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착한 눈빛들을 만날 때 나는 행복하다 .


어둠이 내리는 도시의 길을 걸었다. 한 가게 앞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서있는 50대의 사내를 보았다. 선한 눈빛.
나는 그 좌판 앞에 서서 선한 눈빛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한 가정의 가장이고 가난을 불평하지 않는 아들딸과 삶을 타박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아내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버지가 늦게 좌판을 파하고 돌아가면 아직 잠들지 않고 기다리던 아들과 딸이 뛰어나와 아버지의 봇짐을 받아들고 아내는 아주 늦은 저녁을 지어 선한 눈빛의 사내에게 건넬 것이다.
힘들지만 흐뭇하게 웃으며 그는 아주 천천히 늦은 저녁을 먹으며 그날 하루를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의 선한 눈빛 앞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의 모습들을 보았다. 선한 눈빛의 사람 앞에서 가난은 그리 큰 폭력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착하다는 것은 이미 모든 것을 이긴 자의 표정이기 때문이다. 눈빛이 선하고 표정이 순한 사람들이 그려 가는 삶은 그래서 이 힘든 세상에서 아름다운 위안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출가했던 절에서도 그렇게 맑은 눈빛의 처사 한 분이 있었다. 그 때 그는 이미 60이 넘은 나이였었다. 아주 작은 키에 머리는 언제나 삭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스님들보다도 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새벽이면 일어나 경을 독송하고 낮이면 그 많은 절의 일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나갔다. 어쩌다 내가 양말이라도 선물하게 되면 그는 너무나 고마운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하곤 했다.
그의 인사에 나는 오히려 쑥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세상에 도인이 있다면 바로 이 분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는 공양도 혼자서 공양간에서 먹고는 했다. 방에 들어와 드시라고 해도 그는 그 곳이 편하다며 착하게 웃고는 했다.
나는 때때로 떡이며 과일 같은 것들을 들고 그를 찾아가고는 했다. 그의 곁에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과일을 건네고 행복을 선물 받고는 했던 것만 같다. 혼자지만 쓸쓸하다 말하지 않고 힘들지만 오히려 착하게 미소 짓는 그의 모습 앞에서 나는 자주 따뜻한 감동을 만나고는 했었다. 그가 있어 나의 행자 생활은 참 좋았던 것만 같다.

누구나 어려운 삶의 시간들을 그렇게 선한 눈빛과 조용한 미소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쩌면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개의 사람들은 힘들 때면 거칠어지고 난폭해 진다. 그리고 희망을 멀리 내팽개쳐 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없는 삶이다. 적어도 가슴 속에 사랑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어려움 속에서도 착한 눈빛의 사람들이 짓는 미소는 그래서 별빛보다도 빛나는 것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면서 그런 착한 눈빛을 만날 수 있는 이 세상이 내게는 못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