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가상화폐 '두루'로 만드는 행복한 마을, 한밭레츠 염복남



현대판 품앗이
이 공동체의 회원들은 서로간에 ‘두루’를 통해 거래한다. ‘두루두루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라’는 뜻의 ‘두루’는 지역 가상 화폐이다. ‘레츠’를 굳이 번역하면 ‘지역 교환 거래 체계’이지만 우리 정서상 ‘현대판 품앗이’가 더 적절한 표현이다. ‘사람의 얼굴을 한 화폐’인 두루를 통해서 회원간의 품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즉, 두루를 쓰면 쓸수록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
“‘교환의 기준’이라는 화폐 본래의 기능을 되살리려고 노력할 때에 비로소 돈 때문에 왜곡된 삶의 주름이 펴질 것입니다.” 한밭레츠의 ‘두루지기’ 박범준 씨가 말한다. ‘두루’는 실제 화폐와 똑같은 교환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자본주의 화폐가 지닌 ‘소유’와 ‘축적’의 기능을 지양하고 ‘나눔’과 ‘보살핌’의 의미를 실천하고자 한다.

정을 담은 화폐
현재 이 시스템은 전세계에 2,000여 개가 존재한다고 한다. 외국에서 도입한 레츠의 두루는 ‘외국의 것을 닮은 화폐’이지만, 그보다는 ‘정을 담은 화폐’라고 하고 싶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거래한다기보다는 품을 나누기 때문이다.
“개인이 가진 모든 것, 우리가 살아가는 데 드는 모든 것, 시간이나 노력까지도 나눌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군가는 그것을 필요로 할 테니까요. 전문적이지 않은 기술이나 쓰지 않고 놀리는 물품들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중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회원들은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품앗이 학교’도 개설하였다. 회원들은 이 학교에서 강습료로 두루를 주고받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 외국어, 컴퓨터, 풍물, 붓글씨 등을 강습한다. 정기 회원 모임인 ‘품앗이 만찬’도 갖는다. 만찬에는 회원들이 각자 준비한 음식으로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친목을 도모한다. 장기 자랑도 펼치고, 때로는 공동으로 김장도 하며 유대감을 돈독히 한다. 만찬 중에는 ‘품앗이 경매’도 있어서 각종 수공예품, 농산물, 재활용품 등을 경매 형식을 빌어 현장에서 직접 거래하기도 한다.



돈 없어도 나눌 줄 아는 사람들
평상시의 품 나누기는 주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이루어진다. 다음은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들이다.
“풀꽃으로부터 손으로 만든 멋쥔~ 축구공 받았습니다. 2만 두루*2=4만 두루입니다. 날건달이 1개 받았구요. 원 주인인 다른 분은 가격이 비싸서ㅠㅠ 포기하시겠다구 해서, 3순위였던 다니엘(김기홍) 님 차지가 되었습니다. 추카추카~^^ 예쁜 한지에 포장까지 어여쁘게 해 주셔서 덥석 받기에 황송할 정도였어요. 선물 받은 조카 놈, 입이 함박만해서 갔습니다.^^ 풀꽃, 감사하옵니다. 꾸벅.” -두루지기
“고맙습니다. 부디 집안 기물 깨는 일없이 즐기기를 바랍니다.” -풀꽃
“저도 어제 축구공을 받았습니다. 서연이(딸)가 너무 좋아합니다. 공 갖고 노는 모습을 사진 찍어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공 배달해 주신 분, 고맙습니다.” -다니엘

한밭레츠는 돈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 450명의 회원들은 ‘돈 없이도 살기’에 도전한다. “돈이 없기 때문에 서로 간에 가치를 교환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측량 단위가 없기 때문에 집을 짓지 못한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과감히 말하는 그들이다. 이 공동체가 처음 논의된 것이 기존 화폐 경제가 붕괴할 위기에 처했던 IMF 직후이며, 당시 회원들 중에는 전문 능력을 가진 실직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비 온 뒤 질척해진 땅을 보며 불평하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눈을 하늘에 두고 무지개 희망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 한밭레츠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를 보낸다.

글쓴이 염복남은 아산장학생으로, 현재 본지 학생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