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얼굴 청지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강지원 이인영



선언
어수선한 날이었다. 디앤무가 막 동해를 빠져나가던 태풍 끝자락의 날, 알자지라 방송에서 김선일 씨 피랍 테이프를 공개했다. 오… 신이여! 아니, 세상에!
그 시간 이후 삭혀지지 않는 먹먹한 아픔 같은 것이 내내 따라다녔다. 그날 만나기로 한 강지원 변호사의 청지법률사무소에서도 느닷없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딸을 수년간 폭행한 계부 남편이 보석으로 석방되자, 손가락을 잘라 재판장에게 보낸 여인이 인권변호사 강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다.
각 신문사 기자단과 마주한 그녀, 스님, 강 변호사. 뒤의 창문 너머로 태풍의 기운을 담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만이 세상사의 속절없음을 말하고 있었고 마음에도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며칠 뒤, 다시 만난 그에게 물었다.
“전엔 강골, 냉혈 검사로 소문났었는데 변하셨죠? 세상 사람은 악한가요? 선한가요? ‘나쁜 아이는 없다’는 책도 내셨죠?”
“원죄인지, 업보인지 악한 요인도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그 악성을 변할 수 없는 것으로 볼 건지 변할 수 있는 것으로 볼 건지가 문제입니다. 저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어요. 인간에게는 선도 악도 다 있죠. 조금씩 고쳐서 악성을 줄이고 선성을 늘리는 것이 의무입니다.”

강지원 변호사(55세). 정의를 세워 준엄하고 냉철하게 판단하고 세상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만 같은 그. 절대 넘어가지 않고 흔들림 없이 무고한 피해자들의 맺힌 가슴을 알아 주고, 대신 갚아줄 것 같은 그가 맑은 미소를 띠고 녹차를 손수 우려 따라 주었다.
“그 웃는 얼굴 혹시 연습하신 건 아닌가요?” 그가 다시 미소를 짓는다.
잘 나가던 고검의 검사. 행시도 붙고 사시에는 수석을 하고 청소년 보호관찰소장을 하던 그. 유력한 검사장 승진 대상자 중 한 명으로 알 사람은 다 알고, 개각 때마다 교육문화수석이니 말이 많던 그가 어느 날 초연히 명예퇴직을 선언했다. ‘정치검사는 검찰을 떠나라’, ‘후배여 나를 넘고 서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굼벵이가 매미가 되어 날개가 돋아서 날아 올라
높고 높은 나무 위에서 우는 소리가 좋지마는
그 위에 거미줄이 있으니 그것을 조심하여라
- 작가 미상, 굼벙이 매암이 되야 (청구영언)

교육이구나!
명리, 권세를 인생의 성공으로 보지 않고 처음 맞닥뜨린 청소년 문제를 풀기 위해 평생을 매달린 건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의 곧은 품성이었다.
사법연수 후 첫 임명지가 전주지검, 소년사범을 맡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별난 아이들 아닐까?’
비행청소년이 붙잡혀 왔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그 다음날 만나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저럴 아이가 아닌데 왜 그랬을까?’ 의문이 생겼다. 왜?
그는 늘 사건 너머의 원인을 보기를 원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심성에서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욱하는 성질과 청소년 비행’이라는 유명한 세미나도 열었고, 이에 따라 분노 조절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러나 뭔가 부족했다. 그는 궁금증을 풀고 이해하기 위해 평생 심리학, 철학, 정신분석학, 종교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가족의 역할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큼을 알고 가족학과 사회환경론을 공부했다.
그도 한창 사춘기 때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엘리트로 교편을 잡고, 출세주의 교육관을 갖고 계셨던 어머니는 야단을 많이 치셨다. ‘왜, 나만 미워하나?’ 하는 생각에 말 안 하고 밥 안 먹는 걸로 반항했지만, 모든 것이 여의치 않으면 더 삐뚤어질 수도 얼마든지 있는 거였다.
그는 범죄로 빠진 청소년들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그 깊은 상처들의 뿌리를 보았다. ‘가족이구나! 아니 그보다도 사회환경이구나!’
‘아니, 교육이구나!’
어른들은 키운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했다. 아이들은 좀 자라면 저절로 신비롭게 크는 나무다. 곁에서 비료나 줄 수 있을까.
그는 열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직으로 여기던 청소년 업무를 자원해 보호관찰제도를 도입하고, 청소년보호위원회 창설을 주도했으며, 유흥업소 밀집지역 청소년 야간통행금지, 미성년자 주류 판매 금지, 청소년 성 범죄자의 신상 공개 등을 추진했다. 유해한 환경부터 없애기 위해. 학대아동과 여성에 대한 법률 구호에도 함께 힘을 쏟았다.



나의 길
걸은 자취가 적은 길은 선택했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했던 프로스트. 스스로 선택해도 훗날엔 그 길로 갔으면 더 멋지지나 않았을까 되씹어 보게 된다.
하나 우리 교육은 그저 한 줄로 세워 점수로 우열을 가리고 끝도 없이 경쟁을 시켜 위축되게 만든다. 부모도 등을 떠민다. 탄탄대로로 이어질 것 같은 그 길로 꼭 가야만 된다고. 그들에겐 어릴 때부터 모두가 적이기도 하다. 무찔러야 할…. 때론 악심도 자라난다. 승자와 패자로 구분된다. 사회환경이 문제일까? 출세지향적 가치관을 배워온 부모 세대, 우리 모두가 문제일까?
강지원 변호사는 청소년 지킴이가 되어 고질적인 병인을 도려내고 새 희망을 바로 세워나가자고 목소리를 강하게 내었다.
그렇다. 교육이었다. 교육이 바로서지 않은 게 가장 큰 원인인 것을 그는 알아냈다. 공부 못한다고 절대로 무시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강 변호사의 교육 키워드는 적성과 자율로, 지·덕·체의 전인교육이다.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신명나게 살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적성에 맞는 일, 자신의 꿈을 찾아내도록 돕고, 또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부모의 가장 큰 역할도 자식의 적성을 발견시켜 주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재능을 발견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타고난 본성을 가꾸면 제각기 들쑥날쑥 다양한 나무로 자라 멋진 숲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부추기는 협력적인 풍토도 만들 수 있다.

강 변호사에게도 두 딸이 있다. 큰딸이 고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있어 너무 규격화되어 있어서 다니기 싫다며 호소해 왔다. 교육을 너무 잘 알고 있던 터라 그는 반갑다는 듯이 대안학교(그의 표현대로라면 전인학교)인 전남의 한빛고교를 권했다. 햇볕을 쏘이며 텃밭을 가꾸고, 문화탐방을 다니며 독서량을 늘리고 신나게 학교를 다니던 아이가 고3 때는 축제를 기획한다고 2박 3일 지리산엘 갔다.
그뿐인가. 수능은 거부하고 대신 A4 용지 10장에 자신의 인생 계획서를 차근차근 적어 부모에게 제출했다.

1.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겠다.
2. 그 돈으로 해외여행을 하겠다… 는 식이었다.
그대로 호주에 한달 여행을 다녀오더니 퇴폐적인 유학생들을 제법 비판하기도 하고, 한국의 대학은 너무 획일적이라며 미국 대학에 가야겠다고 영어학원을 두 군데나 등록했다. 하루 종일 영어공부만 하던 아이는 이번엔 이왕 가는 거 영어공부도 외국에 가서 하는 게 낫겠다며 떠났다. 그 딸은 심리학을 공부한다고 했다.
둘째 딸은 분당의 이우학교에 보낼 예정이다.

그는 2002년 명퇴를 하면서 곧바로 청소년 피해상담센터를 법률사무소에 두고, 한편으론 뜻 있는 교육운동가와 학부모들과 공동 투자해 이우학교를 설립했다. 토론식 수업을 기본으로 하고, 오후 수업은 소작이나 체험활동을 하며, 대안학교가 아니라 진짜 학교를 만들자고 했다. 以友, ‘친구와 함께’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검찰 50년의 역사는 역대 정치권력과의 유착, 갈등의 치욕스러운 역사라며 검찰은 끊임없이 저항했지만 결국 청와대와 가까운 ‘내부의 적’이 그것을 가로막아 왔다고,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역설하고 떠난 그는 그 순간에도 자신이 갈 길로 청소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더 일찍 이 길을, 이 일을 해야 했다며 검찰의 옷을 벗고 그만의 my way를 가고자 했다.



선한 웃음의 이유
“내리 사랑이라고 부모는 자식의 기저귀를 3년씩은 갈아주지 않습니까?”
부모 앞엔 효자는 없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 잡지 않았나? 한 2년? 아닌가?
그는 그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온 세월들을 축소시키고자 애쓰고 있었다. 치매로 아버진 6년을, 어머닌 2년을 대소변을 갈아드려야 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갈아줄 때와 자식이 부모께 갈아드릴 때의 마음이 같질 못해요.” 참으로 예리한 눈매에서도 나오는 선하고 편한 웃음이 자연스러운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아내인 대전고법의 김영란 부장판사(48세)도 물론 같이 하는 일이다. 부부싸움도 초창기엔 많이 했다. 부모 모시고 사는 자유롭지 않은 세월이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검사와 판사의 싸움. “TV의 법정 드라마 같은 모습이었죠.” 그가 웃는다.

그러나 둘 다 변했다. 강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소리도 지르고 매도 드는 아버지였지만 청소년을 연구한 이후론 야단친 적이 없다. 강변호사는 인생관이 변했고, 아내는 세월따라 남편따라 뒷서거니 앞서거니 달라졌다. 어머니 임종시에는 아무에게도 안 알리고 단출히 장례를 치뤘다.
라디오 프로 ‘안녕하십니까, 강지원입니다.’ TV ‘선택, 화제의 인물’ 등의 출연료와 칼럼을 쓴 원고료를 모아 매년 5,000만 원씩이나 되는 거금을 어려운 청소년과 여성을 위해 기부한다.

간디의 물이 홈빡 든?
“지난 1년 선거, 탄핵, 총선 등의 격동기를 보내며 정말 놀랐습니다. 우리 국민 가슴 속에 당파심이 이렇게 큰지 몰랐습니다. 너무 적대적이며 공존보다 투쟁적이고 서로 미워합니다. 진정한 개혁이란 밖이 아니라 내 안의 당파심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내로라 하는 사람들과 다 만나 인터뷰한 그가 하는 말이 우리 현실의 핵심이란 생각이 들며 서글퍼졌다. 학창시절부터 누가 더 협력을 혹은 양보를 잘했나 하는 점수도 넣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강 변호사 같은 인물이 현장에서 함께 썩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바람도 슬그머니 욕심처럼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누가 권해도 정치의 길을 절대 사양하고 꿋꿋이 외길을 걸어가는 그. 종교가 없다는데도 종교인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의 마이웨이가 아무래도 구도자의 길을 닮아서일까? 혹 존경한다는 간디의 물이 홈빡 든?

글쓴이 이인영은 아산재단 편집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