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아줌마들의 자기 이름 찾기, 양원주부학교 조은수



청년의 열정
이른 아침 사람을 깨우는 북청물장수의 삐걱삐걱~ 솨악~ 소리. 향학열에 샘물을 부어놓는 함경남도 북청에서 피난나온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들뿐 아니라 전쟁 고아, 돈없는 사람들을 함께 가르쳤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모여 가르치고 공부하던 곳이 1953년 서울 시장의 인가를 받아 일성고등공민학교가 되었다.
1963년 학교는 재정난으로 길바닥에서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야학을 하고 있던 한 청년이 노천 수업 하는 사진을 보고 무작정 그들을 찾아갔다. 청년은 주변 사람들에게 사람 키우는 일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해서 돈을 마련했다. 그리고 자신의 야학까지 이곳에 옮김으로써 일성고등공민학교와 인연을 맺었고, 일성고등학교는 양원주부학교의 모체가 되었다. 바로 그 청년, 40년 동안 못배운 자들에게 배움의 축복을 주고 있는 이선재 교장이다.

마음과 뜻을 모아
이선재 교장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게 된 것은 바로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6·25때 피난 나와 서울에서 살다가 인민군에게 잡혀갔고, 1·4후퇴 때 다시 피난 나오고, 고학을 하며 인쇄소에서 일하면서 야간 대학을 다니고…. 비극적인 우리 역사의 현장 속에 살면서 그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배우려는 욕구는 간절해지고 커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못배운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기에 무작정 팔을 걷고 나섰다.
정신적인 가치에, 선한 일에 무작정 자신을 내어 주는 이선재 교장은 지금의 양원주부학교가 있기까지에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했기 때문이었다고 돌아본다. 10년 동안 무보수 선생님으로 일해 주신 분, 17년 동안 운영 및 월급에 필요한 비용을 대 주신 분, 또한 이곳에서의 배움에 보답하고자 봉사하는 성공한 여러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배움에 열성을 내 주는 주부님들…. 하지만 안타까움도 있다.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양원주부학교는 평생교육시설에 속하므로 정부로부터 단 한 푼의 지원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이곳의 주부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궂은 일도 마다않은 어머니들, 어려운 시대에 오빠, 남동생을 위해 교육의 기회를 양보했던 누이들이다. 마땅히 사회가 보상해 주어야 하겠지만 돈이 안되는 일은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 시대 아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인데 우리가 이 일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죠.” 이선재 교장의 한숨 섞인 독백이다.



된사람’을 만드는 일
양원주부학교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재정 후원을 받지 않는다. 물론, 순수한 의미의 후원이라면 받겠지만 요즘은 그러한 선의의 도움을 받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독립정신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이선재 교장은 학생들이 스스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정신을 가지기를 바란다.
“내가 지금의 나인 것은 이 시대, 내 부모, 덧붙여 운, 이런 요소들이 작용하는데요. 이것을 원망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들도 내 조건이고, 이런 조건들을 잘 경영해서 내 자리에서 나에게 맞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죠. 그게 제가 생각하는 독립이에요.”
교사는 ‘든 사람’을 만들기 전에 ‘된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이선재 교장의 믿음이다. 교육의 시작은 된사람을 만드는 일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오늘도 양원주부학교에서 주부들은 만족과 자신감과 열정을 품는다. 그리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당당한 세 글자 이름을 가진 한 사람, 꿈꾸는 ‘나’로 새롭게 태어난다.

글쓴이 조은수는 아산장학생으로, 현재 본지 학생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