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테마 - 먼지를 털다 보석상자를 열다 황준필 外


아빠의 안경

서랍을 연다. 구석편에는 먼지 쌓인 과자 상자가 보인다. 그 안에는 어릴 적 부모님 몰래 숨겨두고 우울할 때마다 꺼내 먹었던 과자마냥 달콤짭짜름한 기억들이 담겨져 있다. 수많은 기억 조각들 중에서 내 손끝에 닿는 것은 다름 아닌 안경이다. 얼굴 모양을 따라 팔자로 약간 벌어진 안경다리, 코기름과 땀으로 때가 낀 안경 받침, 안경알에는 3년이 넘도록 닦지 않은 눈물 자국이 있다. 뿌연 안경을 내 눈에 덧씌워본다. 세상은 뿌옇고 어지럽다. 그리고 난 3년 전 돌아가신 아빠와 함께한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신 아빠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은 마음 깊이 자물쇠 채워 둔 기억들과 아빠에게 세상을 선물했던 안경이다. 두꺼운 안경알은 내게 어지러움을 주지만, 세상이 어지럽게 보일 때, 안경을 꺼내 써보곤 한다. 아빠가 세상을 보던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새삼스레 꺼내본 아빠의 안경은 어제로 가는 열쇠이며, 내일 가야 할 곳의 문이다.

조은수·서울 송파구 오륜동

종현이가 그려준 가족사진

생각만 해도 미소가 절로 떠오르는 그 시절 이 사진(?).
중2 때 교실 뒤쪽에서 아이들이 작당을 했다. 작은 아씨들로 가족을 구성한 것이다. 메기, 죠, 베스, 에이미, 로리…. 학교에 가는 일이 즐거웠다. 만날 새 가족들로….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로 향하며 눈은 벌써 웃는다. “안녕 메기~, 안녕 로리~, 어제 안 아팠어, 죠~?” 유일한 남성 로리가 인기 최고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어느 날 가족에 못 낀 여드름투성이 종현이가 사진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얘들아 가족사진 안 찍니? 내가 그림으로 그려줄게.”(얼마나 부러웠으면 사진사로 등장했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친구가 정성껏 그려준 대여섯 장의 그림(가족사진). 그 친구는 똑같이 그려내야 했다. 어디까지나 사진이니까. 그 때 상상의 세계를 현실에서 재현하던 우리의 정서는 풍부할 대로 풍부해져 죠는 소설까지 쓰기에 이르렀고, 아이들은 돌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다섯 중 두 명은 수필가가 되었고, 로리도 국문과를 갔다던데…. 근데 종현이는 어디에서 뭐하고 사나? 로리는?

이인영·서울 송파구 오금동

이 텔레비전을 뜯어볼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둘째 아이는 몹시 바쁘다. 엄마, 아빠, 누나를 따라 다니며 참견하고 훼방놓는 일에 쉴 틈이 없다.
며칠 전 이 녀석이 텔레비전에 연결된 플러그를 꺅꺅거리며 잡아 당겼다. 텔레비전이 번쩍. 화들짝 놀란 나와 아이 엄마는 얼른 아이를 안아 들었다. 다행히 아이는 이상이 없었지만 텔레비전은 아니었나 보다. 누르고 두들겨도 도무지 반응이 없다. ‘과전류가 흘렀나?’. 뜯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더 고장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옛날 생각이 나기도 했다.
내가 국민학생이었을 때 우리집에는 문을 잠가 놓을 수 있는 텔레비전이 있었다. 아버지는 중장비를 운영하시느라 며칠씩 출장가시고, 어머니는 작은 가게를 하셔서 9시쯤 오시곤 했다. 우리집 텔레비전은 잠겨 있었고, 누나와 나, 동생은 어머니가 열쇠를 숨겨놓는 곳을 늘 파악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줄 아셨지만, 우리는 8시 50분부터 아파트 계단 발자국 소리에 몹시 주의하면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발자국 소리가 심상치 않을 때 빠른 행동으로 텔레비전을 끄고, 텔레비전을 잠그고. 열쇠를 제자리에 두고, 방으로 돌아와서 얼른 책 한 권을 들고, 현관으로 어머니를 맞으러 나가, 어색하지 않게 웃음을 지으며,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하는 것이 우리의 매우 빠른 연극이라는걸 눈치채지는 못 하셨다.
그때는 좋았는데, 마냥 좋은 시절이 있기만 하겠는가? 어머니에게 들켜 버렸고, 어머니는 열쇠를 가지고 나가셨다.
그때도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했던 생각 ‘이 텔레비전을 뜯어볼까?’

황준필·서울 용산구 후암동

책상 서랍 속 조개껍데기

제 책상 서랍에는 조개껍데기가 하나 있습니다. 한바탕 책상을 정리할 때에도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물건 중의 하나입니다. 뒷면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좋은 바람을 맞으러 떠난 여행, 2001. 5. 19. 삼포’라고 적혀 있습니다. 물론 거기 적힌 날짜에 삼포해수욕장에서 주어온 것이지요.
그날은 남자친구와 말다툼을 심하게 한 날입니다. 그때는 이유도 알 수 없고 정답도 없는, 부질없는 말다툼을 왜 그리도 자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뱉어버리고 씁쓸해 하던 차에, 남자친구가 무작정 바다를 보러가자고 하더군요. 못이기는 척 따라간 동해바다.
서울에서 동해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내내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발길이 닿은 바다는 삼포 해수욕장. 아직 차가운 바람이 불긴 했지만 봄바다의 햇살은 따사로웠고, 백사장도 빛났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바다는 끝없이 넓었습니다. 그 넓은 바다의 가슴 안에서 얼어붙었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렸지요. 아마 남자친구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우린 아무 말이 없었지만,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었죠. 바다를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벌써 1년이 훨씬 넘은 일입니다. 세상 사는 게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우리의 부질없는 말다툼은 그후로도 몇 번 더 있었고, 남자친구는 지금 제 곁에 없습니다. 그날의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예쁜 글을 써서 주려 했던 조개껍데기는 아직 제 책상 서랍 속에 있습니다.

장혜연·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아버지가 가져오신 ‘소년중앙’과 ‘보물섬’

어렸을 적 아버지는 출판사에 근무하셨다. ‘소년중앙’이나 ‘보물섬’ 등의 만화책은 빼놓지 않고 보았다. 매달 10일에서 15일 사이에는 항상 가져오셨던 것 같은데, 그 시기가 되면 아파트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내 방 한 구석의 만화책 상자에는 (냉장고 박스나 TV 박스) 매달 모아놓은 ‘소년중앙’과 ‘보물섬’이 가득했다. 그걸 보고 있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그 당시에는 신문수, 김형배, 이상무, 김수정 등등 그런 만화들을 보며 만화가의 꿈을 키우기도 하였다. 지금도 만화책을 자주 본다.
상당히 자주…. 요즘이야 일본 만화들이 하도 많이 나와서 (거의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만화들을 보지만, 어렸을 적의 설레임과는 비할 바 못 되는 것 같다. 매달 일정 분량의 만화를 보며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다음호에는 어떤 내용이 나올까, 독고탁은 마구를 완성할 것인가…. 내 교과서 주변은 온통 만화의 주인공들로 가득차 있었다.

오원석·서울 은평구 갈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