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지렛대 낮으나, 높은 꿈 박인숙



글자 한 자를 쓰는데도 힘이 참 많이 든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온 몸이, 연필을 든 손이 심하게 떨린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들 영혼을 일깨우는 목사의 꿈을 이룰 때가지 어렵고 힘든 유학공부는 계속된다.

미국 시카고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 이준수 씨(38)가 오랜만에 서울 압구정동 현대고등학교를 찾았다. 1회 졸업생, 그리운 추억이 가득 쌓인 배움터다.

“내신 성적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힘들어하죠? 저도 그랬어요. 중학생 때까지는 시험 볼 때 좀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었지만 고등학생이 된 후론 경쟁이 심해져서 배려를 받을 수 없었지요. 보통 아침 7시에 등교해서 수업 끝나면 독서실로…. 새벽 2시나 돼야 잠자리에 들었지요.”

훌쩍 키 자란 느티나무 아래서 운동장을 바라보는 이준수 씨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8개월 미숙아로 태어나 세살 때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그가 미국 유학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렛대가 되어준 교정. 시간은 꽤 흘렀지만 교복 차림 후배들의 재잘거림과 고민은 그 시절 교실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뇌성마비 지체부자유 1급, 자신의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이준수 씨가 공부를 향한 도전을 시작한 것은 네 살 때다. 어머니는 그의 몸을 조그만 밥상에 기대 앉히고 선 긋는 연습부터 시작해 글을 가르쳤다. 떨리는 손으로 선을 똑바로 긋기란 너무도 힘들었다.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연습하고를 반복하느라 노트에 수도 없이 구멍이 뚫렸다.

자율신경 체계가 손상돼 저절로 떨리는 몸, 동작을 하려면 긴장해서 더 떨리는 근육을 의지로 붙들어가며 씨름한 공부에서 그는 장애를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보았다. 초등학교 1학년 일제고사 1등을 시작으로 전교 수석 졸업, 고교입학 연합고사 200점 만점에 193점…. 초등학교 내내 아들을 업어 등교시키고 교실 옆자리에 앉아 공부를 도운 어머니. 시험 때면 목이 쉬도록 교과서와 참고서를 읽어주는 그 어머니의 정성에, 온 몸이 땀에 젖어도 필기를 포기하지 않은 아들이 일군 눈물겨운 성과였다. 그가 최상위권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서강대학교에 합격하자 아산사회복지재단 설립자 정주영 이사장은 개인자격으로 4년 장학금을 수여하며 크게 격려했다. 이 강의실, 저 학관으로 옮겨 다니는 대학 수업은 고교 때보다 더 힘들었지만 격려에 힘입어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영어와 싸우며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에서 유럽역사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역사학 교수가 되고자 했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 닥쳤다. 사랑하는 여인의 등장과 꿈의 방향 전환.



도전은 계속된다, 이뤄질 때까지
“어느 날 심심해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 검색을 했어요. 미국에 있는 박사과정 한국인을 찾으니 2명이 있더군요. 멀리 있는 사람, 번개팅 안 해도 되니까 안심하고 한 명에게 쪽지를 보냈죠. 압구정동 현대고 출신이라기에 콧대 높은 부잣집 남자려니 싶어 통신을 끊으려는데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묻는 거예요, 뭐가 되고 싶냐는 게 아니라…. 남자한테 그런 질문 받은 건 처음이었죠.”

연세대 불문과 대학원을 나와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던 문현정 씨(34)는 통신 대화로 호기심을 나누던 이준수 씨를 1999년 연말 서울에서 처음 만났다. 휠체어에 앉은 채 당당하게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을 잡았고, 넓고 깊은 마음 씀씀이에 반해 한 달 사이 17번을 만났다. 다음해 그를 찾아 미국으로 향했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남편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다. 장애인인 만큼 도와주겠다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리어 상대를 꿰뚫어보며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의 조회수도 상당하고, 무엇보다도 그가 이야기를 하면 무기력감에 젖어있던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자다가 놀라 깬 듯 눈을 빛내며 경청했다.

혼자만의 영광으로 가두기에는 너무 아깝기에 기도하며 권했다. 장애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목회자가 되라고, 공부를 더 하라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선교 사역을 펼치고자 목사가 되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오랜 소외를 겪으며 절망에 익숙해져 있어요. 소수자를 위한 제도가 잘 갖춰진 미국에서도 주어지는 특별대우를 수동적으로 누리는데 그치더군요. 장애인들 마음속에 불꽃을 틔우며 영을 일깨우고 싶어요. 누군가 시혜 베풀 듯 주는 도움과 선물을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상처로 단단해진 응어리를 에너지 삼아 보람찬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그러려면 바깥 사회의 제도개선과 아울러 자신의 내부를 바꾸는 영적인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한글에서 영어로 이어졌던 이준수 씨의 씨름은 이번엔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와 더불어 신학 공부로 옮아갔다. 그러느라 좋지 않은 시력이 더 나빠지고, 휠체어에 의지하는 몸에도 이런 저런 무리가 왔다. 부인 문현정 씨는 지난해 시카고 시티칼리지에 들어가 간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뇌성마비 후유증을 겪는 남편의 건강을 효율적으로 보살피면서 취업을 통해 가정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자 한 선택이다.

꿈을 향해 돌진하는 부부의 열정적인 노력을 지켜봐온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지난해부터 이준수 씨 학비를 지원하면서 경찰직 공무원에서 은퇴한 이씨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징검다리 위에서 우왕좌왕하다보면 물에 빠지고 맙니다. 물 깊이에 몸 사리지 않고 이 다리를 건너가야죠.”

내일을 위해 손 맞잡은 젊은 부부에게 오늘의 힘겨움은 훗날 보람찬 추억으로 새겨질 것이다. 희망의 지렛대는 역경을 뛰어넘고자 열심히 찾는 사람의 몫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