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30대 여자들의 점심식사 방은경



즐기자에 대한 단상
난희 : ‘즐기자’가 주제라는 말을 듣고 제일 처음 떠올랐던 것은 여가생활이었어.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고 하니까 그런 쪽으로 생각되었나봐. 난 이 자리에 참석하기 전에 주말과 휴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보내느냐 하는 책도 사서 읽고 나왔어.

경란 : 대단하네. 책까지 사서 읽고 오다니. 난 ‘즐기자’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게 바람이더라. 요즘 그런 내용의 드라마도 많잖아.

혜라 : ‘재미있다, 즐겁다’라는 것은 변화가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직업이 바뀌거나, 환경이 바뀌거나, 아니면 애인이 생기거나…. 인생을 즐기려면 집착하지 말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즐거워지는 거야. 때로는 일탈된 삶을 살 필요도 있고. 아무튼 새로운 걸 자꾸자꾸 해 봐야 해. 그런데 주부들은 생활환경이나 직업이 바뀔 수 없으니까 애인이 생기는 거밖에 없으려나.

경란 : 아, 나도 바람피고 싶다. 김래원 같은 사람하고…(경란이는 김래원의 광팬임). 내가 돈을 막 쓰는 거야. 이것저것 사 주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 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일도 즐길 수 있을까?
난희 : 직장을 다니는 사람 중에 일을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난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도 많이 봤거든.

혜라 : 난 이제까지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해 왔잖아. 그런데 일이 즐겁다고 생각된 적은 요즘이 처음이야. 그전까지는 난희 말처럼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었어.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러다보니 항상 만족도 못하고 재미도 없고, 더 좋은 회사가 없을까 하는 생각만 했었지.

경란 : 자기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아. 자기 일에 100% 만족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나는 애를 낳으면서 피아노 학원을 그만뒀잖아. 가끔씩 내 생활을 포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스트레스도 받고 그랬거든. 일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니까 더욱 하고 싶어지는 거야. 요즘은 일주일에 몇 차례씩 아이들이 찾아오는 것도 감지덕지하고 있어. 아예 일을 못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난희 : 즐거움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 주말에 해야지 하면서 미뤄두었다가 막상 주말이 닥치면 하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도 스트레스로 작용하더라구. 그러니까 평소에 계획을 세워서 하고 싶은 것들은 그때 그때 해야 할 것 같아.

혜라 :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 궁극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지. 그리고 일도 일이라 생각하면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지. 나 같은 경우엔 손님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그러니까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자연히 손님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내가 즐기는 것
혜라 : 내가 운동을 하는 목적은 근육을 만들어서 훌륭한 보디빌더가 되는 것이었어. 걸어가더라도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볼 정도가 되는 거지.(웃음) 그런 몸을 만들기 위해서 ‘오늘은 어떤 운동을 몇 번 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정해놓고 하다 보니 오히려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더라구. 그래서 운동을 쉬면서 내가 왜 운동을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봤어. 그리고 내린 결론은 운동 그 자체를 즐기자는 거였지. 그래서 목표도 정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했어. 그랬더니 운동이 즐거워지더라. 한 시간 하던 것도 두 시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운동이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어.

경란 : 나의 요즘 생활은 알다시피 두 아이들하고 하루종일 지내는 거잖아. 유치원은 내년부터나 보낼 계획이고. 솔직히 연년생 남자아이 키우는 게 힘에 부칠 때가 많아. 힘들다고 생각하면 끝이 없잖아. 그래서 생각을 바꿨지. 즐거운 마음으로 육아를 하기로.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내 자신에게도, 또 아이들에게도 좀더 너그러워진 것 같아.
그리고 조만간 다시 일을 시작할 예정인데, 그 일을 어떻게 할까 설계하는 일이 너무 즐거워. 나에겐 피아노가 일이기도 하지만 평생 즐길 수 있는 것이지.

난희 : 난 일을 하지 않으니까 상대적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있잖아. 예전에는 집안일 끝내고 여유가 생기면 같은 단지 내에 있는 아줌마들이랑 모여서 비디오를 보거나 수다를 떨곤 했지. 그런데 그 순간에는 재미있는데, 저녁때쯤 되면 허무하고 남는 게 없더라구. 또 가끔씩 아줌마들과 볼링을 치러 가기도 하고, 찜질방도 가는데, 기분 전환은 되지. 무언가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여가를 즐겼으면 해서 지금 찾고 있는 중이야.

즐기기 위한 조건
경란 : 난 가끔 ‘이제까지 내가 한 게 뭘까. 벌써 서른다섯인데…’라는 생각이 들곤 해. 그러면 남편은 “애 둘 낳고 나랑 잘 살잖아. 또 요즘 희귀병도 많은데, 아이들이 건강하니 얼마나 감사하니”라고 말해. 그런데 이런 것은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거든. 결혼해서 지금까지 너무 아이들에 얽매여 있었던 것은 아닌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아이들 때문에 포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내가 즐기고 싶은 일을 하려면 일단 애들이 없어야 하겠지? 믿을 만한 기관이나 가족에게 맡기고 내 스케줄대로 생활을 해 봤으면 좋겠어.

혜라 :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해. 난 결혼할 때 남편이랑 사고방식이나 취미가 완전 반대여서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 무엇을 하든지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더 많이 싸웠던 것 같아. 그러니 괴로울 수밖에. 안되는 것은 포기해야 해. 남편도, 자식도. 내 삶을 찾아야지.

난희 : 남편, 자식을 다 포기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라고? 내가 보수적이라서 그런가. 그래도 가정이 있는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남편, 애들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혜라 : 물론 가정을 포기하라는 얘기는 아니고, 좋아하는 일은 해야 한다는 거지. 나 같은 경우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밥하라고 하면 못 일어날 거야.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해야 하니까 저절로 일찍 일어나지게 되더라구.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잠자는 시간을 줄인 거지. 보통 하루에 4~5시간을 자는데, 그 나머지 시간은 계획을 세워서 생활하고 있어. 난 쉬는 날도 똑같이 하루를 보내.

난희 : 맞아. 시간이 없다면 만들어야지. 틈새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일 거야. 집안일 하다 보면 그런 시간들이 많거든. 그 시간들을 계획을 세워서 알차게 보낸다면 10년이 지났을 때는 엄청 달라져 있을 거야.



아이과 함께 즐기기
난희 : 평일엔 시간이 없으니까 주로 주말을 이용하는데, 주말엔 복잡하니까 일찍 집을 나서서 일찍 돌아오게끔 계획을 짜지. 그리고 되도록 자연이랑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해. 집에서 가까운 중랑천에 가서 인라인을 타기도 하고, 가까운 야외에 나가기도 하고. 앞으론 아이들과 도서관 나들이도 생각하고 있어.

혜라 : 난 아이에게 경험을 많이 쌓게 해주고 싶어서 여기 저기 많이 다니는 편이야. 알다시피 우리 남편이 나가는 걸 싫어하잖아. 그래서 주로 나랑 아이만 다니는데, 어린이 뮤지컬을 보러 가기도 하고, 공원에 가서 뛰어놀기도 하고, 전시회 같은 곳에 가기도 하고, 서점에도 가고, 인사동도 다녀 보고…. 그렇게 지내.

경란 : 우리 아이들은 6시에 기상해. 우리 아파트 뒤에 산이 있어서 아침마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지. 그리고 집에 하루 종일 있으면 나도 힘이 드니까 될 수 있는 대로 밖으로 데리고 다녀. 도시락 싸서 공원도 가고, 산에도 가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즐거워.

내가 즐기고 싶은 것
난희 : 난 이제까지 집에만 갇혀 있는 우물 안 개구리 같았어.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애들과 남편 뒷바라지에… 할 일이 너무 많잖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도 적고,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만 지내는 것 같아. 결혼 전처럼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가끔 우울하기도 해.

콘서트나 뮤지컬, 연극 같은 것도 보러 다니고, 또 창의적인 일을 해서 성취감을 느껴봤으면 좋겠어. 요즘엔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졌어. 취업 가능한 것 중에서 텔레마케터나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 같은 것에 도전해 보고 싶어. 생각은 많은데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네.

경란 : 난 운동도 하고 싶고, 좋아하는 밥도 먹고, 맘껏 일하고, 그러다가 퇴근할 때쯤 애들 생각이 났으면 좋겠어. 애들에 얽매이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 그리고 욕조에 몸 좀 푹 담그는 것도 소원이다. 우리 목욕탕은 애들 장난감 때문에 말이 아니거든. 참, 하이힐도 신고 싶고….
또 피아노 공부를 다시 하고 싶어. 정말 끝까지 가서 무아지경이라는 것을 한번 느껴보고 싶거든. 내가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까지 한번 해 보고 싶어. 예전에 손톱이 깨질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던 적이 있거든. 다시 한번 그때처럼 미쳐보고 싶어.

혜라 : 난 꼭 해 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어. 첫번째는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하는 거야. 꼭 자전거여야만 돼. 계산해 보니까 150대 이상이 필요하겠더라. 그리고 두 번째는 도보로 대한민국을 다녀보는 거지. 백두에서 한라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3종 경기에 출전하고 싶어. 나의 한계에 도전해 보고 싶거든. 아무튼 죽기 전엔 꼭 해 볼 거야. 그런데 실현 가능할까?

그녀들의 점심식사와 수다는 3시간 가량 지속되었다. 아이들과 동행하지 않았기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 속에서 그녀들을 현실로 불러들인 것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었다. 훌쩍 지나버린 시간을 보고는 다들 서둘러 일어서면서 하는 말은 “지금 애들 올 시간이라 일어서야겠다. 다음에 또 만나자.”

다시 그녀들은 평범한 아줌마의 삶으로 되돌아갔다. 어쩌면 그 일상적인 평범한 삶이 그녀들에겐 가장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방담을 정리한 방은경은 아산재단 편집실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