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랩퍼 키비의 모두가 즐거운 수업 고선희



하자센터
하자센터는 연세대학교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청소년 문화 작업장입니다. 공식적인 이름은 ‘서울 시립 청소년 직업체험센터’이지만, 그냥 ‘하자’라고 부릅니다. ‘하자!’, ‘하하하하 웃으면서 하자!’
이곳은 십대들이 일, 놀이, 학습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실천적으로 배우는 가치의 중요성을 체험하고 나누는 공간입니다. ‘스스로 업그레이드 하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자’, ‘자율과 공생의 원리’를 모토로 합니다.
하자센터의 활동 원리는 ‘자기주도 학습의 원리’입니다. 설립 초기부터 청소년의 자율과 권리 신장을 위한 사회와의 소통과 더불어 그들의 의무와 독립의 실제적 조건 마련을 위한 지속적인 실험을 벌여 왔습니다.

놀자 프로젝트
하자센터에서는 수업을 ‘놀자 프로젝트’라고 부릅니다. 함께 준비하고 참여하며 소통한다는 의미를 가진 수업 이상의 수업입니다.
하자센터에서는 영상, 디자인, 대중음악, 생활기획 등 파트별로 수십 가지의 ‘놀자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있습니다.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그 중에서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 해 보고 싶었던 것을 선택해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놀자 프로젝트’에서는 누구나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에게 배우는 사람이 됩니다.

놀자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02-2677-9200으로 전화를 걸어 110번을 누른 다음, 문의하거나 www.haja.net에서 프로젝트들을 확인하고 수강 신청을 하면 됩니다.



“이곳에서는 강사(선생님)를 ‘각각의 문화판을 돌리는 사람’이라고 해서 ‘판돌’이라고 하고요, 마찬가지로 학생을 ‘죽돌’이라고 한답니다. 하자센터에서 죽치면서 논다는, 혹은 작업한다는 의미로…. 아~! 제 이름이요? ‘키 작은 나무에 비가 내리고’를 줄인 거예요.”
심장 고동 소리 같은 음악을 따라 간 곳에 판돌 ‘키비’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름이 자기 자신을 대표한다고는 하지만 태어날 때 일방적으로 주어진 이름은 자신을 잘 표현한 말이 될 수 없기에, ‘하자’에서는 주민등록상의 이름 대신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을 지어서 서로를 부른다고 합니다. 형·동생·언니·오빠 하는 수직적 호칭문화를 벗어나 서로를 존중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는군요. 생소하지만 내 학창 시절, 꿈꾸던 그런 문화 공간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수업(하자에서는 프로젝트라고 부르지요.)은 간단했습니다. 우선 키비가 제시한 라임(Rhyme:운율 혹은 리듬)에 맞춰 가사를 쓴 다음, 돌아가면서 음악에 맞춰 각자의 랩을 완성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업은 빠른 비트에 맞춰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온 강의실을 다 쑤실 것이라는 내 예상을 깨고, 너무나 진중했습니다. 라임이 정해지면 ‘쿵- 쿵- 쿵- 쿵. 쿵쿵따- 쿵쿵따-’ 하는 음악만이 강의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기를 15분. 정적을 깨고 각자의 스타일대로 랩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시를 쓰라고 해도 이렇게 진지할까?’ 하는 생각이 언뜻 났지만 질문은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가장 좋아하며,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기 때문임을, 그래서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가르친다기보다 공유하고 있다고 봐요. 서로에게서 배운다는 것. 이것이 우리 프로젝트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죠.”
키비 역시 판돌이 되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랩에 대한 이론이 정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돌들에게 일방적으로 이렇게 하라거나 라임을 이렇게 바꾸라거나 하는 방식을 선택하지는 않는다네요.
“남의 라임에 손대는 것은 정말 잘못된 짓입니다. 라임을 맞추는 여러 방식만 알려 줄 뿐, 전 그 이상의 권한을 갖고 있지도, 또한 갖지도 않을 거예요.”
매번 같은 음의 대중가요에서 듣던 랩과는 달리, 이 프로젝트에서는 같은 라임이라 해도 혹은 같은 랩이라 해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부르는 방식이 다 달랐습니다. 매번 다르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 이것이 랩의 매력이며, 이들이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요?



“힙합이라고 하면 젊은 사람들만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 생각이 달라요. 힙합 속에 담긴 정신이 젊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이들은 자신들이 나이가 들면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힙합을, 랩을 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따지고 본다면 우리에게도 랩과 같은 것은 있었습니다. 소리꾼이 창·아니리·너름새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 갔던 판소리가 그것인데, 특히 빠른 장단인 자진모리나 휘모리로 부르는 부분에서는 랩적인 요소가 무척 강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골 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에…’나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으로 시작되는 노래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요? 이들의 바람은 이미 이루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옛말에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많이 아는 것만이 미덕인 줄 알고 자신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지식 쌓기만을 강요해 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즐기는 방법마저도 배워야 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즐기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남는 게 있어야 한다느니, 얻는 게 있어야 한다느니 하는 것들은 진정 즐기는 자들의 몫이 될 테니까 말입니다. 이들처럼요.

글쓴이 고선희는 아산장학생 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