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금을 긋고 사는 사람들 전생

사진안의 안과 밖


어릴 때 생각이 나네요 요즘은 애들이 동네 아이들과 만나 놀 틈도 없지만, 나가 놀 곳도 마땅치 않은 세상이지요. 길이란 길은 다 찻길뿐이고, 빈 터엔 모두 집만 빽빽이 들어서는 세상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예전엔 참 놀 곳이 많았어요. 빈 터도 많았고 차들도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골목길이 많아서 애들이 모여 놀기가 퍽 좋았지요. 지금은 길이 모두 포장이 돼 있어서 흙구경 하기가 어렵지만 그땐 포장되어 있는 곳이 ‘행길’이나 ‘신작로’라고 하는 큰 찻길뿐이어서 웬만한 곳은 다 흙길이었어요. 그 흙 땅에 옷을 더럽혀 가며 우린 갖가지 놀이를 하며 놀았어요. 그땐 웬 하루가 그렇게 길었는지, 실컷 놀고 집에 들어와도 한낮밖에 안 되곤 했어요. 참 즐거운 시절이었지요.

그때 ‘땅따먹기’란 놀이가 있었어요 그땐 놀이가 대충 남자애들과 여자애들 놀이가 구별이 되어 있었는데 이 땅따먹기 놀이는 남녀 구분없이 땅만 있으면 어디서나 쉽게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여서 애들이 자주 즐겼던 것 같아요. 가위 바위 보 해서 이기면 땅에다 손가락 끝으로 포물선의 금을 그어 손자국을 냅니다. 그럼 그 그어진 금만큼이 내 땅이 돼요. 나중에 서로 손금 자국이 부닥치게 되면 가위 바위 보를 이긴 애가 남의 땅을 빼앗아 차지해 들어가요. 물론 마지막에 땅을 가장 많이 차지한 애가 이기는 거지요. 멀쩡한 빈 땅에 뼘을 크게 벌려 금을 그어 땅을 넓혀 나가고, 또 남의 땅을 빼앗아 차지하면 참 신이 났지요. 그러나 놀이가 끝나고 땅에 그어진 금을 발로 쓱쓱 문질러 버리면, 놀이할 때 내 땅이라고 좋아하던 그 땅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본래대로 텅 빈 땅으로 돌아가 버리는데, 그때 그 허망한 마음은 신나게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파장 분위기와 함께 무척 쓸쓸했습니다.

그래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놀던 그 놀이가 그냥 어릴 때 놀이로만 그치는 게 아니었어요. 세상에 사람 사는 게 대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세상에 살면서 헛 곳에 없는 금을 한없이 긋고, 그곳에 담장을 마냥 높이 쌓고 사는 게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멀쩡한 땅에 금을 긋고 담 쌓아 내 땅이라고 우기며 사는 거야 모듬살이에서 그럴 수 있다치더라도, 담 안의 사람과 담 밖의 사람을 따로 차별하며 지체를 달리하고 사는 세상살이가 나는 통 마뜩치 않아요. 사람이 두려워서 집을 지어도 담을 높이 쌓고, 문을 내어도 문을 꼭 닫고, 창을 뚫어도 창문을 닫고 사는 세상은 안과 밖이 꼭 막힌 어둠의 세상이 아닐까요?

안과 밖, 그것은 경계(境界)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안과 밖은 완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흔히 안과 밖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밖이 안을 보호하기 위해 감싸안아 한쪽을 나란히 바라보고 있는 형상입니다. 손바닥과 손등이 그렇지요. 안과 밖은 조화와 균형을 위한 자연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안과 밖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선 불이(不二)라 하던가요? 그런데 사람들은 없는 경계에 금을 그어 놓고, 스스로 안과 밖을 나누어 좁은 방에 갇히어 살고 있지요. 안과 밖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차별’이 될 때 사람사는 세상은 허물어지고, ‘하나’가 될 때 또 하나의 생명이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안과 밖의 참뜻입니다.

나는 물을 좋아합니다 맑은 물은 안과 밖이 없거든요. 겉과 속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맑은 물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의 마음이 다 시원하지요. 갖고 있는 것이 없고, 숨기고 감추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계가 없으면 그렇게 되지요. 그래서 물은 생명의 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물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물입니다.

세상엔 아름다운 담장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담장이라 해도 담장이 없는 것보다 아름답겠어요? 마음의 문을 열면 담은 저절로 허물어지고 경계가 없어지며, 그때 안과 밖은 곧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생명이 됩니다.

글쓴이 전생은 포토 에세이스트이다. 현재 동아일보 문화센터에서 사진과정을 가르치고 있으며, 사진과 우리문화연구소 ‘허허당’의 주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