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밤새 꼽아보고 또 꼽아 봅니다 유광현 外


스물여덟 통의 편지와 열아홉 통의 편지
5년이 흘렀다. 그리고 스물여덟 통의 편지와 열아홉 통의 편지가 남았다.
1998년 여름, 나는 대학생으로서 최후의 방학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는, 순진한 신열에 들떠 있었다. 머릿속의 이상적인 내가 현실의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환경, 봉사, 박애주의… 영웅을 흉내내는 청춘에겐 순도 200%의 유혹이었다. 그렇게 나는 은화, 보라, 한나, 승신이를 만났다. 그리고 혜진이를 알았다.
앞의 네 아이들은 다른 복지재단 환경 봉사 활동에서 만난 인연이다. 우리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 쓰레기 재활용장과 양재천 등을 섭렵하며 자연 보호를 초치기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혜진이. 5박 6일의 재단 농활에서 인절미와 콩고물처럼 붙어다닌 사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만남의 통과의례, 연락처 교환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누가 처음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순수한 우정도 내 가슴 속에 본능적으로 기생하는 회의주의를 이길 순 없었기에 나는 편지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아는 척하기엔 충분히 어리석었고, 붉은 상자 속 그 후 2년여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들이 그 때 그 시간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연락이 끊겼을 때 유효기간이 끝나 버린 나의 이상주의는 그저 인연이 다했을 뿐이라고 체념하게 했었다. 이제 5년이 지나고,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믿지 않는다. 우리의 관계는 노력이 만든 것이었다.
빛바랜 편지지 속에 관계의 단서들이 남아 있다. 나는 애틋한 추억으로 잊는 대신 다시 현실을 보려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나의 현재를 남긴다.
‘나 여기 있어. carrotpie@hanmail.net 연락할게. 그리고 기다릴게.’
남영숙 / 20대/경기도 평촌


할머니의 얼굴
세상이 변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만나고 헤어지고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랴만, 우리는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고 또 무던히도 새롭게 맞이하며 살고 있다.
집앞 우면산에 오르니 알록달록 단풍이 한창이고 하늘은 높푸르다. 어느새 가을은 깊어 발 아래 사각거리는 낙엽소리와 살랑살랑 귓볼을 스치는 솔바람 소리는 나의 가슴속을 파고들고, 뒤돌아 잠시 심호흡을 하고 나면 마치 세월이 멈춰 서 버린 듯하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들어 자꾸 세월 저편의 아련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뜨겁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할머니 얼굴…. 10여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일찍이 서울 유학 온 우리 형제들 뒷바라지를 모두 해 주신 할머니. 우리 형제들이라면 벌벌 떨며 말 그대로 맘 바쳐, 몸 바쳐 돌보아 주신 할머니. 손주 사랑에 그 증손주 사랑까지 사랑이 참 많으셨던 할머니.
아버지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 바람이 나셨더란다. 그래서 속상하고 자존심 상하신 할머니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무작정 일본으로 가셨다 한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어린 아들을 키우셨단다. 아버지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반바지에 타이즈, 구두 신으시고 세발자전거에 의젓이 앉아 계신 모습이다. 비록 사진은 누렇게 변해 볼품이 없지만 그 속의 아버지는 이제 보아도 전혀 촌스런 모습이 아닌 세련된 모습이다.
그렇게 혼신을 다해 당신 아들을 키우시던 할머니는 우리가 태어나자 우리에게 또 그렇게 하신 거다. 일종의 남편에 대한 보상 심리 같은 것이었을 게다. 후에 철들며 할머니가 당신의 아들에게 혼신을 다해 키울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존재 이유, 아들에 대한 마음을 읽고는 할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할머니 생각을 하면 지금도 난 마음이 많이 아프다. 보고 싶은 할머니.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은 슬프고 견디기 힘들다. 혹자는 이별이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라 하건만, 그것이 기약된 이별이건 생사를 넘어선 기약없는 이별이건 간에 어쨌든 이별은 마음에 상처를 주고 우리를 아프게 한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그들과 함께할 수 없을 때, 내가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듯 따뜻하고 그들에게 미소를 짓게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잊혀진다? 그처럼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서로 헤어진 후에도 언제고 나만의 아름다운 향기를 내어 그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다.
굽이굽이 돌아오며 오십줄을 넘어선 이젠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최채운 / 50대/서울 서초구 서초3동


눈 먼 등대지기의 딸
무척이나 낚시를 좋아했던 나였다. 대학입시가 끝나고 홀가분하게 다녀온 겨울 바다 낚시는 곱씹을수록 향기로운 추억이 밀려온다. 섬에서 낚시를 끝내고 돌아오는 배를 놓쳐 버린 나는 그곳에 서 있는 등대 하나만을 친구 삼아 밤을 새워야 했다.
갑자기 불이 켜지는 무인도의 등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선 그곳에는 눈 먼 등대지기와 20대 초반 아니 중반쯤 되어 보이는 긴 생머리의 등대지기 딸이…. 으레 있을 법한 일일 거라 생각했으나 그들은 내가 첫 손님이란다. 눈 먼 등대지기는 잠들고, 촛불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난 밤새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나와 동생이 아닌 오랜 친구처럼…. 새벽녘이 되고 배가 들어오고… “담에 인연이 되면 또 만남이 있겠지요.” 서로 이런 말을 남긴 채 헤어졌다.
그 후 대학생이 된 나는 집이 지방이어서 역을 자주 이용했다. 그리고 어느날 긴 생머리에 청초한 옆모습, 적당한 키에 눈 먼 장님을 부축하고 가는 아가씨를 보았던 것 같다.
만남…. 다가서지 못했을 때 결정되어 버린 헤어짐…. 하지만 그것은 아직도 내게 추억을 주는 내 마음 속의 만남으로 남아 있다. 그 날 이후 한 번도 쓰지 않은 낚시대는 방안에 그대로 있는데….
김용한 / 20대/대학생


20살, 선배와 만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많은 만남을 겪게 된다. 때로는 즐겁고 기쁜 만남, 서로의 존재 자체를 풍요롭게 만드는 만남을 만나는가 하면, 때로는 형식적이고 틀 안에만 존재하는 만남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후자에 속하는 만남이 늘어가고, 전자쪽이라고 느꼈던 만남들도 하나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 무엇이 되어 간다.
그러나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게 되는 만남들이 있다. 지나간 것들의 아쉬움을 모두 망각하게 만들 만큼 그 깊이를 더해가고 쉽게 마르지 않는 ‘인연의 샘’ 같은 만남이다.

여기 나의 ‘인연의 샘’ 하나를 소개코자 한다. 20살, 너무나도 힘차고 세상 두려울 것 없던 그 나이에 만나게 된 한 선배, 시골 사람 특유의 순박함을 고스란히 지닌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던 그 선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즐거웠던 기억의 방 한켠에 머물러 있다.
교문 앞에서 때이른 등교를 하는 학우들의 모습이 보일 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개똥철학을 늘어놓기도 하고, 아스팔트의 뜨거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여름날, 눈물 쏙 빠지는 최루탄 연기를 담배연기로 지워 주기도 하고, 강원도 오지의 농활에서는 마을 아주머니들과 고추를 심으면서 구성진 노래가락을 함께하기도 했던 사람…. 추억들 하나 하나 떠올릴 때마다 자연스레 입가엔 웃음을 머금게 된다.
그와의 만남이 깊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그 믿음을 계속해서 유지해 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자기를 먼저 열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열림이 있어야 서로가 자신의 공간을 상대방과 관련된 것으로 채울 수 있다.
이제 선배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다. 내가 손에 작은 인형을 하나 들고 그의 집에 들어설라치면 그 선배보다 앞서 너무나도 귀여운 세 살바기 꼬마가 “땀춘~~”하며 달려와 와락 안긴다. 그 아이의 맑은 눈망울 속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인연의 샘은 자기가 한 만큼 더 깊어지고 더 맑게 흐른다는 것을….
김상우 / 30대/서울 종로구 명륜동


별꽃을 닮은 여자
‘마지막에 오는 것이 사랑이다.’
어느 영화의 홍보 카피이다. 이 문구처럼 마지막 만남이 되길 바라며 나는 한 여자를 만난다. 몇 차례의 헤어짐을 통해 이전보다 성숙한 만남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고통에 비하면 성숙이라는 대가는 너무 하찮은 것이다. 설익은 판단이 아니길 바라며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막연한 기대를 한다. ‘내가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스스로 물어 본다. … 혼자 대답은 ‘그렇다’이다.
별꽃, 어린아이 손가락만한 길이의 줄기 위에 위태롭게 피는 꽃이다. 말 그대로 별을 닮은 꽃이다. 별을 닮은 꽃, 그 꽃을 닮은 여자.
장미와 같이 화려하고 큰 꽃은 무심코 “예쁘네”라고 말하며 지나칠 수 있다. 이에 비해 이 작디작은 꽃에 거창한 아름다움은 없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다. 너무 작아서 육안으로 다섯 개의 꽃잎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별꽃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아야 한다. 꽃이 작기 때문에 감히 사람의 허리를 굽히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나약함이 오히려 별꽃의 강점이 된다. 여려서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꽃이다. 이런 별꽃을 닮은 그녀는 함부로 다루면 유리처럼 깨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갖게 한다. 섬세하게 자라온 상대를 나의 틀에 맞추다가 깨트려버리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러나 아직도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맞춰가야 하는 것도 많기에 나의 이런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리처럼 여린 그녀는 상처를 입으면 이내 그 날카로움을 드러내어 파괴자에게 상처를 입힌다.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여자에 대해 잘 안다며 우쭐해 할 틈이 없다. 새로운 만남은 누구나 서툴기 마련이다. 서두르고 싶지만 차근차근, 그러나 확실히 그녀 안에 나를 심어 가고 있는 중이다. 또 다른 나이지만 우린 둘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나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염복남 / 20대/대학생


서강대교를 지나다보면 형들이 그리워진다
벌써 7년 전이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하기 전 용돈이나 벌어 볼 심상으로 공사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낯선 사람들과 생활하는 것과 궂은 일을 하는 것이 이젠 제법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처음 며칠 동안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창고에 가서 ‘시누’, ‘반생’ 등등을 가져오라고 시키는데 창고는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가져오라는 건지, 모르는 것은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는 건지….
부산 사투리를 걸죽하게 쓰는 형들 사이에서 막내라는 이유로 귀여움을 받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하게 되면서 ‘공사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와는 많이 틀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로 위하는 마음도 없는 것 같고, 정해진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앞만 보며 달려가는 것 같았다.
반복되는 육체적인 일에 지쳐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다리를 조금 다쳐서 발을 절뚝거리면서 합숙소에 먼저 들어와 잠을 청하고 있는데 형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면 어색할 것 같아 자는 척을 했다. 두런두런… 내 다리를 살피더니만, “많이 아프겠네…” 하면서 파스를 발라 주고 압박붕대로 다친 곳을 감아 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비가 와서 창 밖만 쳐다보고 있던 날, 곁으로 다가와 “집 떠나 있을 때 비가 오거나 아프면 제일 서러운 거야”라며 미소를 지어 주던 형…. 그 미소는 내가 만난 미소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지금도 서강대교와 강변북로를 지나다 보면 문득 그 형들이 그리워진다.
유광현 / 30대/대학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