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하루 15초씩 웃으면 이틀을 더 산다 김연수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는 것을 경망하게 여겨온 유교적인 전통 탓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잘 웃지를 않는다. 웃어도 이면 체면을 가려가며 웃는 수준이지, 서양사람들처럼 목젖이 훤하게 보일 정도로 크게 웃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그러나 되짚어 보면 ‘일소일소 일노일노(一笑一少 一怒一老)’,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란 경구를 보더라도 일찌감치 서민들은 점잔빼는 양반네와는 달리 웃음의 효용성을 깨닫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럿이 모이면 33배 더 잘 웃는다
의학계가 웃음의 치료 효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9년 미국에서 노먼 커즌의 ‘환자가 느끼는 병의 해부’라는 책이 나온 뒤부터다.
UCLA 교수였던 노먼은 불치병에 가까운 강직성 척추염에 걸려 뼈 마디마디에 염증이 생기고 손가락을 굽힐 수도 없었다. 그런데 여럿이 모이면 33배 더 잘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친구들을 초청, 같이 웃었고, 그렇게 웃음 요법을 시행한 지 8일만에 통증없이 엄지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통증없이 테니스나 골프를 칠 수 있었고, 승마를 즐겼으며, 손을 떨지 않고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수 있을 만큼 치료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10분간 배꼽 잡고 웃고 나면 2시간 동안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웃음은 해로운 감정이 스며들어 병을 일으키는 것을 막아 주는 방탄조끼”라고 소개하고 있다.

1분 웃으면 10분 운동한 것
18년간 웃음의 의학적 효과를 연구해 온 미국의 리버트 박사는 평소 웃음을 자주 터뜨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혈액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그들의 피 속에 종양세포를 공격하는 ‘킬러 세포(Killer Cell)’가 많이 생성돼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 사람들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백혈구와 면역 글리불린은 많아지고 면역을 억제하는 코티솔과 에프네피린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면역 글로불린(IgA와 IgG)의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의 심리학자인 로버트 홀덴은 1분 웃으면 10분간 운동한 것과 같다는 주장을 했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윌리엄 프라이 박사는 웃을 때 몸 속 650개의 근육 중 231개가 움직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심하게 웃으면 배가 당기고 얼굴이 얼얼해짐을 느낄 수 있다. 잘 안 쓰던 얼굴과 목 주변 근육이 자극을 받고 횡격막과 복부의 근육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웃으면 즐거워진다
그런가 하면 웃음은 일단 기분을 좋게 만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과 담배로 풀려고 한다. 그러나 웃음은 심리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소시키는 수단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 폴 에크만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나타내는 얼굴의 표정은 문화나 종족의 차이에 관계없이 동일하다고 한다. 또 얼굴의 표정은 감정을 나타내지만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감정에 관계없이 세상 어느 곳 사람이나 느낄 수 있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짓게 한 다음에 몸과 마음의 변화를 측정해 보니 기분이 나빴을 때의 생리적 변화가 나타났다. 즉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웃음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감소시키는 대신, 엔도르핀과 엔케팔린, 도파민 등 스트레스 해소 호르몬을 분비시켜 기분을 고양시킨다.

웃는 사람이 똑똑하다
또 웃는 사람은 똑똑해진다는 보고도 있다. 미국 버지니아의 윌리엄&메리 대학의 덕스 박사는 웃음과 유머가 사람의 뇌를 골고루 자극한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재미나는 이야기를 들으면 뇌의 왼쪽이 단어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 다음 감정을 담당하는 뇌 앞부분의 활동이 늘어나고, 뒤를 이어 조합 기능을 가진 오른쪽 뇌가 움직여 유머라고 판단하게 된다. 끝으로 웃기 몇초 전에는 감각을 느끼는 뇌의 뒷부분 활동이 증가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뇌의 델타파가 물결치듯 밀려오다 절정에 도달하면서 웃음이 터져 나오게 된다.
결론적으로 웃으면 오래 산다. 미국 인디애나주 볼 메모리얼 병원이 외래 환자들을 조사해 보니 하루 15초씩 웃으면 수명이 이틀 더 연장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고 싶을 땐 울어라
이처럼 웃음의 의학적 효능들이 속속 검증되면서 미국 듀크대 종합암센터, 뉴욕 향군병원, 버몬트 메디컬센터 등 많은 병원에서는 유머 도서실과 유머 이동문고 등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뉴욕의 콜럼비아 장로교병원에선 아예 코미디 치료단까지 발족했다.
참고로, 아주 화 나거나 슬플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때는 펑펑 우는 것이 좋다고 한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눈물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성분들이 배출되어 감정이 가라앉고 기분이 나아지게 된다고 한다.
웃음이든, 눈물이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자기 감정 PR 시대이다.

글쓴이 김연수는 문화일보 의학전문 기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