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테 마 - 2010년, 미래 세상으로 걸어들어가다 이인식

 

생명공학 기술(BT)이 만들어 가는 미래

[유전자 치료]
2001년 2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됨에 따라 인체의 유전자 지도를 의학적으로 응용하려는
연구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유전자의 기능과 역할이 밝혀지면 노화와 사망의 원인은 물론이고
각종 질병의 치료법이 발견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전자의 이상으로 생긴 질병을 고치기 위해 세포 안으로
정상적인 유전자를 집어넣는 의료기술을 유전자 치료(Gene Therapy)라 한다. 더욱이 개인이 지닌
질병 유발 유전자를 사전에 알아낼 수 있으므로 맞춤형 치료는 물론 예방까지 가능해진다.
요컨대 21세기 의학의 패러다임은 치료 중심에서 예방 위주로 바뀔 전망이다.

[주문형 아기]
유전자 치료는 의료 기술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리가 질병을 고치는 유전자를 제공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우리가 치료 이외의 목적에 유전자를 제공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상적인 사람의 형질을 개량하기 위해 유전적 조성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능, 외모, 건강을 개량하는 유전자를 보강하여 설계한 맞춤 아기(Designer Baby)를 생산할 수 있다.
2020년쯤이면 주문형 아기가 태어날 것 같다.

[난치병 치료]
유전자 치료 못지않게 의학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 것은 인간 배아의 간세포(ESC)이다.
인체의 모든 세포는 배아 간세포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배아 간세포가 다양한 세포로 분화하는
능력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세포나 조직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난치병
치료와 장기 생산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자들은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체세포 핵치환 기술로 배아 간세포를 배양할 계획이다.
그러나 배아 간세포 연구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배아 복제는 개체 복제와 직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복제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킬 경우 복제인간이 태어난다는 뜻이다. 인간 배아 연구에
대한 허용 범위를 놓고 과학자들과 사회 및 종교 단체 사이에 뜨거운 논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복제 인간]
배아 복제를 둘러싼 생명윤리 논쟁은 복제인간이 등장하면 허망한 것이 되고 말 가능성이 높다.
2002년 7월 신흥 종교집단인 라엘리안 무브멘트는 6개월 이내에 복제인간을 세상에 내놓겠다고
공언하였다. 인간 복제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불임 부부 또는 동성애 부부들에게 국한하여 개체 복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일단 복제인간이 나타내면 인류 사회는 정체성의 위기에서 허우적댈
것임에 틀림없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
생명공학이 양날의 칼임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는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이다.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반기는 쪽이 있는가 하면 건강과 환경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개연성이 높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 기술이 발전을 거듭해 유전자 변형 농산물처럼 새로운 형질을 가진
새로운 식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가까운 미래에 장미 향기가 나는 제라늄, 물이 필요할 때 저절로 빛을 내는 난초, 베어줄 필요가 없는 잔디를 보게 될 것이다.

정보 기술(IT)이 만들어 가는 미래

[정서형 컴퓨터]
한편 정보기술 분야에서는 몇 가지 획기적인 기술이 선보일 전망이다. 우선 느끼는 컴퓨터가 나타날 것 같다. 이른바 정서 컴퓨터(Affective Computer)이다. 컴퓨터 사용자의 정서 상태를 감지해 반응하는 정서
컴퓨터가 등장하면 별난 제품들이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운전자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즉시 감미로운
음악을 틀어 주는 자동차, 생각과 함께 기분을 전달하는 전자우편 서비스 등이 기대된다. 2005년쯤이면
연인이나 친구보다 눈치 빠르게 기분을 헤아려 주는 고마운 기계를 곁에 두고 살게 될 성싶다.

[인간형 로봇]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인간형 로봇(Humanoid), 즉 사람의 외모를 닮은
휴매노이드는 사람처럼 움직일 뿐만 아니라 지능적인 행동을 자율적으로 연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봇공학 전문가인 미국의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에 따르면 20세기 로봇은 곤충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지만 21세기에는 10년마다 세대가 바뀔 정도로 지능이 향상되어 2040년까지 사람처럼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기계가 개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라벡은 이러한 로봇은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기
때문에 2050년 이후 지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비컴]
오늘날의 퍼스널 컴퓨터는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실로 천을 짜듯 컴퓨터가 일상 생활에 스며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컴퓨터를 더 이상 컴퓨터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컴퓨터를 부엌이나 벽 속처럼 우리 주변의 곳곳에 설치하는
기술은 말 그대로 컴퓨터가 어디에나 퍼져 있다는 뜻에서 편재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이라고 한다. 약어로 유비컴이라 불러도 무방할 성싶다. 요컨대 유비컴 시대에는 컴퓨터가 도처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게 된다.

[입는 컴퓨터]
유비컴 기술의 핵심은 신발, 안경, 손목시계 등 필수품을 비롯하여 커피잔이나 돼지고기 조각에까지
장착이 가능할 정도로 작은 컴퓨터이다. 2010년까지는 물건에 다는 태그(꼬리표)처럼 생긴 컴퓨터가
개발될 전망이다. 이러한 태그는 사람이 착용한 시계나 운동화 따위에 내장되므로 이른바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가 필수품이 된다.

나노 기술(NT)이 만들어 가는 미래

[스마트 물질]
태그처럼 작은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노 기술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나노 기술은 나노미터
수준에서 물질을 다루는 기술이다. 1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는 금속 원자 서너 개를 연결한 정도의
길이이다. 나노 기술은 원자나 분자의 수준에서 물질을 조작하여 전혀 새로운 성질과 기능을 가진 물질을
실현하는 기술이다.
나노 기술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면 제조산업과 의학 분야에 혁명적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제조 부문의 경우 나노 기술로 물질의 구조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으므로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다양한 스마트 물질(Smart Material)을 생산할 수 있다. 가령 스마트 옷은 얇은 섬유 안에 센서,
컴퓨터, 모터 등 나노 기계가 들어 있으므로 날씨나 습도의 변화에 따라 옷감 스스로 모양과 질감을
바꿀 수 있다.

[나노 로봇]
나노 기술이 의학에 미칠 영향은 상상을 불허한다.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나노 기계이다.
이러한 자연의 나노 기계를 인공의 나노 기계로 물리치려는 발상이 나노 의학의 출발점이다.
나노 로봇을 신체에 주입하면 잠수함처럼 혈류를 따라 항해하면서 바이러스를 박멸할 것이므로
이론적으로는 나노 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일상 생활에 영향을 끼칠 그밖의 신기술

정보 기술, 생명공학 기술, 나노 기술 등 3대 핵심 기술 이외에 일상 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칠 만한
신기술로는 하이테크 식품, 피임 백신, 스마트 약을 꼽을 수 있다.

[하이테크 식품]
하이테크 식품은 스마트 식품과 기능성 식품으로 나뉜다. 2015년이면 보통 사람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영양물이 들어 있는 감기약 크기의 스마트 식품이 개발될 전망이다. 영양물보다는 사람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물질이 첨가된 기능성 식품도 다양하게 개발될 것 같다. 하이테크 식품이 식탁에 올라 인간의
식도락을 빼앗아간다면 21세기에 살 맛이 없어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 같다.

[피임 백신]
피임약 역시 다각도로 연구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남녀 모두에게 사용될 피임 백신이 나올 것 같다.
주사를 맞으면 1년간 유효한 피임 백신은 2015년까지 상품화될 전망이다.

[머리 좋아지는 약]
스마트 약은 한마디로 머리 좋아지는 약이다. 건강한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력을 증강시키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이다. 2010년경 스마트 약이 나오면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베스트 셀러가 될 것이다.

만들어 간다는 것의 의미 - 장밋빛 미래인가, 잿빛 미래인가

지난 8월 26일부터 열흘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 정상회의(WSSD)'가 열렸다. 103개 나라의 국가원수 등 6만여 명이 참가한 사상 최대의
환경회의였다. 보건, 수자원, 에너지, 생물 다양성 등 주요 의제에 대해 이행 계획을 만들었지만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특히 에너지 의제에서 재생 에너지(Renewable Energy)에
대한 실천 목표와 이행 시한을 못박지 못해 지구 온난화 문제 등 인류의 생존에 위협을 주는
환경 오염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가 과학기술에 의해 반드시 진보할 것으로
낙관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글쓴이 이인식은 과학칼럼니스트이자 과학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저서로 「사람과 컴퓨터」, 「21세기를 지배하는 키워드」, 「성과학 탐사」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