기에 그렇게 썼다. 아이의 바람대로 ‘밝음의 힘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일에 주어진 나머지 시간을 보내자. 그리고 실천하자’고 어머니는 죽을 힘으로 결심했다.
‘고이 받아 안아 주세요. 그러면 제 나머지도 이 세상 선한 일에 바치겠습니다.’ 초영이가 가던 날 핫라인을 타고 올라가던 어미의 절절한 기도는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딸도 알고 친하게 지냈던 소설가 최성각 씨(풀꽃연구소 소장)가 적극 도왔다. 좋아하던 시골 춘천 집 마당 한쪽에 아이를 함께 묻던 그날, 그는 뜻을 다 알았다며, “세상에 다급하고 중요한 환경운동 합시다”며 동지가 되어 주었다.

사랑하는 것들
정상명 씨는 화가이다. 사무실 캔버스의 유화 물감은 기름 냄새를 풍긴 지 오래된 듯하다. 그래도 그녀의 갤러리에선 아름다운 시상식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다른 곳에서 열릴 때도 있지만….
본상은 자연에게, 부상은 사람에게 준다. KBS 자연다큐멘터리 팀, 보길도 사람들, 고서점 ‘통문관’ 주인 이겸로 옹, 실상사 세 스님들도 그들 중에 있다.
1988년 그녀는 녹색 갤러리를 산울림 소극장 옆에 열었다. 돈이 없어도 그림이 좋아서 자기 세상을 그려대는 젊은 작가들에게 무료로 발표를 허락한 갤러리. 갤러리는 10여 년 후 이곳 홍대 근처에 새로 모습을 드러내고 오픈을 했다. 건물 앞 머리엔 지렁이 조형물이 걸려 있다.
풀씨들이 사랑하는 또 다른 하나, 자전거.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공산품이라는 자전거. 자전거가 오래된 문 옆에, 담벼락 곁, 혹은 나무 옆에 세워져 있는 모습은 아름답다. 포장되지 않은 흙 길, 혹은 산모퉁이 길을 달려나가는 자전거. 흙바람을 일으켜도 미소가 떠오른다.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일까?

화해
추운 늦가을 등산 가서 진달래 꽃을 만났을 때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아닌데?….
늦 봄 강가에 하나 둘 피어나던 코스모스 봤을 때도 선선한 가을 바람을 떠올리며 어수선한 계절 탓을 했다. 온난화 연구를 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기지 근처 빙하가 녹는 것을 몰랐다고 했을 때도, 태풍이 몰아쳐 바닷물이 지하 노래방까지 침투했을 때도… 뭔가 심상치 않았다. 산업화, 자동차와 석유 문명, 페트병 증후군을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눈치채고 있다.
일부 어머니들은 자식을 챙기기 시작했다. 페트병의 콜라, 주스 마시지 마라. 캔도…. 내복 입고 다녀라.
그러나 인류 탐욕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선진 조국의 염원과 환경과 평화 사이의 그 경계지점에서 화해의 노력은 투쟁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축복
긍정으로 운동하는 정상명 씨는 요즘 풀꽃평화연구소에 푹 빠져 있다. 이 연구소에서 풀꽃평화 목소리를 내고, 친환경적 삶을 사는 인디언을 공부하고,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히말라야를 공부한다. 환경 책읽기 운동도 하고 있다.
그녀가 미소지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금 딸 얘기로 돌아갔다.
“그애가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 생각하고 벌떡 일어났어요. 두 달 후쯤 발기대회를 열었어요. 행동만이 절 견디게 했어요.”
그녀의 철저히 선(善)을 지향한 행동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처음 정선군 주민들은 “무슨 억새풀에게 상을 주냐?”며 시큰둥했지만 일 년 쯤 지나자 ‘환경상’을 만들어 자연에게 드리고 있었다. 시민과 힘을 합쳐 동강댐 건설도 막았다. 삼보일배 운동도 벌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단란한 가족들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돌려주었다. 어린 풀씨들은 이제 지렁이를 혐오하지 않는다. 자녀와 이별한 애끓는 부모에게도 자연을 통해 희망을 갖게 했다.
“고통도 축복이에요”라는 말을 하기까지 그녀가 흘렸던 눈물은 얼마나 되는 걸까?
잦아드는 목소리로 미소짓는 그녀의 눈가에 방울들이 이슬처럼 총총 매달렸다.

글쓴이 이인영은 아산재단 편집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