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나를 만나러 너에게로 간다, 여행가 조병준 반칠환



철새와 텃새
같은 깃털을 지닌 새들이지만 어떤 새는 저토록 험난한 길을 넘나드는 철새가 되고, 어떤 새들은 늘 손바닥만한 마을을 맴도는 텃새가 되는 걸까?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 들어서자 한 떼의 ‘평화’들이 구구구- 빵 부스러기를 쪼느라 부산하다. 낯선 사람이 다가가도 발길에 채일 듯 게으르게 달아나는 저들은 텃새들이다. 점점 날기보다 걷기를 좋아하는 저 잿빛 평화들은 저러다가 마침내 닭이 되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을 그친 것은 공원 안에 빈 나무 벤치를 발견했을 때였다. 나는 함께 걷던 이에게 자리를 권하고 나도 앉았다.
조병준. 시인이자 번역가이자 문화평론가이자 여행가이다. 오늘은 여행가로서의 저이를 만나러 왔다. 저이는 수 차례 인도와 유럽 여행 등을 통해 경험한 일들을 책으로 펴 내기도 했다.
때마침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짐을 꾸려서 산으로 들로 떠나는 휴가철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고삐를, 넥타이를 풀어 던지고 자유인이 되고 싶어 가슴 설레일 것인가? 왜 철새는 떠나고자 하고 텃새는 머물고자 할까. 철새를 매혹시키는 ‘떠남’의 의미는 무엇이며, 텃새를 매혹시키는 ‘머묾’의 의미는 무엇일까?

떠남
“나는 덮어놓고 ‘떠나자’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떠남이란 무뎌진 일상으로부터 새로운 탈출을 감행하는 겁니다. 그런데 떠나는 것 자체를 심드렁하거나 고생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떠날 필요가 없어요. 누구나 자신의 강력한 동기가 있는 곳에 머물 권리가 있습니다.”
철새와 텃새가 있듯 사람에게도 ‘유목형 인간’과 ‘정주형 인간’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떠남’을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궁즉통이라고,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떠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동네 뒷산이나 가까운 공원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죠. 저는 옛날부터 자주 써먹던 수법이 하나 있어요.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떠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중 낯선 역에 내려서 돌아다니다 옵니다. 요즘은 지하철 역이 많아져서 갈 데가 오죽 많아요? 떠나고는 싶은데 용기가 없어서 못 떠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은 일상 속에서 숨이 덜 막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마더 테레사의 집’으로
저이가 ‘일상 속에서 처음 숨이 막힌 것’은 1990년이었다. 저이도 남들과 같이 번듯한 직장에서 날마다 시침과 분침을 잘라내며 바쁜 샐러리맨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년째 되는 어느 날, 직장을 그만 두고 떠나기로 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었다.(그래서일까? 그이는 평생 똑같은 얼굴을 보아야 하는 배우자 없이 혼자 살고 있다.)
무작정 인도에 갔다. 한달 예정으로 갔는데 석달 반을 다녔다. 아직 국내에 인도 여행 붐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사막과 설산과 열대 해변과 세계 최대의 슬럼이 한 나라 안에 있는 인도는 대단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마더 테레사의 집’과 만났다. 병들고 버려진 사람들을 보살피는 그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 버려진 핏덩이 아이를 보고 펑펑 울었다.
그러나 자원봉사를 결심한 것은 두 번째 여행 때였다. 묵고 있는 여인숙에 유럽에서 온 20대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이 새벽마다 나가서 밤 늦게 들어오길래 무얼 하러 다니느냐고 물어보았다. ‘마더 테레사의 집’에 봉사를 하러 다닌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내 한 몸도 힘들어하고 있는데 이 젊은이들은 봉사를 하러 다니는구나, 그이도 자원봉사에 합류했다. 아직 생존해 있던 마더 테레사를 가까이에서 대하는 귀중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일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단다. “늘 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훌륭한 일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고통스럽고, 반복적이고, 싫증이 나지는 않던가요?”
“싫증요? 그럴 새가 없어요. 늘 환자들과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죠. 모르던 환자들 얼굴을 알아가고, 병을 알아가고, 자원봉사자들끼리도 알게 되어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싫증날 새가 없죠. 열심히 간호한 사람이 병이 완쾌되어 퇴원을 하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보람 있죠.”
그이는 이 때에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감동적인 책으로 엮어 내기도 했다.
‘아, 책에서 이렇게 뜨거운 감동을 받기란 정말 얼마만인지. 선생님이 말라깽이 청년 빠블로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엉엉 우는 장면, 싱가포르 처녀 링링이 주선한 설날의 국가대항 노래자랑 장면, 선생님이 진정으로(!) 사랑한 스페인 여인 마르따와 그렇게 봉사활동 중에 만나고 헤어진 뒤 아기 엄마가 된 그녀와 전화하는 장면…,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이런 대목에서는 책을 덮고 호흡을 고르기도 했지요.’ <제 친구들과 인사하실래요?>라는 제목의 그 책을 읽은 어느 독자의 리뷰이다.

가서, 몸으로 때우면 된다
이후로도 그이는 인도 여행을 할 때마다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봉사를 했다. 모두 세 차례에 걸친 봉사 활동을 합치면 1년 가까이 된다.
“‘봉사 여행’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할 만한가요?”
“그럼요. 나는 그곳에 있던 때를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꼽습니다. 함께 봉사를 했던 다른 분들 역시 같은 생각이더군요. 지금도 당장 달려가고 싶은데,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꼼짝할 수가 없네요.”
세상은 늘 떠나기만 한다면 삶을 구축할 수 없고, 늘 머물기만 한다면 삶이 정체될 것이다. 또 여행이 가능한 것은 누군가가 정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떠난다면 그것은 여행자들이 아니라 난민의 대열일 것이다. 머묾과 떠남은 어느 정도의 비율이 적당할까?
“꼭 비율을 정할 것은 없고 그때 그때의 인연에 따라 머물거나 떠나면 그만이지요. 저는 인생의 4분의 3은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4분의 1 정도를 떠날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마더 테레사’의 체험은 그이로 하여금 인생의 십일조에 대해 생각을 하도록 했다. 자기한테 남는 것들, 돈만이 아니라 시간과 노동력의 10%를 봉사하는 데 쓰고 싶다.
인생을 70년으로 치면 7년 가량을 캘커타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보내고 싶다.
“‘마더 테레사의 집’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냥 비행기 타고, 캘커타에 내리면 돼요.”
싱거운 대답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그렇단다. 캘커타에만 ‘마더 하우스’가 열 곳이 있는데, 공항에서 내려 누구에게나 물어도 찾아갈 수가 있단다. 자원봉사에 무슨 복잡한 절차가 있는 게 아니고, ‘가서, 몸으로 때우면 된다.’



나눔, 나눔, 나눔
그이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나는 ‘떠남’을 대략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해 보았었다. 하나는 물리적인 공간 이동이 그것이요,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집착으로부터의 벗어남이다. 전자는 짐을 싸들고 떠나는 여행으로 해소될 것이지만 후자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나는 인생의 화두를 세 가지 ‘나눔’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첫째 나눔(dividing)은 어떻게 하면 집단주의로부터 벗어나 건강한 개인이 되는가, 둘째 나눔(communicating)은 그 개인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것인가, 셋째 나눔(sharing)은 그들이 무엇을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봉사를 주제로 한 저이의 여행이야말로 세 가지 화두를 풀기 위한 방법론인 것을 문득 깨달았다. 여행은 집단에서 개인으로 돌아가는 길이요, 새로운 만남과 그 소통이며, 새로운 공유물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저이가 체험한 봉사 여행이야말로 욕망과 집착에 매인 ‘나에게서 벗어나 너에게로 가는’ 유용한 방법이 아닌가. 그러나 또한 모든 여행은 기실 자기 자신으로의 귀일(歸一)이다. 오지 여행을 가서 사물과 풍경만을 만나고 오는가? 아니다, 궁극 자기 자신을 만나고 오는 것이다. 나를 만나러 너에게로 가자.

글쓴이 반칠환은 시인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서라벌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누나야'등이 있으며, 장편동화 '하늘궁전의 비밀'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