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사랑을 챙겨 찾아가는 병원, 서울아산병원 의료봉사팀 임형균



8년째 仁術로 이어온 제주 사랑
1997년부터 시작된 서울아산병원의 제주 농어촌 의료봉사로 그 동안 4,000여 명 이상이 무료진료 혜택을 입었다. 2월 25일부터 이틀 반 동안 진료하는 이번 의료봉사팀은 서울아산병원의 김우열 자문교수를 팀장으로 의사 6명, 간호사 4명, 약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와 지원 인력까지 20명 가까운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여기에 X선 검사, 심전도와 혈액검사를 현장에서 바로 할 수 있는 대형 순회진료 버스까지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까지 찾아왔다. 제주도 무료진료는 매년 장소를 바꿔가며 일년에 한 번씩 이뤄지며, 대개 하루에 한 동네씩 두 곳에서 진행된다.
매스컴 등에 흔히 소개되는 ‘무료진료’라고 하면 의사 몇 명이 청진기와 같은 간단한 의료 장비에 약만 좀 들고 가서 의례적으로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 바꿔야 할 것 같다. 서울아산병원의 의료봉사팀은 ‘작은 병원’ 수준이다. 하루 진료인원만 300~400명을 웃돌아 북제주군 한경면과 남제주군 안덕면 두 곳에서 이번 진료 기간 중 800여 명이 진료를 받았다.
다른 농어촌과 비슷하지만, 제주도의 농어촌 지역은 의료 수준이 무척 낙후돼 있다. 농어촌에도 작은 병·의원이나 보건소가 없는 것은 아니나, 조금 큰 병에라도 걸리면 제주시까지 가야 한다. 한경면에서 버스를 타고 제주시의 큰 병원에 다녀오려면 하루 농사일을 못한다.
하루 일까지 못하는 탓에 어지간히 아파도 그냥 참고 견디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의 노인들이 나이 들어 찾아오는 관절염,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각종 퇴행성 질환을 몇 개씩 갖고 있다.

“참 좋네”
“어르신, 이 약은 아침에 드시구요. 이 약은 저녁에 드셔야 해요. 아시겠지요.”
진료를 받고 약을 타는 노인들에게 약 먹는 방법을 설명하는 약사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이상 높았다. 대부분이 60세를 넘는 노인 환자들이라 가는귀가 먹은 사람들이 많은 탓이었다.
허리가 아파서 정형외과 진료를 받은 좌태인(68) 할아버지는 간호사와 서울에 가서 진료받을 수 있는 지를 상의했다. “제주시의 큰 병원에서 진단받고 치료를 몇 번 받았지만, 잘 낫지 않아요.”
간호사 이순진 과장이 진료 기록지를 보고, “서울의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으실 수 있도록 농협을 통해 연락을 꼭 해드리겠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밝게 웃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제주뿐 아니라 연중 전국을 돌며 무료진료 활동을 하며, 농어촌 지역의 처지가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500만 원 안팎까지 치료비도 지원해 준다.
“허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고 무릎도 아파. 안 아픈 데가 없어서 일부러 오늘 여기 왔거든.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일 좀 고만하고 쉬어야 좋아진다고 하네. 아이고, 놀기만 하면 산이라도 넘어 다닐 수 있지만 어디 놀 팔자가 돼야 말이지.” 67세 동갑내기인 김순월(북제주군 한경면 한원리), 조남양(북제주군 한경면 낙천리) 할머니는 진료 결과 큰 병이 없다는 말을 들어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 아가씨들이 참 시원하고 싹싹하게 말을 잘 해 주니 참 좋네.” 기자에게 ‘누가 더 젊어 보이냐’고 웃던 두 할머니는 “서울 큰 병원에서 일년에 한 번씩 우리 마을에 와서 무료진료 좀 해주면 좋겠다고 신문에 써 달라”고 했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7년째 서울아산병원과의 무료진료 업무를 맡아 오고 있는 농협 제주지역본부 고혜영 차장대우는 “만성질환을 가진 어르신들이 한 번 진료받는다고 금방 낫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 큰 병원의 의사 선생님을 한 번 본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무료진료를 받은 청각장애 어린이가 재단의 지원으로 인공와우 이식술을 받고 청각을 회복, 그 아이의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었던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무료 진료를 받은 환자들 중에 10~15명은 농협의 추천을 통해 서울아산병원에 가서 수술이나 치료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의료봉사팀은 환자의 진료 기록을 다 보관해 둔다. 서울아산병원은 정주영 아산사회복지재단 초대 이사장의 설립 이념에 따라 1989년 이후 지금까지 100억 원을 들여 무료 진료 사업을 해오고 있으며, 12만여 명이 혜택을 입었다.

글쓴이 임형균은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