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그 시절 그곳에서 우리는 만났지요 원재훈


남녀가 만나서 서로의 사랑을 나누는 장소나 방법은 그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한다. 하긴 어떤 것들이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올라 갈 수 있을까 싶다. 신발이나 밥그릇 하나도 그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절 - 조선시대 / 달빛 아래 후미진 담 모퉁이
연애를 하는 장소를 떠올리면, 내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그림이 한 장 있다.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이라는 그림이다. ‘달빛 아래 연인’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그림은 혜원의 풍속화 중에서 그래도 점잖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점잖다는 표현보다는 은근하고 아찔하다라고 말하고 싶다.
기생과 한량으로 추측되는 정분이 난 두 남녀가 있는 장소, 공간을 통해서 우리는 그 시대의 단면을 볼 수 있다. 허름하게 허물어진 담장, 하늘에는 에로틱한 초생달, 그리고 두 연인이 만나는 장소는 후미진 담 모퉁이이다. 혜원은 이 그림의 한 귀퉁이에 이런 글귀를 적어 놓았다.
‘오직 두 남녀만이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부모님 연애하던 시절 - 1950년대 / 명동거리, 창경원 돌담길
부모님들이 연애를 하던 시절은 1950년대이다. 두 분의 연애 사진이 있는 앨범을 보면 그곳이 바로 명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동 거리는 당시의 연인들에게는 데이트 장소였다. 그리고 당시의 창경원(동물원이 있었다)의 돌담길 역시 덕수궁 돌담길 못지 않은 인기 장소였다. ‘어디서 데이트를 하셨냐?’고 하니까 주로 그렇게 명동이나 고궁에서 만났다고 하신다. 그런 걸 뭘 물어 보냐면서.
그리고 다방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 시인이 명동 백작 시절, 문인들과 예술가들과 연인들은 주로 다방에서 인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950년대 이야기다.
모두 전쟁의 후유증과 시대의 아픔이 진하게 배경에 깔려 있는 데이트 장소이다. 그러나 그곳은 또한 생명의 탄생, 혹은 재생의 에너지가 넘치는 역설의 공간이기도 하다.
아버님이 이제 칠순을 넘기셨고, 어머니 역시 칠순의 가파른 고갯길을 걸어 가신다. 두 분의 흑백 사진 몇 장 속에 있는 데이트 장면은 나에게는 바로 내 탄생의 신비가 들어 있는 경전과 같다.

초등학교 시절 - 1960년대 / 음악다방
나는 1960년대생이다. 이 시절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종로로 나간 기억이 있다. 그때 종로의 한 제과점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아이스바를 사 주셨다. 어린 나의 눈에 제과점에서 데이트를 하는 형과 누나들의 모습이 선명하다. 자료를 뒤져 보니 당시에는 음악 다방이 유행이었다. 이것은 1970년대까지 이어진다. 음악 다방에서 멋진 디제이들이 음악을 틀어 주고 ‘죽이는’ 멘트를 날린다. 이 분위기를 가장 잘 품고 있는 디제이는 지금은 은퇴를 한 이종환 씨다. 음악 다방과 음악 감상실이 있는 종로나 명동으로 젊은이의 발길이 이어진다. 차 한 잔을 놓고 젊은 연인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한다.
그것은 당시의 노랫말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김추자의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에서부터 시작해서 김창완 아저씨의 산울림 노래에도 다방을 배경으로 한 음악들이 있다.

고교 시절 - 1970년대 / 빵집, 학교의 교정
1970년대,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시절에는 빵집이 고교생들의 미팅 장소였다.
단팥빵과 곰보빵을 시켜 놓고 교복 입는 학생들이 일렬로 앉아 노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정겨운 모습이다. 빵과 우유를 먹으면서 어색하게 서로의 성적 호기심을 훔쳐 보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어설픈 데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주로 종로의 거리에서 걸었고, 학교의 교정에서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여자친구가 나에게 ‘동심초’라는 노래를 불러 주었다. 학교의 교정이었고, 은행잎이 바람에 떨어지는 가을이었다. 그 공간은 내가 체험한 1970년대의 데이트 장소이다.

대학 시절 - 1980년대 / 막걸리 집, 만경강
나는 80학번이다. 1980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우리들은 주로 막걸리집에서 데이트를 했다. 허름한 식탁에 막걸리와 고등어 구이(고갈비)를 안주로 해서 여학생들과 연애를 했던 것이다.
자욱한 담배 연기, 청결하지 못한 술집, 좁은 공간이 답답해지면 근처의 강이나 산으로 놀러간다. 나는 만경강의 강물소리가 아직도 귀에 아련하다. 밤중에 ‘그녀’와 만경강에서 찐한 데이트를 했다. 가슴이 콩당거리고 두 눈은 한밤중보다 더 아찔하게 캄캄했다. 그러나 나는 그 공간에서 날아가는 철새의 비상을 보았다. 청춘은 날개를 달고 싶어했고, 연애는 잠시 환상의 날개를 우리에게 주었던 것 같다.

아내와 함께 한 데이트 - 1990년대 / 삼청공원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데이트의 공간은 시대별로 확연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1990년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삼청공원이나 덕수궁과 같은 고궁이 가장 큰 인기였다. ‘삼청동 수제비’라는 졸시가 있는데, 지금의 아내와 데이트를 하면서 즐겨 먹었던 음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는 주로 삼청공원에서 데이트를 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와 비슷한 연인들이 드문 드문 있었다.

요즘 청춘남녀들 - 2000년대 / 놀이공원, 피시방
2000년대는 어떨까 싶어 여기저기에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놀이공원, 극장, 피시방, 가까운 교외 등등이다.
데이트 장소가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 데이트의 본질이 변하지 않듯이 장소 또한 큰 변화는 없다. 단지 미국식의 각종 시설과 좀더 세련된 공간일 뿐이다. 아버지가 걸었던 명동 거리는 지금도 유효하고, 내가 다녔던 막걸리집 역시 지금도 연인들이 앉아 있다.

이런 글을 쓰다 보니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소설 속의 한 공간이 떠오른다. 가난한 연인이 데이트 장소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돈이 없어 어디 갈 데가 없는 것이다. 그때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의 몸을 가려줄 벽만 있는 공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글쓴이 원재훈은 시인이다. 최근 산문집 ‘내 인생의 밥상’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