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안과 밖은 없다 류종렬

안과 밖에 대한 철학적 단상


안은 무엇인가? 밖은 무엇인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이항 관계의 문제가 중요할 것인가? 이항 관계로서 ‘안과 밖’은 겉으로는 사물의 이중 측면을 표현하는 것 같으나, 그 이면에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이항 관계는 형이상학적으로는 ‘본질과 현상’, 도덕적 관점으로는 ‘선과 악’, 논리와 과학에서는 ‘진리와 거짓’, 예술적 감성의 기준으로는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모더니즘이라 불리는 근대 철학에서는 ‘소박한 관념론과 통속적 유물론’으로 대립적 담론을 생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오랜 과학적 상식이나 도덕적 양식은 이런 이항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20세기말에 우리 나라에 알려진 프랑스 철학의 후기구조주의는 이원적 구분을 선전제(先前提)의 오류·허구·기만으로 보고, 게다가 바보짓이라고까지 규정한다. 그러면, ‘안과 밖’의 문제가 왜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통용되었을까? 이 이항 구조를 해체할 때 그 대안으로는 어떤 새로운 방식이 나올 수 있을까? 또 우리에게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고대에서 근대로
대부분 ‘안과 밖’을 구별하는 생각은, 고대 철학의 ‘본질과 현상’에 기초하고 있고, 이 문제는 ‘영혼과 생명’의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 고대 형이상학이나 종교에서는 영혼을 ‘밖에 존재하다가 신체 속에 들어오는 것’으로 여긴다. 이런 입장에서는, 원래 있었던 본질은 불변부동이며, 바깥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불완전하고, 변하며, 못난 것이다. 그래서 철학이나 종교에서는 ‘완전한 것이 불완전한 백성을 지도하고 교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영혼이 우월하고 신체가 열등한 것이 아니며, 영혼과 신체는 대등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거짓이 아니라야 비로소 자신의 삶이나 행동이 진솔할 수 있으며, 만일 ‘진실인 영혼’이 아무리 용을 써도 ‘거짓인 현실’이 결국 거짓일 수밖에 없다면, 산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거짓으로 여겨지고 무시되었던 현상의 세계가 영혼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또한 영혼이 있는 바깥이 어디인지, 우주 끝까지 열어 보아도 알 수 없다. 영혼이 머무는 바깥의 세상에 대한 반성은 인간이 먼저 정한 바깥이라는 것이,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선전제로서 규정한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이 선전제를, 존재론에서는 ‘있던 것’으로, 논리와 과학에서 ‘진리’로, 도덕과 종교에서 ‘신의 계율’로 받아들였으나, 현대철학에서는 선전제의 오류로서 보았다.

자연에는 안과 밖이 없다
이 반성의 한 축은 이미 한 세기 전에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이다. ‘이전의 선전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없앨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른 한 축은 ‘살아있는 것이 영원히 바뀌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스피노자의 자연주의를 살리는 길이다. 선전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며, 그 자연의 변화의 한 부분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자연주의적 전통에 따르면, 이런 형상론과 이원론의 철학 담론은 이미 인간 중심주의적 사유이면서, 자신 바깥의 자연을 이용하면서 살아간다는 주장이다. 자연주의적 태도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할 때, ‘사용하다가 버리는 인간’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른 인간도 살아갈 수 있게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찾자는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고, 다른 생명체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생명체에 대한 연민의 정을 지니고 살아가자는 것이며, 그 연민의 정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요즈음 환경론자들도, 환경 속에 있는 인간이 환경을 바깥으로 생각하여 이용하고 버리기만 한다면, 이미 자기의 일부가 피폐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안과 밖이 없다’는 자연주의적 태도이다. 인간들 사이에 연민의 정이 있다면,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전쟁을 걸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전쟁 반대론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연주의적 태도에서는 자연의 역사를 ‘자연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본다. 이 과정에서 모든 생명 존재들은 하나의 생명에서 연속되어 있다. 인간도 다른 생명체들과 외적으로는 경계를 지니고 있지만, 내재적으로 연속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 속에서 서로 공감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에는 안과 밖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이제라도 인간들 사이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체와 상호 보완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