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세상 우리동네 음악회 남영숙


9월 29일, 여기는 경기도 양평 문화의 집 '세계 악기 여행'의 공연장. 객석이 어두워지면서 음악으로 가는
세계 여행이 시작되고, 안내자인 한국종합예술학교 우광혁 교수가 들려주는 유쾌한 이야기 보따리에 아이들은 눈을 맞추고 귀를 쫑긋 세운다. 2000년부터 양평의 문화 NGO 서종사람들이 모의(?)한 '우리 동네 음악회'가 벌써 27회째다. 30회 땐 좀 더 특별한 공연을, 그리고 7년 뒤, 10년차에는 모든 주민들이 자원 봉사자가 되어 순전히 양평 사람들의 힘으로만 이뤄진 세계적인 동네 잔치를 벌이고 싶다는 그들. 서종 사람들과 양평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깊고 깊은 이심전심의 현장으로 간다.

양평의 행복만들기, 우리 동네 음악회

"아저씨, 7시, 7시!" 7시 반 공연을 6시 반부터 기다린 아이들, 처음엔 자기들은 청소년이니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의 입장료에서 중간을 잡아 700원으로 해 달라며 실랑이를 벌이더니 시계 바늘이 정각을 가리키기가 무섭게 재촉이다.
그 중에 청평 집에서 40여 분의 거리도 가깝다(!)고 하는 주니는 '우리 동네 음악회'의 왕팬. 2000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첫회를 본 후로 중1인 지금까지 기회가 닿는 대로 놓치지 않았다 하니 가히 '골수'다. 얼마 전 본 난장 '도깨비 스톰'의 감동이 아직도 살아 있다더니 입장이 시작되자마자 친구 손목을 잡아 끌고 앞자리로 날아간다.
"형아, 안 들어가?" 자기 몸보다 큰 우산을 들고 서두르는 일곱 살 준무. 바리바리 짐 보따리에 8개월 된 갓난아기를 안고 서성이는 이미선, 이종호 부부. 자리 없을새라 유모차까지 준비했다. 그뿐인가? 팔순 노모를 모시고 온 일가, 데이트 중인 대학생 커플들…. 자리가 모자라 서서 보는 관객들까지 청중은 각양각색이다. 좀더 욕심을 내는 아이들은 무대 바로 밑, 찬 바닥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라비아, 하면 뭐가 생각나죠?" "알라딘이요~" "알라딘, 하면? 램프의…?" "지니!" 척척 들어맞는 해설자와 관객의 찰떡궁합. 대답이 나오자마자 아라비아 피리가 노래하는 '알라딘의 꿈'이 연주되었다. 이 프로그램으로 공연 횟수만 48회라는, 베테랑 우광혁 교수도 깜짝 깜짝 놀라는 곳이 바로 여기, 우리 동네 음악회다. 공연 도중 객석에서 음료수가 전해졌다. 해설이 있는 콘서트답게 "갈증 나는 단 음료보다 생수가 더 낫다"며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면서도 상기된 우 교수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무대와 객석의 높낮이가 잦아들고 모두의 마음과 마음이 한 데 공명(共鳴)하는 작은 음악회, 함께 행복해지는 공간이 매달 마지막 토요일마다 양평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그림자처럼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행복을 준비하는 '서종사람들'이 있다.

작지만 큰 뜻으로 세상에 서다

문화의 중심에서 소외된 양평의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게 됐다는 '우리 동네 음악회'와 '우리 동네 그리기'.
'우리 동네 그리기'는 2,000여 주민의 서종면에만 600여 명이 예술계 종사자라는 이점에 양평 초·중학교 아이들의 지역 사랑을 키운다는 목표를 더하여 펼쳐지는 행사다. 매년 어른과 아이들이 우리 동네, 양평을 그리고 이를 모아 전시회를 연다. 올해 작품들은 공연장인 '문화의 집' 복도에 걸어 두었다.
또 서종사람들의 자랑인 '미니갤러리'는 소방서 차고의 높은 천장을 살려 개조한 공간으로, 지금은 작년 '허수아비 축제' 때 주민들이 손수 만든 허수아비를 찍은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매년 10여만 원의 회비로 최소한의 운영비는 자체 확보한다는 서종사람들. 경제적 여유 대신 독립을 택한 그들이기에 전시 행정의 입김 없이 처음처럼 한결같을 수 있었다. 또한 예술의 전당 공연기획팀장 이철순 씨가 음악회를 맡고, 쟁쟁한 현역 화가들인 민정기 회장부터 나경찬, 이근명 씨까지 예술가들이 직접 살림을 꾸리는 풍부한 인적자원이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타지역과는 구별되는 양평만의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본인들도 준비하면서 감상도 하고 배운다 하니, 그 소박한 마음이 좋다.
하나부터 열까지 당신들의 손으로 이뤄내는 그들이 여기 공연장 앞뒤에 서서 공연을 지켜내고 있다. 마지막 의자 정리까지 순전히 그들의 몫이다.

아이들의 눈망울에 약속하다

공연으로 돌아온다. 원시시대부터 현대까지 세계의 악기 100여 종으로 돌아보는 81곡의 세계 일주가 종착지 한국에서 막바지 절정을 남겨두고 있다. 곡목은 '아리랑'. 그리고 "짝 짝 짝짝짝", 월드컵의 여운이 담긴 붉은악마 박수를 더하여. 구슬프게 시작된 아리랑이 응원의 힘을 받아 피리 리듬을 타고, 다시 한번 박수를 받아 빠르게 휘몰아친다. 아리랑 멜로디에 손자 손녀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하나된 우리는 신이 난다.
그렇다. 이 아이들이 청년이 되고, 세월이 더 흘러 마흔이 되어 다시 이런 가을 밤이 찾아오면 2002년 9월 29일 오늘밤은 어린 시절의 보물 같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회색빛 콘크리트에 갇힌 어린 시절은, 생각만 해도, 슬프지 않은가?
그래서 서종사람들은 때때로 불협화음이 생겨도 의연하게 다시 일어서곤 했다. 왜냐면,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이번 공연은, 이번 전시는 뭐예요?" 하고 물으니깐.

글쓴이 남영숙은 아산재단 장학생으로, 현재 본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