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장애인자동차' 만든 현대고등학교 기술동아리 공남윤


자동차는 인간의 빠르고 편리한 발이다. 우리가 원하는 그곳으로 자동차는 군소리 한 마디 없이 열심히 내달려준다. 지구촌 곳곳에 수많은 자동차가 제 갈 길을 열심히 가고 있지만, 여기 이 자동차만큼 기특하고 아름다운 자동차가 또 있을까. “모형이 아니라 정말 움직이는 거야?”“와,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다!” 여기저기에서 감탄사가 쏟아진다. 서울 현대고등학교 개교 20주년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현대 20’ 자동차를 본 현대고교 학생들. 수 백 개의 시선들이 앙증맞게 생긴 흰 자동차에 꽂혀있다. 한번 꽂힌 시선은 쉽게 거두어지질 않는다. 친구들의 작품이기에 더욱 그렇다.

휠체어 탄 채로 거뜬하게 운행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크게 원을 그리며 학교 운동장을 한바퀴 돌고 있는 ‘현대 20’에서 눈을 떼질 못한다. 멋들어진 주행을 마치고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자 함성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진다.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구성된 베데스다 현악 4중주단에서 비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신종호 교수(충남대 음대)가 시승을 마치고 하늘 높이 손을 들어 박수에 화답한다. 신 교수의 얼굴 가득 웃음이 흘러 넘친다.

“학생들이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합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빠르고 승차감도 좋아요. 불편한 점이 전혀 없네요. 현대고등학교 학생들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이런 자동차를 발명했다는 것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요.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신 교수는 휠체어를 탄 채로 타고 내리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만든 것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현대 20’은 현대고등학교 기술 동아리인 ‘자동차·항공기 연구반(FETS : 땅에서 하늘까지)’ 학생들이 만든 장애인을 위한 전동자동차.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보았을 ‘차 타기의 번거로움’을 말끔히 씻어낸 자동차라 할 수 있다. 구기복 교사는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작품을 구상하다가 이 전동자동차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따스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미래를 꿈꾼다

‘자동차·항공기 연구반’은 1992년 구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70kg짜리 초경량 1인승 비행기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구 교사는 15년 동안 동아리를 이끌어오면서 휘발유 1리터로 1,000km를 달리는 자동차, 1인승 헬리콥터, 인력으로 움직이는 잠수함, 무공해 자동차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발명품들을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왔다. 현대고등학교 개교 20주년을 기념하여 ‘현대 20’이라 명명한 이 전동자동차는 구 교사와 학생들에게 대단히 의미 깊은 작품이다. “학교 공부에 바쁜 학생들이지만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이라 시간을 쪼개어가면서 연구에 몰두했어요. 저는 주말마다 학생들과 청계천시장이나 마장동 폐차장을 돌아다니며 부품을 사 모았죠. 연구 초점은 장애인들이 불편함 없이 탈 수 있게 하는데 맞추었습니다.”

23명의 동아리 학생들은 구 교사의 열정적인 지도와 전문 서적, 자동차 잡지 등을 통해 학습했다. 환경을 생각해서 전기 충전 모터를 장착했고, 다리가 불편해 브레이크나 가속기 페달을 밟을 수 없는 점을 고려해 핸들은 오토바이 식으로 바꾸었다. 휠체어를 탄 채 모든 동작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현대 20’의 두드러진 특징.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정민관 학생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자동차가 학교 운동장을 누비고 다니는 것이 마냥 뿌듯한 듯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첫 시승의 감동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저희 손으로 페인트칠까지 한 자동차가 운동장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현대 20’에는 미래의 과학도를 꿈꾸는 학생들의 꿈이 담겨있고 세상과 이웃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배어있다. 학생들의 똘망똘망한 눈을 보는 순간, 이들의 꿈과 사랑이 담긴 전동자동차가 도로를 누비고 있는 장면이 오버랩 된다.


글·공남윤(자유기고가) 사진·김경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