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높이자, 감성지수 임혜신 外



감성아, 일어나라

요 근래 나는 너무 바쁘다. 사회초년생으로서, 막바지 대학생으로서의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하느라 몸과 정신이 몹시 피로하다. 그와는 반대로 언제나 할 말 많고 시끄럽던 내 감성은 전에 없이 참으로 잠잠하다. 훌륭한 케이크 한 조각의 섬세한 맛에 감동하고, 카라밧조의 아름다운 바쿠스에 맹렬히 두근거리던 가슴을 가진 나의 감성이 낮잠을 자고 있다. 아니, 내 사랑스런 감성과 다정스레 놀아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서, 일이라는 수면제를 먹여 억지로 재워버렸다는 것이 더 솔직한 고백이겠다.

이제는 감성을 깨우고 싶다. 감성을 재우고 나니 더 바빠진 내 시계는 쉴 새 없이 재깍거리기만 할 뿐 숨을 쉬지 않는다. 이러다 죽어버리겠다. 감성아 일어나라.

회사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에 지하철 역에서 나눠주는 일간지대신 파리에서 사 온 베르메르 화보집을 보며 그림 속 여인들의 그림 너머의 삶을 상상해보기, 점심시간 밥 먹을 때 시네마 천국 OST를 들으며 계절의 끝자락을 붙잡고 늘어지기, 주말에 늦잠자지 말고 라디오 크게 틀어놓고 신나게 빨래하기,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에 들러서 언제나 내 가슴을 벅차게 했던 수많은 책들의 정글 사이에서 낮잠자기, 늘 굼벵이처럼 굴어서 그 별명도 ‘굼벵굼벵’인 사랑스러운 내 애인을 위해서 주말에는 맛있는 점심 해주기.

아, 할 일이 참 많구나. 이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감성을 데려다가 실컷 부려먹도록 해야겠다.

임혜신·부산 해운대구 좌동

느낌자리에서

최근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람들마다 각자가 가진 감성지수가 높아지는 추세인 것 같다. 그래서 감성지수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그것은 바로 공연장, 온전히 음악으로 가득 찬 공연장을 찾는 것이다. 입시준비에 지친 나에겐 고3 생활을 벗어날 하루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공연장이었다. 그곳에 오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와 같은 생각으로 올 테지. 바쁜 일상을 잠시나마 잊고 싶은 마음….

‘쿵쿵쿵’ 입구에 들어서면 심장을 터트릴 것만 같은 음악소리가 울린다. 모든 걸 잊고 음악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공연장 안의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있다. 얼굴을 몰라도, 이름을 몰라도, 모두가 하나 되는 공간. 공연장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곳이 아니다. 느낌 충만한 영혼. Feel…. 그걸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연주인과 관중들은 온전히 아름답다. 공연장은 뜨겁고 열정적이며,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바쁜 일상을 뒤로 한 채 나만의 음악을 즐기다 보면, 내가 이해하는 세계도 그날의 음악만큼 확장된다. 음악을 이해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즐기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공연장은 일상에 쫓기듯 도망치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서의 나는 음악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것이 많아지는 만큼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씩, 자라고 있다. 공연장에서의 나는 늘, 그런 느낌에 휩싸여 있다. 음악뿐이 아니다. 무언가를 알고 사랑하게 되는 일. 정말 멋진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리하여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공연장은 내게 있어 가장 좋은 배움자리이며, 사랑자리이고 느낌자리이다.

박소연·덕소고등학교 3학년

거울 속의 맑은 눈을 보다

비 오는 날에 존 콜트레인의 “My one and only love”를 듣고 있으면 잊고 있던 첫사랑이 콜트레인의 저음부에서 고음부로 춤추듯 올라가는 색소폰 연주에 묻혀 내 귀를 간질인다. 이윽고 음악이 끝나면 서글픈 마음이 들어 얼마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첫사랑의 실패는 그녀와의 사랑에 그 원인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문제의 본질은 내 마음의 표현방식에 있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의 음모임을 발견한다. 내가 만들어낸 멋진 자화상은 그녀에게는 물론 내 자신까지 속이고 말았다. 그것에는 동기유발과 자극이라는 이성적 자아로서의 양지는 물론 진정성의 상실이라는 독이 함께 들어있음을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때로는 한없이 약해지고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귀여운 어리광도 필요하다. 사랑은 상대방의 완벽한 모습에의 동경보다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주고픈 욕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감성지수일 것이라 믿는다. 인간의 감성 자체를 숫자로 나타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 거울 속의 나를 보는 맑은 눈이야말로 감성지수의 중요한 척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첫사랑에 실패했던 것이다.

그때 조금 더 솔직하고 소박했더라면…. 아마도 지금 내 방에 흐르는 존 콜트레인의 연주는 그것에 대해 흐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진동아·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EQ를 높이는 방법

감성지수(emotional quotient)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한다. 하버드 대학의 대니얼 골먼(D.Goleman)이라는 학자가 1997년 란 저서에서 ‘지능 지수가 높은 사람보다 감성적인 능력이 우월한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면서 IQ보다 EQ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우리의 감성지수를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 대학입시를 위해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수업이 고등학교에서 진행되고 있고, 사회에 나가기 전에 많은 경험과 도전을 통해 세상과 젊음을 느끼고 누려야 할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모두 토익 시험과 여러 자격증 시험에 목이 매여서 역시나 불안한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또한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 역시 언제 명퇴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취업 후에도 계속해서 토익과 영어공부, 그리고 자격증으로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좀더 확실히 하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여유로움보다는 정확하고 계산적이며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과 현실을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점점 마음이 굳어지고 단단해졌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감성지수를 올릴 수 있을까?

이 문제의 해답을 나는 먼저 책과 영화에서 찾고 싶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 속의 등장인물이나 배우를 통해서 드러나는 풍부한 감성과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마음속의 잃어버린 감성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마전 개봉한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보면서 많은 관객들이 울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특히 남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고 한다. 영화관에서 실제로 보니 남성들의 흐느끼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울게 했을까?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사랑과 병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 한다는 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런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직접적인 경험은 아니더라도 그 느낌을 통해서 단단해진 우리의 마음을 좀 더 감성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직접 그런 마음을 느껴보라는 것이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병으로 떠나 보내는 경험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감성지수를 높이는 데는 이 세상에서 사랑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 생각된다. 사랑을 해 보라. 책과 영화를 통해서 많이 느꼈다면 이제는 그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표현하고 서로 부딪히면서 느껴보자. 비록 그 사랑이 영화와 같이 아름답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을 지라도 그 사랑은 충분히 가치가 있고 우리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 줄 것이다.

김창현·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