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대전 용운중학교 3년 오진호 양 김지은


열여섯 ! 소녀의 얼굴엔 그늘이 없다

진호네 집

어린 시절. 진호의 부모님은 가정 불화로 이혼을 하셨다. 그후 진호는 언니, 남동생과 함께 줄곧 어머니와 지내고 있다. 진호의 어머니는 여러 가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뇌졸중으로 쓰러져 현재 왼쪽 팔이 마비가 된 상태이다. 게다가 진호의 남동생은 어린 시절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 인큐베이터 호스가 성대를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만성 후두염을 앓고 있다.

대전시 동구 판암동 주공아파트. 진호네 가족이 사는 곳이다. 현재 진호네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되어 정부에서 제공해 준 12평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당장 네 식구가 지낼 곳은 마련되었지만 한창 성장기에 접어든 아이들 셋과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함께 지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다.

정부에서 매달 얼마간의 생활 보조비가 나오긴 하지만 이제 곧 고등학교 3학년이 될 언니와 중학교 3학년인 진호,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인 남동생까지 학비며 용돈이며 한창 많은 돈이 들어갈 시기인지라 네 식구의 살림살이가 너무나 빠듯하게 느껴진다. 진호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뒷바라지를 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너무 미안하고 속상하단다.

명랑소녀의 꿈

가정 불화로 인한 부모님의 이혼, 뒤이어 찾아온 어머니의 병, 그리고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은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이 소녀를 마냥 주눅들게 할 법도 한데 오히려 진호는 담담하고 의연한 모습이다. 힘든 가정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공부도 곧잘 할 뿐만 아니라 특유의 활달한 성격으로 인해 교우 관계도 원만해 현재 진호가 다니는 대전 용운중학교 전교 학생회장직을 맡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이제 곧 고3이 될 언니를 대신해 집안 일까지 도맡아 하는 정말 당차고 착한 소녀이다.

“어머니가 건강해져서 저희 가족 모두 행복하게 지내는 게 소원이에요.”

앞으로 의사가 되어 자신과 같은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진호. 진호가 의사의 꿈을 갖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진호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해 주신 외할머니 때문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대신해 진호 삼남매를 거의 키우다시피 한 외할머니는 진호에게 있어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외할머니가 자신의 삶을 마감할 때 1년을 넘게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 때 병원에서 본 의사들의 모습은 어린 진호에게 많은 상처를 남겨 주었다. 아프고 힘없는 환자들을 대하는 의사들의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모습은 어린 나이의 진호가 보기에도 너무나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저는 몸이 아픈 환자들을 마음까지 아프게 하는 그런 의사는 되지 않겠어요. 의사가 되어 어머니 병도 제 손으로 고쳐드리고 싶구요.”

약간은 당돌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러운 말이다.

열여섯. 중학교 3학년. 한창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무엇보다 설레는 미래에 대한 꿈으로 충만한 나이. 같은 나이의 친구들에 비해 힘겨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그 또래의 명랑함과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진호가 장하기만 하다.

글쓴이 김지은은 아산장학생으로, 현재 본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