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모든 여자의 꿈은 혼자 여행하는 것이다 황경화



어느 날 우리나라 지도를 펴 놓고 들여다보다가 어디든 떠나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번 그런 생각이 드니까 검불에 불이 붙듯이 떠나고 싶은 뜨거운 갈망으로 가슴이 들끓었다. 그것도 하루 이틀 걸리는 가까운 길이 아니라 아주 먼 길을 걷고 싶었다. 끝없이 이어져 나간 황토 길을 걸으며 푸른 보리밭이며 산과 강들을 보며 우리나라 땅을 내 발로 지치도록 걸어서 가 보고 싶었다.

나는 왜 떠나려 하는가?
그래서 결정한 것이 국토 종주 길이었다. 우리나라 저 남쪽 끝에 있는 해남 땅끝마을부터 통일 전망대까지 총 2,000리 길, 800km 남짓 되는 길이니까 넉넉잡아 40일은 걸릴 듯싶었다.
그렇게 떠나려니 가장 걱정스러운 게 집에 혼자 있게 될 남편 이었다. 더구나 혼자 간다고 하면 안 보내 줄 게 뻔했고, 또 보내 준다고 해도 혼자 보내 놓고 얼마나 걱정을 할까. 하는 수 없이 산악회 회원 두 명과 같이 간다고 했더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 남편이 너무 고마웠다. 두 아들과 며느리에게만 혼자 가는 걸 알리고 아버지한테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 뒀다.
경비는 숙박비를 포함하니 만만치 않았다. 40일을 예정하니 숙식비를 포함해서 하루 4만 원, 총 160만 원,넉넉잡아서 200만 원을 준비했다. 신발은 경등산화로 했고, 간단한 비상약과 기초 화장품과 갈아입을 옷, 비상 식량, 우산, 지도 등을 준비했는데 배낭 무게가 12kg이나 되었다.
3월 21일, 나는 인천산악회 회원들과 버스를 타고 광주로 가서 무등산 산행을 마친 후에 혼자 해남까지 내려갔다. 비 내리는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서 집에 두고 온 남편 생각을 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 먼 길을 혼자 떠나려 하는지, 정말 내가 혼자 해낼 수는 있을지 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산악회 아우가 이렇게 말했었다.
“누님! 누님이 3~40대에만 떠나셨어도 얼마나 좋았을까요!”
“내겐 지금이 딱 적기다.”

길 위에서의 화해
해남에 도착하니 땅끝마을 가는 버스는 이미 끊겨 있었다.
마침, 취재차 영광에 내려왔던 큰아들 내외가 해남까지 와서 땅끝 마을까지 데려다 주어서 고마웠다. 이날 밤은 아들 내외랑 같이 땅끝마을의 푸른 모텔이란 곳에서 선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22일 월요일,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이른 아침 땅 끝 전망탑엘 들렀다가 아들 내외랑은 삼거리에서 헤어졌다. 홀로 머나먼 길을 떠나는 내가 맘에 걸리고 걱정스러웠는지 며느리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 내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며느리 등을 도닥여 준 후, 아쉬운 작별을 하고 혼자 걷기 시작했다.
첫날의 코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른쪽으로는 잔잔한 남해 바다가 햇빛에 반짝였고, 왼쪽으로는 길가에 핀 동백꽃이 붉었고, 산에는 진달래가 한창이었다. 길엔 차도 별로 없이 봄볕만이 하나 가득했다. 묵상은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다. 혼자 걷는 길은 내게 묵상을 보너스로 주었다. 그렇게 해서 종주 첫날은 남창까지 갔다.
강진을 지나 영암에선 월출산을 새벽에 올랐다. 이른 새벽 월출산은 온통 내 것이었다. 샘물과 꽃, 새 소리, 기암괴석, 바람과 운무가 모두 나만을 위해 있었다. 그 산 위 천황봉에 서서 나는 고해 성사를 했다. 이 많은 날까지 살아오면서 무슨 짓은 안 했으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내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에 대한 미움도 한 꺼풀 벗겨 낼 수 있었다. 남편이 전화를 했는데, “여보, 우리 아파트에 벚꽃이 피었어. 꽃 다 지기 전에 빨리 와!”
가슴이 뭉클했다. 나도 남편이 무척보고 싶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하루에 40km 이상씩을 걸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
나주, 광주, 담양, 순창, 임실, 진안, 무주, 영동, 상주, 문경새재, 월악산, 제천, 영월, 평창, 진부, 오대산, 명계리. 구룡령에 도착했다. 그런데 구룡령에서 뜻밖에 마중 나온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혼자 올라오는 나를 보더니 와락 끌어안으며 “여보! 내가 당신한테 뭘 잘못했는데 이런 짓을 한 거야?” 하며 목을 놓아 울었다. 나도 울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고개 위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우는 건 정말 진풍경이었으리라.
그렇게 구룡령을 넘어 양양, 속초, 간성, 거진을 거쳐 종주 시작 23일 만인 4월 13일, 고성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통일전망대엔 가족과 친구들이 나와 있다가 반겨 주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철조망 너머로 넘실대는 파도를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통일이 되었더라면 나는 계속 걸었으리라. 아니 길이 끝나는 곳이 어디 있으랴. 길 끝나는 곳에 또 길이 있겠지.

마침표가 없다
그곳까지 걸어가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 하지만 고마운 이들이 많았다. 밥값을 받지 않았던 식당 아주머니들, 낯선 사람에게 잠을 재워 주었던 분들, 오래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이번 종주를 통해서 나는 많은 경험을 했다. 참으로 힘들었던 것은 걸레처럼 부르트고 너덜너덜해진 발바닥의 아픔보다는 해질녘에 낯선 거리에 서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오늘은 어디서 자야 하나를 걱정할 때였다.
하루하루가 무의미했던 생활에서 누구나 일탈을 꿈꾸어 보지만 막상 떠나보니 내 집이 내 남편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그런 일을 또 할거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꿈과 도전엔 마침표가 없다고.

글쓴이 황경화는 전직 교사이며, 올 봄에 혼자 국토 종단 여행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