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안' 이야기 “말도 문화도 달랐지만 이제 우리는 하나죠” 강은경



머나먼 이국 우즈베키스탄의 스물여섯 아가씨는 작고 순수했다. 남자는 처음 보는 순간, 그녀가 눈 안으로 쏘옥 들어와 뭐든 해주고 싶기만 했다. 여자에게도 남자는 ‘늘상 바라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들이 처음 만나 함께 보낸 시간은 하루. 사람이 서로에게 반하는 시간이 1분이라고 했던가. 하루는 두 사람이 사랑을 싹틔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석달 뒤 스물여섯의 이국 처자는 낯선 한국 땅에 둥지를 틀었다.

다르기 때문에 더욱 사랑해요
“정말 이상했어요. 이 사람은 제가 바라던 사람이었어요. 착하고, 성실하고, 술도 담배도 안 하고. 처음 만났을 때 이 사람한테도 말했어요. 참 신기하다고.” 그리고 지나라 씨(31)는 덧붙인다. “예뻐요.”

사실 사람 좋게 보이는 얼굴이긴 하지만 강정욱 씨(44)가 그다지 미남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그녀에게는 그가 예쁘게 보인단다. 사극에 나오는 옛날 사람들처럼 상투도 틀고 한복도 입히면 참 예쁠 것 같단다.

12월 19일로 결혼 5주년을 맞은 부부. 결혼 5년차면 이미 미운정이 고운정을 넘어서는 시점이다. 하지만 언어의 벽이 오히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한 것일까. 아직도 얘기하는 중간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맞아요?” 라며 되묻고, 서로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행간을 읽으려 노력하는 그들은 흡사 ‘연인’ 같다.

그렇다고 부부가 싸우지 않고 살 수 있으랴 싶어 슬쩍 질문을 던져 보았다.

“특별히 생각나는 일이 없는데…. 얘기하다가 울컥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사람 생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리고 이해하게 되는 거죠.”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가치관이 달라서 더 많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더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세상에 속해 있었고, 나 한 사람을 따라 낯선 세계에 발을 디딘 것임을 알기에 강정욱 씨는 더욱 더 많은 것을 그녀에게 해주고 싶다.

지나라 씨는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이다. 속으로 참으면서 겉으로 웃는 일은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때 그때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한다. 그래서인지 자잘하게 말다툼이 있기는 했지만 큰 싸움은 없었다. 시어머니, 손위 시누와 함께 살면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역시 서로 다른 문화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 이기고
결혼 후 지나라 씨는 일부러 외국인 친구를 찾지 않았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래도 한국은 낯선 세계였다.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 결혼 초 그녀는 집에서 거의 나가질 않았다.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가는 것조차 강정욱 씨에게 억지로 떼밀려야 했고, 내성적인 그녀가 혼자서 거리에 나서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려고 했고 그는 그녀를 혼자 서게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런 그녀가 자유롭게 바깥출입을 하게 된 건 작년, 안산이주민센터와 인연을 맺으면서부터다. 안산이주민센터는 ‘안산 외국인노동자상담소’로 출발해서 지금은 상담소와 쉼터, 농장 등을 부설로 운영하면서 외국인노동자를 포함한 온누리안들의 인권과 복지, 교육 등을 돕고 있다.

지나라 씨 역시 이곳에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배움을 얻었다. 지금은 한국어 중급 과정을 들으며 통역사의 꿈을 키우는 중이다. 이젠 제주도까지도 혼자 갈 수 있겠다는 호언장담까지 서슴지 않는다. 또 얼마 전부터 새안산교회에서 배우기 시작한 요리로 추어탕을 자신 있는 메뉴로 꼽을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청국장을 좋아해서 일주일 내내 청국장을 먹을 때도 있다니, 이젠 어엿한 한국 아줌마가 아닌가 싶다.

강정욱 씨는 4개월 전부터 출장 세차를 하고 있다. 저녁 7시에 나가서 새벽 4시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 낮과 밤이 뒤바뀐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 지나라 씨에게도 쉽지는 않겠구나, 싶었는데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제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제가 매일매일 이 사람이랑 같이 있었으면 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크리스마스에 일 년 내내 소원하던 선물을 받았을 때 기뻐하는 아이의 표정처럼 지나라 씨의 표정이 해맑다. 같이 밥 먹고 산책하고 구경도 다니고, 그와 함께 하는 그런저런 일상이 너무 행복하다. 어느 정도 기반을 잡으면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살고 싶다는 남편의 꿈도 그녀에게는 행복이다.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맞잡은 손이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냐는 우문에 “그럼요”, 정색하며 되돌아오는 대답. 그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러니 아내가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바라보는 남편의 눈과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 온누리안은 ‘온누리’와 사람을 뜻하는 ‘-ian’이 합쳐진 합성어.
국제결혼가정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을 어우르는 말이다.
안산이주민센터 031 - 492 - 87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