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나는 어디서, 무엇에서, 누구에게서 떠나왔는가? 김영덕 外



나는 ‘너’를 떠나 왔지만

처음 고백하던 날, 수줍게 건네 주던 뜨거운 캔커피.
우리 둘이 함께 영원히 행복할 거라고 약속했던 작은 공원.
네 번째 손가락의 반지 자국.
은하수가 흐르는 하늘과 생전 처음 본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던 엠티.
너의 생일마다 불러주었던 나의 생일 축하 노래.
새끼손가락에 곱게 들였던 봉숭아꽃물.
항상 책이 넘쳐났던 우리 둘이 함께 쓰던 사물함.
조금 천천히 타자고 졸라대던 나를 뒤에 태우고 달리던 2인승 자전거.
“보고 싶어”라는 전화 한 통에 한걸음에 나를 보러 달려와 준 네가 품속에서 꺼낸 식은 캔커피와 새벽녘의 안개.
너를 만나면 항상 오래 걸어야 했기 때문에 언제나 신어보고 싶었던 신발장 속 예쁜 구두.
함께 쓰던 우산. 장롱 속에 있는 커플티. 되돌아온 편지 3통.
네가 만들어준 커플 홈피. 네 이름이 새겨진 은색 이름표.
내가 감기 걸렸을 때마다 네가 만들어 주던 따뜻한 흰우유.
다시 함께 보고 싶은 영화 ‘클래식’.
그리고 너와 나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
난 ‘너’를 떠나왔지만 ‘내가 길들였던 너’에게서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남은옥·인천 부평구 부개1동

끝이 보이지 않는 숙제 하나

‘나는 어디서, 무엇에서, 누구에게서 떠나 왔는가?’
살아가면서 이러한 의문을 한번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지만 제대로 결론을 얻은 사람 또한 과연 있을까.
조그만 것도 커다랗게 부풀려 생각하고 고민하는 성격의 나는 늘 이런 생각의 파편들로 무성했다. 사춘기 시절에도 그러했고,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지금 역시 그것은 마치 불변의 법칙처럼 한결같다.
그런 고민들에 뒤척일 때 늘 나를 따라다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의 탈피였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그것은 나 자신을 인정하기 시작하던 그 시점에서부터 내가 엮어가는 모든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기심, 나약함, 그리고 쓸데없는 욕심 따위. 나는 참 많이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런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또 다른 나를 재창조해야 했고, 때문에 힘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만들어진 나의 모습에 익숙해져 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고, 결국엔 본래의 나를 구분짓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해가 바뀌고 더 많은 사람들과 대면하게 되면서 옳고 그름,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손을 놓아야 하는 것은 바로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그릇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숙제를 하나 얻었다. 어쩌면 평생을 두고 해결해야 할 나만의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든 비슷한 숙제를 가슴에 하나씩은 끌어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절망적이지 않다. 그릇된 나를 버리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나는, 물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정양·경기 광명시 광명2동

집착으로부터의 탈출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도 늘 집착하면서 산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때로는 아주 큰 것에 이르기까지 집착하지 않는 것이 없다. 집착은 우리를 초조하게 하고, 항상 불안스럽게 한다. 그렇지만 그런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착은 늘 욕심으로 연결된다. 욕심을 갖는다는 것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까?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욕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욕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늘 마음을 가다듬고, 인내하고, 노력할 뿐이다.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성취를 이루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도 내 성취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을 보면, 분명 나름대로의 성취는 나 자신의 생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내게 생긴 또 다른 습관은 일에 대한 집착뿐이다.

생각해 보자. 산행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산 정상에 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상이 바로 저 앞에 있다고는 하지만 정상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온 길보다는 더 험난한 길이 될 것이다. 산 정상이 바로 저 앞에 있는데 돌아서는 것은 어쩌면 비겁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올라야 하는 산이 꼭 저 산일 필요는 없다. 산은 어디에나 있다. 지금 이 순간 저 산으로 올라야 한다는 것은 집착이며, 헛된 욕심일 뿐이다.

이쯤해서 마음을 비우자. 그러면 저 산은 바로 내 곁에 있는 것이 아닐까? 행복이 곧 내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김영덕·서울 성북구 석관동

나 돌아가리라, 소풍 끝내는 날

따사한 태양 빛이 깃드는 언덕이다. 청청한 강줄기를 따라 들꽃들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서늘한 선들바람결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맨발로 어린 아이가 뛰어놀고, 집짐승과 들짐승이 함께 어울리는 곳. 슈렉과 피오나가 그들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기뻐하는 곳. 자연 속에 생명이 충만하고, 삶 속에 사랑이 풍족한 곳. 창조주와 피조물이 웃으며 서로 화답하는 곳. 바로 그곳이 내가 돌아가야 할, 그리고 떠나온 내 영혼의 고향이다.
아니, 내가 떠나보낸 하늘 고향이다. 이제는 나의 교만과 탐욕으로 더럽혀지고, 호흡 가쁜 삶으로 가득차게 되었지만,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 위한 목수 아들의 수난으로 인하여 다시금 생명과 사랑이 깃들 언덕이다. 자연의 푸르름이 회복될 것이며, 참된 인간다움이 소생될 것이며, 평화의 기운으로 뒤덮일 것이다.
내가 떠나보낸 그곳으로 돌아가는 날, 삐끗거리는 문턱에서 한눈팔지 않고 나를 기다려오신 그분께 천상의 시인 천상병처럼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 소풍을 끝낼 수 있기를.
조은수·서울 송파구 오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