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테마 -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고 싶다 방은경


서울 , 마지막 남은 연탄공장 사람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 삶이란 / 나 아닌 그 누구에게 /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 /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 …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 중에서

불과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연탄은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연료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김장과 함께 창고에 수백 장의 연탄을 비축하는 것이 대표적인 월동 준비 행사였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동대문구 이문동에 위치한 삼천리연탄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 사라졌다.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연탄, 그 연탄을 트럭에 가득 채우면 트럭은 또 어디론가 떠나고… 이 작업은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요즘은 성수기인지라 하루에 35만여 장의 연탄을 생산하고 있다.
이문동 공장에서 생산된 연탄의 70%는 서울 시내 가정의 난방용으로 소비되고 있다. 또 요즘에는 옛 향수를 되살리는 음식점이나 화훼단지도 주고객이 되었다.
1968년 이문동에 문을 연 삼천리연탄은 하루 300만 장을 생산해 단일 공장으로는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던 곳.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에는 삼천리, 삼표, 동원 등 17개의 연탄 공장이 있었지만 이제는 삼천리연탄과 시흥동의 고명산업, 단 두 곳만이 남았을 뿐이다. 삼천리연탄의 경우 150여 명이 되던 직원도 23명만 남았다. 대부분 30년 가까이 근무한 사람들이다.
많은 가정에서 사용되어 왔던 연탄은 생활 수준의 향상, 가스 중독의 위험, 도시가스의 보급,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등장 등으로 인해 1986년을 기점으로 매년 40%씩 소비가 줄었다고 한다. 삼천리연탄도 1997년쯤 문을 닫으려 했으나 IMF로 인해 연탄의 수요가 늘어나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경기가 안 좋으면 연탄 주문이 증가한다는 ‘연탄 경기론’을 말하는 김두용 이사는 요즘 공급이 딸릴 정도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보니 경제가 좋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300원짜리 연탄 한 장으로 인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서민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는 많이 있다는 얘기다. 그는 또한 연탄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산천이 푸르게 되었다며 연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연탄 사용이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난방이나 취사를 위해 주로 목재가 땔감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지는 겨울이다. 빙판길에 미끄러지지 않게 연탄재를 뿌려 놓아주는 이웃도 새삼스레 그리워진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해 주었던 연탄도 머지않아 박물관 구석진 곳에서만 대하는 것은 아닐까.

글쓴이 방은경은 아산재단 편집실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