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노래는 신의 선물, 음유시인 백창우 반칠환



노래를 잊은 사람들이 저마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갈 때에 그들을 그늘로 불러 앉히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주는 음유시인이 있다. 어떤 이들은 무거운 등짐을 선뜻 내려놓지 않고, 가장 좋은 노래는 가장 좋은 때에 부르자고 말한다. 그러나 살아 생전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저이는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이야기한다. 영원히 가져갈 수 있는 이승의 짐이란 없으므로 잠깐 짐 위에 걸터앉아 노래를 부르자고 청한다. 끝내 벗기 힘들면 등짐을 진 채라도 노래부르자 한다.

노래쟁이
마포구 성산동 성서초등학교 앞 사거리에 있는 작업실에서 백창우를 만났다. 작사가, 작곡가, 가수, 시인, 음악 프로듀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저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고 있을까?
“나는 ‘노래쟁이’라고 생각해요. 머리 커서 지금까지 노래를 만들며 살아왔습니다. 어떤 때는 대중가요, 어떤 때는 국악, 어떤 때는 동요, 어떤 때는 시인과 함께 노래를 해왔습니다. 제 별명 중 하나가 ‘잡곡가’입니다. 잡다한 일을 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지요. 하지만 모두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몇 달째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 노래 동인 ‘나팔꽃’ 북 시디 3집을 만드는 일이고요, 또 하나는 일제 시대부터 현대 시인에 이르기까지 육십 편의 시를 가려서 노래로 만드는 겁니다. ‘노래 속에 숨은 시, 시 속에 숨은 노래’라는 주제로 음반 네 장과 책 두 권을 만들고 있습니다.”
“시를 노래로 만드는 데에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우리 나라처럼 시가 많은 나라가 있을까 싶습니다. 참 아름답고 깊은 시들이 많은데 이런 보물들이 점점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팔십 년대까지만 해도 시가 사람들 가까이 있었는데 이제는 문학청소년들이 사라지고, 문학의 정수인 시가 아이들과 너무 멀어지는 것 같아서 이 일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시에 날개 달기
그이는 1999년 결성된 시 노래 모임 ‘나팔꽃’을 이끌고 있다. 나팔꽃 모임은, 본래 한 몸이었으나 따로따로 놀고 있는 시와 노래를 함께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나팔꽃 콘서트를 열 때마다 ‘시인’을 초청하곤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시인인데도 대중들이 시 한 편을 외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새삼 우리의 삶이 팍팍하게 느껴지곤 한다. 노래는 기억의 한 방식이다. 저이는 마치 활자의 새장에 갇힌 시에 노래라는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소리 없는 시에 음표를 달아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오래도록 해 왔다.
“나팔꽃 정기 콘서트는 샘터파랑새극장에서 다달이 열리고요, 섬진강 축제라든가 이효석 축제와 같은 비정기적인 콘서트가 열리기도 합니다.”
시인의 시 낭송과 토크를 곁들인다. 콘서트마다 객석이 꽉 찰 정도로 반응이 좋다. 텔레비전에서처럼 ‘폼 잡는’ 대신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들이 고안되었다. 출연한 시인들도 딱딱한 문학 강연이 아니라 차 한 잔 같이 마시며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노래야 잠을 깨렴
“이 콘서트에는 항상 동요가 함께 합니다. 시인이 쓴 동시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쓴 글에도 곡을 붙여서 올립니다.”
동요에 대한 저이의 관심은 각별하다. 팔십 년대 초, 저이는 성남의 한 달동네 교회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아이들이 부를 우리 노래가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대부분 외국의 포크송 등에 우리말을 붙여 부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이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요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 어린이 노래 모임인 ‘굴렁쇠 아이들’을 만들어 공연 활동을 펼쳐 왔다. 전래동요와 창작동요를 책과 음반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삽살개’는 그이가 운영하고 있는 우리 나라 최초의 어린이 전문 음반사이다. 동요 이야기가 나오자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동요가 어린이만의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노래를 어른이 함께 불렀지요. 그런데 이제는 동요가 발붙일 자리가 사라졌습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의 영향도 있지만 아이들이 동요를 부를 시간이 없는 게 문젭니다. 학원 가랴, 학습지 풀랴, 또 공부 이외에 노는 것은 나쁘다는 인식 때문에 동요는 학교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일상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있습니다.”
동요가 열악해지는 또 다른 원인은 창작동요를 만드는 사람들의 구태의연함에서도 비롯된다. 그이는 방송국 창작 동요제 심사를 할 때에 출품작 200여 곡이 어쩌면 그리도 어슷비슷한지 매우 슬퍼졌던 경험을 갖고 있다.
“옛날 우리 어른들은 굶어도 애들 밥은 챙겨주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동요에서는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출판 환경이 많이 발달했는데도 어린이 악보책은 기능 위주의 건조한 책들 일색입니다. 시디 또한 아무렇게나 만듭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자 기울인 그이의 노력은 이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 지난 해 그이가 펴낸 ‘보리어린이 노래마을(그림책 6권, 음반 6장)’은 제44회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책을 펴 보면 시집이기도 하고 그림책이기도 하고 노래책이기도 합니다.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것이 되도록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양악기와 국악기, 심지어 부엌 도구들까지 악기로 삼았습니다.”

음악의 주인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노래란 무엇입니까?”
“흔히 음악을 ‘신의 선물’이라 합니다. 음악은 우리에게 주는 게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노래가 사람의 마음을 착하고 따뜻하게 하는 겁니다. 또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노래 하나가 크게는 한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좁히면 나와 아빠, 나와 엄마, 나와 친구가 노래를 통해 함께 손을 잡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선생님의 노래 철학이 있다면?”
“나는 노래가 만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노래가 우리들 가까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전래동요시대에는 대중이 노래의 주인이었는데 현대는 전문가 시대입니다. 대중은 구경꾼이 되어 버렸습니다. 소수의 노래 전문가와 다수의 들러리들로 바뀌었습니다. 들러리들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만만하고 따뜻하고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래식이라 해서 큰 행복을 주고 대중가요라 해서 작은 행복을 주는 건 아닙니다. 고급 음악은 폼 나는 것, 대중음악은 나쁜 것이라 생각 말고 그 중 좋은 것을 취하면 됩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신이 준 선물인 음악의 주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노래는 꽃이다 ‘신이 준 선물’을 풀어보지 않고 끙끙 등짐으로 되가져 가면 신이 노하지 않겠는가? 저이는 끊임없이 신의 선물 보따리를 끌러 노래를 만들고 들려 주는 사람이다.
그러고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하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노래하라. 언제나 지금 노래하는 자가 승자이다. 아픔을 노래하라. 노동이 잎이라면 노래는 꽃이다. 네 아픔을 꽃 피우라.’

글쓴이 반칠환은 시인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대산문화재단에서 시부문 창작지원 수혜를 받았고, 서라벌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누나야’ 등이 있으며, 장편동화 ‘하늘 궁전의 비밀’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