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날카로운 웃음, 풍자만화 성완경



웃음의 기원
카네티는 그의 노벨상 수상 저작 ‘군중과 권력’ 속에서 하이에나를 예로 들어 ‘웃음은 잠재적인 음식물을 놓쳐 버린 데 대한 육체적 반응에서 기원한다’고 말한다.
야생 하이에나는 썩은 고기를 먹는다. 하이에나가 식욕을 느낀 먹이감을, 눈을 뻔히 뜬 채, 다른 동물에게 빼앗겨야 했던 경우가 얼마나 많았을까를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이에나가 인간의 웃음소리와 거의 비슷한 소리를 내는 유일한 짐승인 것은 그 까닭이라고 한다.
웃음의 기원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웃음과 권력의 관계를, 그리고 웃음의 존재론적 차원을 이해하는 데 빛을 준다.

가면 벗기기
풍자와 유머 그림은 세상에 존재하는 권력과 악과 위선 그리고 모순과 갈등에 찬 인간 조건으로부터 그 존재이유를 부여받는다. 풍자와 유머는 권력자의 우상으로부터 그 신성한 대좌를 빼앗는다. 권력자의 얼굴 뒤에 가리워진 진짜 얼굴, 가면 뒤의 얼굴, 가죽 속의 살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웃음과 더불어 우리는 절대 권력의 마법으로부터, 그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일순 해방된다. 그러나 권력자만이 우리의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자신까지 포함한 휴먼 코미디 속에 찌들어 있는 모든 모순과 허위의식이 우리의 생살까지 아프게 하는 웃음, 절묘한 틈새의 간파와 그 통찰력과 더불어 오는 웃음을 빚어낸다.

공모자들
유머와 풍자는 일찍이 풍자화(Caricature, 카리카튀르[프]/ 캐리커쳐[영], 풍자화와 풍자만화 양쪽 모두를 아우르는 의미로 이 글에서 씀)의 전통 속에서 완숙하게 표현되어 왔다. 풍자화의 주된 토양은 사회 풍속과 정치 상황이다. 특히 정치 상황적 배경은 유럽에서 종교개혁과 농민전쟁의 시대 이후로 풍자화의 가장 기름진 토양이 되어 왔다.
풍자화의 소재는 인물일 때도 있고 사건이나 상황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어느 쪽이든 그 표현은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뜻(생각)의 은유적 표현을 위해 대상의 신체적 특징을 변형하거나 과장하는 것’이 풍자적 표현의 핵심이다.
풍자화가 깨뜨리는 것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의 균형이다. 이를 위해 풍자 화가는 대상을 왜곡하거나 과장할 뿐만 아니라 온갖 저돌적이고 희극적이고 괴이하고 터무니없는 상상, 가장 저속하고 뻔뻔스러우며 냉소적인 표현방식까지도 거침없이 차용한다. 그리고 아주 교묘하게 우회적인 방식으로 독자와 공모적(共謀的)인 소통을 이루기도 한다.
풍자화는 인물의 개별성이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속에 있다는 사실, 즉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 그 자신이 지닌 개념이 바로 그의 가장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포인트라는 점을 잘 이해한 예술이었다. 앞서 말한 베르그송의 웃음의 정의가 생생해지는 것이 이 지점이다.

습관적 만화 독자를 넘어
풍자화는 만화의 중요한 뿌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만화는 풍자화의 전통과는 좀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며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20세기 만화는 신문의 주말 칼라 부록판에 꼬마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엎치락 뒤치락 식의 모험과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웃음과 해방감을 선사하는 ‘킷 코믹스’(Kid Comics) 류의 만화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신문의 구독자 확보 경쟁과 연관이 있었다. 만화가 영어로 ‘Comic Strip’ 또는 ‘Comics’라고 불리우고, 만화라면 ‘Funny하다’, 즉 ‘우습다’는 뜻을 자동적으로 연상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만화에 이어 그 후로도 공상과학과 수퍼 영웅, 환상과 에로, 무림과 기업, 스포츠, 순정 등의 장르가 추가되면서 만화는 산업으로 크게 번창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초창기 ‘딱지 만화’나 ‘명랑 만화’ 이후 대체로 이와 유사한 계보를 따라 발전해 왔다.
그러나 가벼운 웃음과 모험과 오락적 재미가 만화의 전부가 아니다. 언더그라운드 만화나 ‘그래픽 노블’류의 만화를 비롯한 예술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저자 만화’ 혹은 ‘독립 만화’의 장르도 있고, 기존의 상업적 포맷을 활용해 그 속에 높은 예술적 가치를 담아낸 만화들도 있다. 촌철살인의 시적 그래픽을 보여주는 빼어난 카툰들이나 매혹적인 일러스트 만화를 활용한 이미지 북 스타일의 책들도 있다.
한마디로 다양한 종류의 만화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 오늘의 이런 다양한 만화 생산물들은 기존의 좁은 의미의 습관적 중독성 만화 독자를 넘어 보다 열려지고 ‘성숙한’ 독자와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본질
만화의 본질을 ‘가벼운 웃음’ 못지 않게 ‘날카로운 웃음’ 속에서도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그림의 풍부한 역사적 발전 궤적까지도 음미하는 자세로 새롭게 만나 보자. 바로 이런 것을 역사적으로 풍부히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카리카튀르(풍자화)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만화와 시각 예술의 풍요로운 뿌리로서 풍자화의 전통을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 이 때문이다.

글쓴이 성완경은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인하대 교수로 재직 중이고, ‘민중미술, 모더니즘, 시각문화’, ‘성완경의 세계만화탐사’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