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폴라베어스 염복남


빙판에서 벌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격렬한 스포츠는? 바로 아이스하키다. 아이스링크 위로 시속 150킬로미터의 속도로 퍽이 날아오르면, 그 퍽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 선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스케이트를 지치고 부딪히고 또 질주한다. 그야말로 거친 야성의 매력이 물씬 배어나는 스포츠다.

빙판 위의 얼굴들

아이스링크에 들어서자, 언덕길을 쉼없이 올라와서 한껏 달아오른 몸의 열기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땀이 식으면서 으슬으슬 추위까지 느껴진다. 입에서 내뿜는 하얀 입김이 보일 정도다. 문득, 요란한 소리가 실내를 울린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다 보니 아이스링크 위로 자연히 시선이 옮겨진다. 아이스하키 채에 얻어맞은 퍽이 벽에 부딪히며 내지르는 소리이다.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바쁘게 퍽을 쫓는다. 유니폼 밑의 보호구를 감안하더라도 선수들은 보통 이상의 체격을 지닌 듯이 보인다. 거대한 몸을 실은 스케이트가 날렵하게 링크를 지쳐간다. 거구의 선수들 사이에서 더욱 빠르게 오가는 새까만 퍽은 마치 생쥐 같다. 선수들의 격렬한 몸짓들을 보고 있노라니 추위를 느끼기는커녕 덩달아 체온이 올라감을 느낀다. 넓은 얼음판과 그 위의 열기가 묘한 대조를 이루어낸다.
잠시 시합이 멈춰지고, 선수들은 얼음판을 녹일 듯이 뜨거운 숨을 토하며 헬멧들을 벗는다. 헬멧 아래에 나타난 것은 젊은 얼굴이 아니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주름이 깊게 패인 중년의 얼굴이다.

젊음? 부럽지 않아!

팀명은 폴라베어스(Polarbears),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50대이다. 최연소자가 40세이며, 최고령자는 63세이다. 40세를 올드타이머(Oldtimer)라 하여, 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 중 하나가 최소 40세를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년 클럽은 1987년 고려대 아이스링크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경기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의 선수 출신들이 주축이 되고 소수의 비선수 출신 아마추어로 이루어진 아이스하키 동호회이다.
모두들 다른 직장인들과 같이 바쁜 평일을 보내면서도 매주 2회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모임을 갖는다. 전체 회원 수는 약 40명이고, 평일에도 20명이 넘게 모인다. 창설된 후 초기엔 국내 아이스하키 동호회 중 최약체였으나, 모두들 기본기를 갖춘 데다 1년 내내 연습을 하여 수준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해외에서 원정 시합도 가진다. 이제는 팀의 관록도 붙어 40세 이상만 참여하는 아시아권의 올드타이머 대회에선 최강팀으로 군림한다. 1997년 한·중·일 친선 올드타이머 대회에서 우승했고, 매년 정기적으로 여는 일본 올드타이머팀과 교환 경기에서도 거의 지는 법이 없다. 환태평양권대회에서도 우승하는 등 다수의 대회에서 수상한 트로피가 너무 많아 동호회실에 두지 못한 트로피가 더 많다. 아이스하키 동호인 리그전도 있는데, 그 중 '폴라베어스'는 중년 클럽임에도 젊은 회원들의 클럽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룬다.
회원들은 수준급의 경기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활발한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다. 장철(52. 원현주택 사장), 김자호(57.간삼종합건축 대표) 회원과 같이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회사의 실업가이거나, 한덕규(50. 한국외국어대학 교수), 백광우(49. 치과의사), 김중호(63. 강남성모병원 부원장) 회원 등 교수, 의사들이 많다. 이들의 멤버십은 이러한 사회적 성공에도 있다.

빙판에서 벌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격렬한 스포츠

동호회 내에선 선후배가 분명하고 엄격하다. 주중, 모임 후에는 따로 술자리를 갖지 않고 바로 귀가하도록 하는 것이 규칙이라면 규칙이다. 그러나 서로간의 도움이 필요한 관혼상제와 같은 경우나 연말연시에는 한자리에 뭉쳐 그 결속력을 과시한다.
선수 출신들이라곤 하지만, 부상이 없을 리 없다. NHL에선 선수들의 앞니 한두 개 없는 것쯤은 자랑으로 여긴다고 하는 격렬한 스포츠이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허허 웃으며 "정말 힘듭니다"라고 응수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아이스하키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운익 회원은 왜 아이스하키가 좋으냐고 물으면 한결같은 대답을 한다.
"젊은애들도 힘들어 하는 운동인데 왜 힘들지 않겠어요. 부상도 많고 거칠지만 아이스하키의 남성적인 매력이 저를 놓지 않습니다."
졸업 후, 오랜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다시 아이스하키를 시작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긴 아이스하키를 할 때 가장 생명력 있고 건강해 보이는 이 남자를 누가 왜 말리겠는가?

글쓴이 염복남은 아산장학생으로, 본지 학생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