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행복한 청소부 선생님 최형복 씨 방은경



교사와 환경미화원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최형복 씨를 만났을 때 ‘행복한 청소부’가 떠올랐다.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점이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초등학교 교사로 34년을 지내온 최형복 씨가 환경미화원 생활을 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아파트 계단 및 주변 청소, 폐품과 쓰레기 분리 수거 등이 그가 주로 하는 일이다. 때론 전기, 수도를 고치기도 하고, 고장 난 물건을 수리해 주기도 한다. 매일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가 그의 근무 시간. 가냘픈 체구에 올해로 고희에 접어든 그에게 일이 힘에 부칠 만도 한데, 그는 이젠 요령이 생겨 하나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일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제가 11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께서 홀로 저희 5남매를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남의 창고를 빌려 가마니를 깔고 살았고, 학창 시절에는 도시락 한 번 싸 가지 못했을 정도로 너무나도 가난했죠. 다행히 아버지와 잘 아시던 분께서 저희를 많이 도와 주셨지요.”
어려운 가운데서도 학업에 열심이었고 공부도 잘했다. 몸이 약했던 그는 고교 졸업 후 건강이 악화돼 5년간 투병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에도 경북대 사범대에 지원해 과 수석으로 합격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포기해야만 했다.
그 후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대구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볼 때면 예전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학용품도 사 주고 도시락도 싸다 주는 등 따뜻하게 돌봐 주곤 했단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쓰러져 앰뷸런스로 실려갈 정도로 건강이 너무나도 좋지 않았던 그는 결국 1998년에 교직을 떠나게 된다.

거리의 성자
6개월간 쉬면서 건강을 회복한 그는 일자리를 찾아보았지만 연로한 나이에 몸도 허약한 그가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란 어렵기만 했다. 우연히 아파트 환경미화원을 구한다는 짤막한 기사를 보고 바로 달려가 열심히 일을 하겠으니 꼭 써 달라고 했던 것이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처음에는 아내가 반대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그의 뜻을 잘 이해해 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일하는 자체도 기쁘지만, 일을 해서 받는 월급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서 더 큰 기쁨을 느낍니다.”
매월 50만 원 가량의 월급을 타면 교통비 1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쓰고 있다. 그가 어려울 때 남의 도움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또한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경우를 대비해 시신기증 등록과 장기기증 등록도 하였다고 한다.

행복이란
최형복 씨는 글쓰기를 즐긴다. 워낙 자주 글을 쓰다 보니 아는 사람이 A4 용지를 선물해 줬을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한다. 책도 많이 읽고 틈틈이 글을 써서 나중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도 한번 써보고 싶다고 했다. 또한 음악을 좋아해 피아노 연주도 즐긴다. 그의 생활이 대구 지역에서는 조금 알려져서 노후 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강연을 가끔씩 하기도 한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누구나가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어쩌면 그 사실을 늘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을 하고 싶다는 최형복 씨야말로 정말로 ‘행복한 청소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 방은경은 아산재단 편집실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