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산책 고물을 보물로 살려내는 ‘반쪽이’의 풍자정신 정재숙



쓰레기통에 들어갔던 물건이라도 이 사람 손을 만나면 환골탈태다. ‘반쪽이’ 최정현 씨 얘기다. 고물이 인간 상상력을 만나면 이렇게 유쾌하게 부활할 수도 있구나, 절로 입이 벌어진다.

사무실에 가면 흔하디흔한 회전의자가 낡아 못쓰게 돼 버렸다. 최씨가 그걸 그냥 둘 리 없다. 달짝 들어다가 분해해 뚝딱. 금세 코끼리와 문어로 세포 분열한다. 수명을 다한 빨간 소화기,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최씨 눈에는 보물 덩어리다. 앙증맞은 펭귄으로 변신한다. 어느 집 부엌에나 몇 개씩 굴러다닐 구불텅 구불텅 녹슨 숟가락과 포크를 어떻게 버릴 수가 있느냐며 최씨가 모아온다. 잠시 뒤 집단 군무를 추는 우아한 홍학 무리로 태어난다.

사정이 이러니 고물 장수가 왔다가 울고 간다. 어른이고 아이고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여름방학 특별전으로 열렸던 ‘반쪽이의 고물 자연사박물관’(서울 가회동 북촌미술관)은 미술관측이 ‘만원사례’ 봉투를 돌렸을 만큼 올 여름 최대 화제의 전시가 돼 최정현 씨를 더 바쁘게 했다.

10년 전부터 최씨의 열렬한 팬이자 홍보대사를 자임해 온 소설가 이윤기 씨는 그를 ‘마음은 한없이 따뜻하되 손길은 한없이 매운 조물주’라 부른다. 그 까닭은 이렇다. “그가 작품을 제작하면서 쓰는 재료의 대부분은 이 땅에서 쓰임새가 끝난 고철, 혹은 폐품들이다. 그는 그런 재료에 잠재해 있는 이미지를 불러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것 같다. 목숨 끊어진 사물들로부터 불러낸 이미지들을 혹은 자르고 혹은 이어붙임으로써 거기에다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는 그가 내 눈에는 조물주처럼 보인다.” 그는 또 “환경파괴, 동물 학대, 침략 전쟁에 대한 반쪽이의 증오는 강경하고 야유는 통렬하다. 그가 폐품으로 버려진 건설 장비나 군용 물품을 자주 이용하여 동물을 빚어내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싶다”고 썼다.




최정현 씨의 풍자 정신은 녹슬지 않았다. 만화에서 고물 재생품으로 재료만 바뀌었다. 플라스틱 바구니를 엎어놓고 볼펜 껍데기로 기둥을 세운 뒤 변기용 ‘뚫어 뻥’을 얹은 작품은 한 눈에 봐도 국회의사당이다. 싸구려에 탁상공론만 하는 국회의원에 일침을 가하니 통쾌하다. 언제 물고 늘어질지 모르는 네티즌의 폭발성은 못쓰게 된 컴퓨터 마우스와 자판 부속으로 이뤄진 뱀, 수류탄으로 상징했다. 빨래판에 엿장수 가위와 문고리로 만든 ‘소’는 소띠인 아내 변재란 씨를 위해 만든 것이다. 아내가 마음대로 나다니며 일 잘하라는 마음을 담았다.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자전거 안장으로 만들었다는 ‘황소 머리’보다 한 차원 높다.

작품 하나하나에서 번득이는 풍자와 해학을 읽어가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인다. 남녀노소 누구나 그의 작품을 즐기고 좋아하는 까닭이다. 그는 누가 쓰다 버린 고물 땅을 좀 주었으면, 하는 엉뚱하면서도 절실한 꿈을 꾸고 있다. 그 땅에 재활용품으로 집을 지어 그의 손으로 부활시킨 이 고물 재생 동물로 진짜 자연사 박물관을 꾸미고 싶어 한다. 마음 넉넉한 고물 땅 임자 계시면 꼭 최정현 씨를 기억해주시라.

최정현은 ‘반쪽이’란 이름으로 더 귀에 익은 만화가이자 고물 재생가다. 남북 분단으로 ‘온쪽이’가 못된 ‘반쪽이’ 최씨는 1980년대 중반부터 군부독재를 비판하는 만화로 필명을 날렸다.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다녔지만 만화에 더 쏠려 일본에까지 만화전시회를 하러 다녔다. 그의 펜이 얼마나 날카롭던지 한때 경찰이 그의 만화집을 압수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영화평론가인 아내 변재란 씨를 뒷바라지하며 외동딸 하예린을 키운 외조 정신이 빼어나 1994년 제2정무장관실(현 여성가족부)이 주는 ‘제 1회 평등부부상’을 받았다. 만화집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포기하세요’ ‘반쪽이의 육아일기’ 등이 있고, 딸과 함께 만든 ‘하예린이 꿈꾸는 학교, 반쪽이가 그린 세상’을 펴냈다.

요즈음은 경기도 봉담에 작업실을 차리고 고철과 폐품에서 생명의 이미지를 불러내는 연금술사로 날 가는 줄 모른다. 목숨붙이들이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에 죽음더미에서 새 삶을 꽃피우는 그는 오늘도 연장을 놓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