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평범과 비범을 잇는, 나는 강우현이다 고선희


그는 천재다. 또 모든 천재가 그렇듯이 괴짜다. 적어도 내가 만난, 혹은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단연. 글씨를 거꾸로 써 내려가는 것에서부터 비행기로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일과 유리에 감자를 길러 기네스북에 오르는 일까지…. 그의 기인(奇人)적인 행적들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가 천재이기 때문에 비범한 것은 결코 아니다. 남들이 한평생을 고수하려는 자신만의 스타일도 그에게는 창조를 막는 게으름일 뿐이다. 새로운 일에 흥미가 생길 때 그 길을 밟아 보는 것, 자신의 생각을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와 늘 같아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즐거움과 자유를 찾아내는 발상의 전환, 이것이 그가 가진 가장 큰 ‘비범’이다.

기억되고 싶은 이름
“좋은 아버지.”
그래픽 디자이너, 캐릭터 디자이너, 그림동화 작가, 자원재활용 운동가,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 창시자와 (주)남이섬 대표이사까지. ‘정말 한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그가 가진 직함은 많다. 더 놀라운 건, 이 제각기 다른 분야에서 그가 보여 주고 있는 실력이다. 1998년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 공식 포스터 디자인과 2001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포스터 디자인, 서울랜드 캐릭터같이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상품의 캐릭터와 다양한 수상 경력 등이 그것을 대신 말해 주고 있다.
그런 그에게서 주저없이 나온 의외의 답.
“좋은 아버지!”
이 한 마디 말로 그가 비범하다는 것은 또 한 번 입증된 셈이다. 마지막까지 기억되고 싶은 이름으로 그가 원한 건 저명한 일러스트레이터도 남이섬을 변화시킨 인물도 교수도 아니었다. 누구나 될 수는 있지만 되기는 어려운 것,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치고 있는 것. 평범한 대답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답이다.

‘느닷없음’이 일상과 조화를 이룰 때
그에게 ‘비범’은 생각지도 않은 보너스를 받은 것 같이 기분 좋은, 행복한 느낌의 ‘느닷없음’이다. 이 ‘느닷없음’이 일상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비범’해진다. 인부 사이에 있으면 인부 같고, 공무원 속에 있으면 공무원 같고, 또 예술가 속에 있으면 예술가 같아 보이는 사람. 누군가는 정체성이 없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융화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강우현의 ‘비범’이다.
“지식과 상식을 뛰어넘을 때 지혜가 생긴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공동체를 가장한 획일성이라고 그는 말한다. 튀어나온 못을 굳이 내리쳐서 키를 맞추려는, 그래서 보기 좋은 하나됨을 원하고 요구하는 사회.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미라 하더라도 그것은 정체되어 있는 사회의 모습이기에 그는 부정한다. 그리하여 그의 ‘비범함’은 우리가 의심 없이 믿고 있는, 지식과 상식을 뛰어넘을 때 생긴다.
“책 속에 많은 길이 있다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지나가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과감히 많은 사람들이 가려는 길을 버리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 사람. 그는 벌써 ‘비범’하다. 그가 만든 길을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기에 더욱.

캔버스가 커진 것뿐
시끌벅적한 유행가 소리가 강 건너 새들을 깨우던 남이섬은 단지 넓은 잔디와 커다란 나무 그늘이 좋은, 그래서 한나절 거하게 놀다 가기에 좋은, 유원지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섬은 강우현과 만나고 달라졌다.
“남이섬은 달밤이 좋다. 하지만 별밤은 더 좋다. 그런데 새벽을 걷어내는 물안개를 마주하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의 명함 뒤 글귀에서 알 수 있듯, 섬은 ‘캔버스가 커진 것뿐’이라는 그의 대범함, 아니 발상의 전환과 만나 아름답고, 특별한 문화 공간이 되었다.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저녁엔 숲 속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예술가들의 공방과 가마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작품들은 섬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또 ‘아트센터’에서는 남이섬에서 만든, 작가들의 작품들을 살 수도 있다. 몇 안되는 동물들이 갇혀 있던 우리가 그를 만나 ‘달그릇에 은행술 빚는 황금 연못’이 된 것처럼 그에게는 평범한 것에서 가치를 발견할 줄 아는 ‘눈’과 가치 있게 만들 줄 아는 ‘손’이 있다.

남과 다른 그만의 것
오래된 고물상에서 쓸만한 것을 찾아내 이것저것 만드는 아이처럼 그는 버려지는 것들로 무엇인가를 잘도 만들어 낸다.
공사 중 버려질 수밖에 없는 깨진 벽돌들을 그것대로 한데 모아 콘크리트 바닥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스런 - 그러나 정비된 공간을 만들었으며, 보도 블록 또한 네 개씩 세로로 어슷 세워 독특한 무늬의 길을 만들었다. 굴러다니던 철판들은 그의 손을 거쳐 섬 곳곳에 자연스레 서 있는 조형물로 다시 태어났다. 비바람에 연못에 쓰러진 나무도 그대로 하나의 다리가 되었다.
“남이섬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남이섬이 있다.”
강의 깊이를 알기 위해 그는 측량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섬에 거하고 물고기를 잡아 연못에 놓아 주는 일을 하면서 자연히 물의 깊이를 알아 가며 가슴에 계절마다 다른 남이섬을 채운다. 이것이 남들과 다른 그만의 방법이다.
테마는 없지만 저마다의 테마를 얻고 가는 섬, 남이섬엔 강우현이 있다.



글쓴이 고선희는 아산장학생 동문으로 국어 교사이다. 언젠가 멋진 드라마로 세상을 감동시킬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