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외딴 섬 밝히는 사랑의 등대 , 이정신 씨 방은경



낙도 주민들의 친구
고즈넉한 겨울 바닷가, 비릿한 바다 내음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제주도 다음으로 큰 한국의 제2의 섬, 통영과 거제를 잇는 거제대교의 개통으로 이제는 섬이 아닌 섬이 되어버린 거제도. 여기서 배로 10여 분쯤 가야만 화도보건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이정신 씨를 만날 수 있다. 화도는 주민이 채 300여 명이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 올해로 47년째 간호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이정신 씨. 그녀의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들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환자와 지역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파수꾼으로서 홀로 낯선 곳에서 지내면서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정신 씨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이팅게일과 슈바이처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나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며, 그녀는 또 한번 마음 속 깊이 다짐했었다.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간호사로서 일생을 헌신하겠노라고. 그녀는 서울대학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2년 후에 선배 언니의 권유로 부산복음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부산복음병원에는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칭송받는 고 장기려 박사가 있었다.
“그 분은 언제나 환자가 최우선이었습니다. 새벽 6시라도 수술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죠. 어려운 사람들을 항상 성심껏 도와 주셨고, 또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생활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한번은 너무 힘이 들어 어디가 아파서 하루라도 좀 쉬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녀의 생각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회충약의 부작용으로 토사곽란을 일으켜 졸지에 링거를 꽂고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가 되었던 것이다. 힘들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녀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등대처럼
결혼을 하여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이정신 씨는 간호사 생활을 계속하였다. 일하는 것이 좋았고, 또 일하면서 얻는 보람이 무엇보다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일을 함으로써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주요한 원인이었다.
36세 되던 해, 파독 간호사로 독일땅을 밟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낯선 이국 땅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더구나 언어장벽 외에도 문화, 가치관 등 모든 것이 다른 독일 사회에 적응하는 일이 무척 힘겨웠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일 사회에 뿌리를 내렸지만 그녀는 3년간의 독일 생활을 접고 가족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1982년 남편과 사별 후 이정신 씨는 혼자서 생계를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는 새로운 일을 해 보고자 보건진료원 교육을 받았고, 그때부터 거제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다.
“백일해를 앓는 아이였어요. 밤이 되자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업고 저를 찾아왔더라구요. 고열로 인해 병세가 심해졌던 거죠. 밤도 깊었고, 또 그날따라 파도가 심해서 배를 띄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아이 엄마와 함께 교회로 갔죠. 아이에게 응급 처치도 하고, 또 같이 기도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날이 밝더라구요.” 아이와 엄마를 아침에 배로 태워 보낸 후에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다행히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어 약만 타왔다고 했을 때에야 안심할 수 있었단다. 위급한 환자가 생겼을 때에는 응급조치를 하여 이송을 하는데, 그 환자가 회복되어 돌아오는 모습을 보아야만 마음을 놓을 수가 있다고 한다.

평생의 길
이정신 씨도 어느덧 67세가 되었다. 자녀들에게 의탁하고 편히 쉬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작년 정년퇴임이 예정되었으나 보건소의 요청으로 현재 1년을 연장하여 근무하고 있다. 임기가 끝나면 무얼 하고 싶냐고 했더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활동을 계속하면서 보내고 싶다고 했다. 간호사로서 첫발을 내딛었던 순간의 다짐대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이정신 씨. 그녀는 정말 간호사가 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내내 떠나질 않았다.

글쓴이 방은경은 아산재단 편집실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