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구세군 과천양로원 봉사자 남순길씨 방은경


"할아버지 할머니, 안양언니 왔어요 ~~ "

근화희의 시작

“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예전에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었죠. 당시 안양 인근에 사회복지 시설이 세 곳 있었어요. 모두 다녀 봤는데, 구세군 과천양로원의 환경이 가장 안 좋았어요. 우리가 도움이 되겠다 싶었죠.”

대여섯 명의 여학생들이 양로원을 찾았을 때 누구 하나 반가워하는 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시설의 원장님은 반대를 했다. 금방 그만 둘 거면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하시며. 그래도 매주 토요일마다 찾아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빨래며 청소 등을 묵묵히 하곤 했다. 한겨울에는 계곡의 얼음을 깨고 이불 빨래도 했다. 당시 시설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40여 명에 원장님 한 분만 계셨기 때문에 할 일이 무척 많았다.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닫힌 마음은 열릴 줄 몰랐다. 매주 찾아가도 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일을 힘들게 왜 하느냐면서 중간에 그만 두는 친구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에 나머지 10여 명의 회원들은 계속해서 시설을 찾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가까워지는 데는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년이 흐르도록

근화회의 회원 수는 점점 늘어 한 때는 100여 명이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재학생은 없고 OB회원 10~15명이 월 1회 일요일마다 찾고 있다. 갈래머리 여고생들이 이제는 어느덧 중년의 여성이 되었다. 가끔씩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양로원을 찾기도 한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구세군 과천양로원으로 옮기는 발걸음에는 변함이 없다.

“이제는 한 가족 같아요. 스스럼없이 얘기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어요. 직원들한테 못하는 얘기도 우리한테는 하세요. 그만큼 저희를 믿고 의지한다는 얘기죠.”

그래서 근화회 회원들은 직원과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곤 한다. 직원들이 직접 못하는 말도 근화회 회원들이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선선히 받아들이시고, 잘못된 점도 고치려고 하신다. 또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직원들에게 섭섭한 점 등을 얘기하면 회원들이 오해를 풀어 주곤 한단다. ‘안양 언니들’로 통하는 근화회 회원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좋은 말동무이자 여전히 어여쁜 손녀들이다.

할아버지 웃음 만들기

근화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행사는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것과 연말에 경로 잔치를 여는 것이다. 어버이날이 되면 그 누구보다도 먼저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기 위해 새벽같이 양로원을 찾는다. 연말이면 부쩍 외롭고 쓸쓸해 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경로 잔치를 연다. 학창 시절에는 경비 마련을 위해 찹쌀떡 장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과와 함께 재롱 잔치(?)를 벌이면 할머니, 할아버지의 입가에는 어느새 잔잔한 웃음이 번지곤 했다. 이제는 회원의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기쁨조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양로원에는 연로한 분들이 많아 생을 마감하는 분들도 종종 있다. 어렸을 적엔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남순길 씨에게는 유독 기억에 남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다. “94세 된 할머니가 계셨어요. 팔, 다리 골절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저희들을 무척 보고 싶어 하셨대요. 그래서 1주일에 한번씩 병원으로 찾아갔었죠. 할머니는 저희를 보시면 ‘내가 죽어야지, 죽어야지’하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농담으로 ‘할머니, 맨날 죽고 싶다고 얘기하시면서 혹시 속으로는 살려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 아니에요?’라고 했죠. 그런데 그 다음 주에 정말로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얼마나 죄송스럽고 그 말이 맘에 걸리던지….”

재작년 6월의 일이지만 그녀는 마치 어제 일처럼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울타리 밖 한가족

“가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언제까지 찾아올 거냐고 물어 보세요. 그런데 언제까지란 게 있을 수 없죠. 저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울타리 밖의 한가족이에요. 가족이니까 계속 보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올해로 42세가 된 남순길 씨는 이제까지 외롭다고 느껴본 적이 없단다. 8남매 중에 막내로 성장하여 이웃에 언니, 오빠들이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그녀에게는 가족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40여 명이나 계시기 때문이다.

글쓴이 방은경은 아산재단 편집실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