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테마 - '나' 는 새삼스럽다 이동철


' 나는 누구인가' 를 일깨워 주는 책

최근 읽은 책에 일본의 어느 편집자가 독서와 연령의 관계를 논한 글이 있었다. 먼저 10대의 독서는 그 요체가 암송에 있다고 한다. 어학이나 고전의 학습, 음악이나 무용처럼 오랜 연습이 필요한 대상을 숙달하기란 10대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 외운 내용은 상황에 따라 평생 기억에 남고 활용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10대의 독서는 암송이 중요하며, 따라서 자국어이든 외국어이든 암송할 만한 책을 찾아내거나 소개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20대의 독서는 기본적으로 경쟁의 성격을 지닌다. 청춘은 그 본질에 있어서 방황과 격동의 시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독과 난독이 이때에 합당한 독서의 방법이며, 아울러 속독은 다독을 위한 도구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가 쿠베르탕이 만든 올림픽 구호라면, ‘보다 많이, 보다 다양하게, 보다 빨리’는 20대의 독서열과 지적 호기심을 표방하는 언어가 될 것이다.
30대 이후는 정독과 숙독이 필요한 시기이다. 인생에 대해 음미하고 반성하며 숙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독과 숙독이 제대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다독과 난독의 시기를 겪어야 한다.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국화가 피려면,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치고 무서리가 내려야 하는 법이다.
이처럼 연령에 따라 독서의 방법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생리적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흔히 대상과 종류에 따른 독서 방법의 차이는 말하지만 연령에 따른 변화는 간과하는데, 이런 점에서 그의 주장은 우리 주제와 관련해서 매우 시사적이다. 자신의 발견은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수확이지만, 그 방법은 독자의 연령이나 독서의 대상에 따라 다를 것이다. 더군다나 ‘새삼스럽게 나를 읽기’ 위해서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 글에서는 목에 힘주거나 어깨를 긴장하지 않더라도 읽는 가운데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몇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동일한 책이라도 독자에 따라 달리 읽힌다는 점은 여기서도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내 일상의 표정 <블루 데이 북>(바다출판사) / <디어 맘>(바다출판사)

현대는 영상의 시대이다. 때로 한 장의 사진이 천 마디의 말보다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독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먼저 소개할 것은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그의 사진집 <블루 데이 북>(바다출판사)과 <디어 맘>(바다출판사)이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동물들의 갖가지 표정을 담은 사진과 간결하면서도 인간적인(?) 해설이 실려 있다. 시인이자 사진가인 역자 신현림 또한 시인의 감수성으로 이를 재치있게 번역하였다.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는’ 법이지만, <블루 데이 북>을 보노라면 저절로 용기와 미소를 다시 찾게 될 것이다. 반면 <디어 맘>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듣노라면 새삼스레 “엄마, 고마워요”라는 심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털없는 원숭이! 나? <털없는 원숭이>(영언문화사)

사실 동물과 인간을 비교하는 책들은 적지 않은데, 우선적으로 데스몬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영언문화사)를 들 수 있다. ‘동물학적 인간론’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동물의 행동에 대한 연구를 인간에 적용시킴으로써, 인간이 동물 가족의 일원임을 새삼스레 일깨워 준다. 인간도 영장류의 일원임을 강조하면서 그 한계를 지적하는 이 책의 주장은, 이후 그의 <인간 동물원>(한길사), <바디워칭>(범양사), <맨워칭>(까치), <접촉>(지성사) 등에서 수정되고 보완되었다. 아울러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제3의 침팬지>(문학사상사)도 흥미롭다.

내 속에 숨어 있던 어린 시절의 나 <어린왕자>(문예출판사)

한편 인간 개개인은 모두 어린 시절을 가진다. ‘누구나 다 처음에는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 대부분은 일상에서 이를 망각하고 때로는 외면한다. 그러나 여기 <어린왕자>(문예출판사)가 있다. 우리들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어린 시절을 일깨워주는 금빛 머리칼의 왕자! 저자 생텍쥐페리의 소박한 그림이 돋보이는 이 책에서 우리는 왕을 비롯해 허영심에 빠진 사람, 술꾼, 실업가, 가로등 켜는 사람, 지리학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다. 이 어리석은 어른들은 한편으로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길들이기’를 가르쳐주고 살아가기 위해서 사랑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이 책은, 자신 속에 있는 순수한 나를 만날 수도 있고, 어리석은 나를 돌이킬 수도 있는 거울이다.

메멘토 모리, 나의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궁리)

중세의 수도원에서는 ‘메멘토 모리’(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구호를 반복했다고 한다. 삶이란 탄생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나아가는 도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은 지금 내가 살아 있으며 또한 상당한 기간 살아갈 것이라는 예상을 근거로 이루어지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죽음을 생각하고 대비하는 일은 삶의 의미를 되물어보는 행위가 된다. 다양한 분야에서 죽음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생사학’의 권위자 알폰스 데켄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궁리)에서 죽음을 응시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라고 권유한다.

나는 나의 문화적 유전자가 궁금하다 <삼국유사> / <논어>

현대과학의 첨단을 걷는 연구 분야로서 ‘유전자’의 해독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생물학적 유전자만이 아니라 문화적 유전자도 지니고 있다. 한국인의 문화적 유전자를 해독할 수 있는 텍스트가 바로 <삼국유사>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전통문화와 그 영향을 해명하려면 <논어>를 빠트릴 수 없다. 따라서 끝으로 추천할 책은 이 두 권의 고전이다. 이 둘을 읽는 가운데 우리는 자신이 한국인이자 동양인임을 새삼스레 발견할 것이다.

글쓴이 이동철은 용인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이다. 한국출판인회의 ‘이 달의 책’ 선정위원(인문분야)과 영상물 등급위원회 등급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