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테마 - 보고싶다 친구야 정호신 外


참 이상한 일입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낙엽이 떨어질 무렵부터 캐롤이 거리거리 들려올 즈음이면 왜 이렇게 친구들의 얼굴이 눈에 밟히는 걸까요? 친구들의 얼굴에 때묻지 않은 추억 속의 내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혹은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에서 함께 꿈꾸고 서로 보듬어 줄 너무나 고마운 동행이라서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저녁엔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친구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 보내야겠습니다.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사람은 없어 봐야 그 빈 자리를 안다. 있던 가구를 치울 때면 오히려 그 자리가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그 사람의 빈 자리가 드러나면서 다가오는 서글픔과 불편함…. 그것은 때론 그리움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던가. (한수산의 ‘거리의 악사’ 중에서)
대학 시절에 알게 된 친구니까 벌써 십 년이 넘었다. 같은 학과이긴 했으나 전공이 달라 단 한번도 수업시간에 마주칠 일이 없었던 우리. 우연히 지도교수님 방에서 처음 만났던 것 같다. 난 주로 교수님께 질문을 하거나 고충을 상담하러 찾아가곤 했지만, 그 친구는 달랐다. 늘 꽃을 한아름 사들고 와선 꽃병에 꽂아두고 가는 것이었다. 어찌나 그 마음이 예뻐 보이던지….
그렇게 얼굴을 익힌 우린 조금씩 가까워졌고, 졸업과 동시에 둘 다 기업체 기자로 취업을 하면서 동병상련(同病相憐) 정을 돈독히 나누게 되었다. 덕분에 십 년이 흐른 지금은 속얘기 다 꺼내어 놓는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얼마 전에 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너무 하는 거 아냐? 친구 고생하는데 궁금하지도 않니?” 사실 이 친구가 엄마가 되기 위해 3개월째 준비중이다. 입덧이 너무 심해 외출도 못하고 화장실하고만 친구하고 있다고 투정을 부린다. 생각해 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을 연락도 못했으니…. 정작 나는 친구의 빈 자리를 절감하면서도, 내가 그 친구에게 빈 자리를 주었음을 깨닫지 못했으니 말이다.
예전엔 바쁠 때 서로 일도 도와 주고, 인사동 거리 구경에 한나절을 보내기도 하고, 연말이면 운치 있는 고궁에서 사진도 찍었는데…. 돌아보면 정말 아름다운 추억들이 많기도 하다. 추억으로 가득한 그때와, 그때 만난 내 친구! 모두가 어우러져 내겐 그리운 시절이다.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한 통과 맛난 별식 사 가지고 조만간 보고 싶은 친구를 찾아봐야겠다.

글쓴이 정호신은 프리랜서 웹PD 겸 저널리스트이다.

보고 싶은 내 반쪽 욱이에게

안녕! 나야. 오랜만에 쓰는 편지구나. 잘 지내고 있지? 추운 날씨에 아픈 곳은 없는지 모르겠구나. 오늘 이렇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니 예전 생각이 참 많이 난다. 너 훈련소 들어가고 나서부터 매일매일 써 오던 일기를 봤었거든. 너 입대하던 날 기억나니? 딱 작년 이맘때 쯤이었잖아. 그날 너를 보내놓고 혼자 기차 타고 집으로 내려오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후로 일주일 내내 울기만 했었는데….
니가 내 곁에 있을 때 몰랐던 사소한 일들이 지금은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몰라. 우리 사귄 지 300일 되던 날 내가 보낸 사연이 라디오 방송에 나온 거, 너 훈련소 있을 때 한꺼번에 스무 통이 넘는 폭탄 편지를 써 보내서 널 깜짝 놀라게 했던 일, 그리고 기념 수건과 체리북… 몇 번의 크고 작은 기념일 선물들까지 이젠 그 모든 것들이 달콤한 추억으로 남게 되겠지.
한나가 고무신 된 지도 벌써 1년이나 됐네. 처음엔 정말 시간이 안 갈 줄만 알았는데 이젠 절반 정도는 기다린 셈이네. 나 기특하지 않냐?(^^V)
겨울만 되면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걱정되어 괜스레 미안해 하는 너, 내 목소리 잠깐 들으려고 30분이 넘게 공중 전화 줄을 기다리면서도 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하던 너…. 그런 네가 있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널 생각하면서 견뎌내고 있단다. 우리 처음의 그 마음가짐… 그 설레임…, 잊지 말고 끝까지 간직해 나가자. 내가 입대 전에 그랬잖아. 넌 잠시 먼 여행을 떠난 거라고. 그 여행이 끝나는 날, 넌 그냥 그대로 내 곁에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거야. 난 항상 내 옆자리를 비워두고 있을게. 앞으로 제대하는 날까지 늘 씩씩하고 멋진 모습 간직하길 바래. 다시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렴.
2002.11.15 너의 이쁜 고무신 한나가

글쓴이 양한나는 경남 진해시 여좌동에 살고 있다.

선애야! 고마워

선애야, 네 생각만 하면 가슴이 촉촉해진다. 마치 습기를 머금은 새벽의 부드러운 흙처럼.
인연이란 뭘까, 하고 가끔 생각한단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어느 여름날 아침, 청명한 햇살 아래 네가 원색의 무늬가 있는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를 선머슴애처럼 짧게 자르고 나타난 것이 우리 인연의 시작이었던가봐. 그렇게 만나서 오랜 세월, 때론 가까이 살면서, 때론 멀리 살면서 언제나 힘들 때면 찾아가고 싶은 마음의 피난처였지. 그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작년 여름 휴가 때, 네 침대에서 너와 함께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며 아아, 내 친구가 여기 이렇게 있구나, 하고 얼마나 행복하던지. 네 얼굴의 가는 주름살을 보고선 소중한 내 친구를 고생시키고 있는 것 같아서 공연히 네 신랑에게 화가 났던 마음도 사라지더라. 글쎄, 그땐 우습게도 마치 네 친정 언니라도 되는 듯이 널 시집보낸 게 후회가 되기까지 하더라니깐.
이제 우리 작은아이들이 우리 처음 만났던 그 때 그 나이가 되었구나. 여전히 너는 교도소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봉사와 청소년 상담, 방송 활동을 하고, 삶에 대한 태도 역시 조금도 바뀐 것이 없이 치열하고 곧기만 하구나. 아마도 우리가 마지막 농경시대적 가치관을 가진 세대일 거라는 생각을 가끔 해. 언제나 무엇이든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땀 흘리고 수고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그런 세대. 그런데 네가 이젠 약간의 휴가를 자신에게 허락하려고 한다니 네 그 엄격함을 약간 허무는 여유가 난 정말 기쁘다.
가끔 사는 게 참 별거 아니다, 라고 생각해. 그냥 축제처럼 즐기고 그날 그날 하루 하루 주어진 대로 감사하며 열심히 살고, 그리고 나머진 내 영역에서 벗어난 것이니 주어진 것들에, 혹은 주어지지 않은 것들에 감사한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뿐.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하나님이 불러 주시겠지. 본향으로 돌아가는 날, 뒤돌아보면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참 아름답고 즐거운 소풍이었다, 미소지으며 그렇게 말하고 싶다.
새삼스레 그리운 널 생각하며, 네가 내 소풍에 함께 있다는 것이 내가 누리고 있는 큰 축복 중 하나라는 걸 네게 말해 주고 싶어졌어. 선애야, 이 세상에 있어 주어서 고마워.

글쓴이 김향은 서울 송파구 오륜동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