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웃음나라를 건설하라! KBS개그콘서트 책임프로듀서 강영원 반칠환


웃음 공장 공장장은 용하다
부자는 세던 돈 뿌리며 웃고, 빈자는 고봉밥 먹다 웃고, 군인은 총대를 내던지며 웃고, 포로는 결박이 풀어져라 웃고, 학생은 취직 걱정을, 주부는 살림 걱정을, 농촌 총각은 장가 걱정을, 환자는 아픔을 잊고 한 날 한 시 떼구르르 구르고 나면, 쫄깃쫄깃한 배꼽이 골목마다 서 말씩 나뒹구는 웃음의 국경일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웃고 나서 다시 얼굴 굳어지는 그런 웃음 말고 마음 넉넉해져서 가진 것 서로 나누고 다독여주는 그런 웃음의 나라.
‘일소일소 일노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란 말은 예로부터 내려온 직관이지만, 실제로 현대과학의 힘으로 분석한 웃음은 그만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웃으면 뇌하수체로부터 엔돌핀 같은 자연 진통제가 나오고, 부신에서 염증을 낫게 하는 화학 물질이 나오며, 동맥이 이완되어 혈압을 낮추어 주고, 스트레스와 분노, 긴장을 누그러뜨려 심장마비와 같은 돌연사를 예방해 준다고 한다.
꽤나 영험한 ‘웃음약’을 만들어 오랫동안 세상 사람들 이맛살을 펼쳐온 웃음공장 공장장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 치고 그이가 만든 웃음약을 복용하지 않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용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여의도 KBS 신관 1층 로비 커피숍에서 그이를 만났다.

웃음약 하나 주세요
KBS 예능국 부주간, 프로듀서 강영원. 지난 해 연평균 시청률 25%라는 ‘웃음 매출’을 올리고 있는 ‘개그 콘서트’의 책임 프로듀서이다. 나는 웃음공장 공장장의 얼굴이 의외로 단단하고 예리한 데에 놀랐다. 곧 ‘웃음의 뒤안’에 대한 직감이 왔다. 끓는 쇳물을 담는 거푸집이 쇳물처럼 쉽게 녹아 흘러서는 곤란하듯이 웃음을 담는 거푸집의 용융점도 높을 수밖에 없는걸까?
“평소에 잘 안 웃는 편이십니까?”
“아니오. 남을 웃기지는 못하지만 잘 웃는 편입니다. 다만 웃음 생산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좀 엄격하게 보아야 하지요. 연기자나 담당 피디에게 반가운 사람은 아닙니다.”
“요즘 하루 일과는?”
“제 주요 일과는 모니터링입니다. 각종 신문 기사를 들여다보고, 심의실의 지적이나 시청자 센터,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도 하고, 타사 프로그램의 동향도 분석하여 전체 프로그램의 방향을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코미디 프로를 오랫동안 맡아 오셨는데 처음부터 오락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아뇨. 입사 때는 드라마를 하고 싶어서 지원했는데 희망자가 많아서 탈락했습니다. 그래서 예능국에 배치되었는데 오히려 이 일에 아주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유머 1번지’부터 코미디 연출을 맡은 그이는 ‘회장님, 우리 회장님’, ‘스리랑 부부’,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 등을 만들어 온 TV 오락 프로그램 제작의 베테랑이다.

세월 따라 웃음 따라
“세월에 따라 웃음에도 어떤 흐름이 있나요?”
“있지요. 시청자들의 호흡이 매우 빨라졌습니다. 여운을 주고 돌아서서 생각할 만한 코미디를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옛날에는 ‘웃으면 복이 와요’처럼 온 가족이 함께 보고 웃는 코미디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대상층이 세분화되었습니다. 개그 콘서트는 주로 십대나 이십대의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너무 젊은 층 위주가 아닌가 하는 점이 저로선 아쉬운데요.”
“저도 옛날 코미디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어서 모든 층이 함께 볼 수 있는 코미디를 시도해 보았는데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지금은 삼, 사십대 이상에겐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대신하고 있지요.”
“코미디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우리 국민들이 코미디를 보는 잣대가 너무 준엄합니다. 오래도록 인이 박인 유교적 영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관대함’이 부족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코미디의 기능 중 하나가 사회적 약자 편에서 강자를 풍자함으로써 줄 수 있는 쾌감인데, 건강한 풍자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드는 풍토가 그것입니다. 이를테면 어떤 직업의 극소수 부당한 점을 지적하면 당장 그 집단으로부터 항의가 들어옵니다. 도둑, 강도, 바보들 빼고 합법적인 직업을 부정적으로 다루면 가만 있지 않습니다. 최근에도 외국인 근로자의 입장에서 악덕 기업주를 풍자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당장 기업주들의 압력이 들어와서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비판과 풍자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직업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가 아닐까? 또는 일부 사람들의 기득권 챙기기와 오랫동안 당하고만 살아온 사람들의 피해의식의 발로인 것처럼 느껴져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소재의 제한도 많습니다. 정치, 종교, 섹스 등은 가장 풍부한 코미디 소재의 창고인데 아직도 제대로 다루지 못합니다. 정치 풍자는 비교적 자유로워졌습니다만.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건 안 돼, 저것도 안 돼.’ 제껴 놓다보니 남는 건 ‘똥, 오줌, 방귀’뿐입니다. 그러면 또 저질이라고 시청자들한테 비판을 받지요.”

코미디는 코미디언이 만들고
“코미디가 발전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외부적으로는 각종 소재 제한의 금기가 사라지고, 시청자들의 의식도 좀 유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제작 여건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피디들은 항상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연기자나 작가는 충분한 보수를 받지 못하니 창의력 있는 좋은 인재가 활동하기를 꺼려합니다.”
“개그맨들은 무대 위에선 웃기지만 평소 일상에선 어떤가요.”
개그맨 이야기가 나오자 그이의 얼굴이 환해진다.
“일을 마치고 사석에서 만나는 개그맨들이 더 재미있습니다. 나는 그 때마다 웃음으로 샤워를 하는 느낌입니다. 개그맨들은 우리가 이야기하면 그저 평범한 일도 전혀 다르게 표현할 줄 아는 재주를 타고났습니다. 그 사람들이 꺼내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깜짝 놀랄 반전 멘트를 숨겨 놓고 있지요.”
그이는 막상 무대 앞에서는 ‘재미없다’ ‘더 웃겨봐!’ 하고 윽박지르기 일쑤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연기자들이 얼마나 머리 쥐어짜며 고민을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며 앞으로는 코미디언들을 더욱 존경해야겠다고 시키지도 않은 다짐을 한다.
“‘드라마는 작가가 만들고, 쇼는 피디가 만들지만, 코미디는 코미디언이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코미디에서 코미디언들의 역량은 대단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코미디언들은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오듯이 자기가 자기의 소재를 물고 옵니다.”
그이는 시종 코미디 연기자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주름 펴기
웃음 연구가들에 따르면 여섯 살 난 어린아이는 하루에 삼백 번을 웃는 데 비해 성인은 겨우 일곱 번 정도 웃는다고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웃음으로부터의 탈주’인가?
더 큰 웃음을 웃기 위해 현재의 작은 웃음을 참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어제 굶은 한 끼를 평생 다시 찾아 먹을 수 없듯이 지금 웃을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찾기란 불가능하니 ‘웃음의 저축’이란 언제나 부도가 나기 마련인 것이다. 웃음은 아무리 소비해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니, 웃을 수 있을 때 웃는 게 현명하다.
강영원, 나는 저이가 달구어 놓는 웃음 다리미가 세상의 주름들을 구석구석 활짝 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