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테 마 - 교육환경의 변화와 교육정책의 과제 남영숙


지난 9월 11일 프레스센터에서 아산재단 창립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올해로 24회를 맞는 아산 학술 심포지엄은 한국 사회의 발전과 국민 복지 증진에 목적을 두고 있으며, 1979년 이래 '복지 사회', '사회 윤리'의 주제들을 다룬 바 있다. 이번 심포지엄은 '교육 환경의 변화와 교육 정책의 과제'란 주제로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방향과 정책 과제들을 짚어 보는 공론의 장이었다.


교육, 한국 사회의 미래 지표
개회사 :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 축사 : 이상주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주제 발표와 토론에만 4시간을 훌쩍 넘긴 이번 심포지엄에서 정몽준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어려운
이웃과 사회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아산재단의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한국 사회의 미래 지표인
교육 부문의 현안으로 떠오른 21세기 교육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서 김신복 차관이 대독한 축사에서 이상주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평생 학습'이란 새로운 과제를
안겨 준 지식 기반 사회에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하며, 이 심포지엄이 정보화와 창의력에 역점을 둔 새 교육 과정의 방향 설정에 유익한 자리가 되어 달라고 말했다.

교육혁명, 전세계적인 총력전
기조연설 : 김신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김신일 교수는 2001년 OECD 교육장관 회의 내용을 소개, 교육 개혁의 쟁점을 확인했다.
5대 중점 정책은, '첫째, 학교와 대학 중심의 공식 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학습에 대한 인정.
둘째, 평생 학습을 위한 동기 유발 및 자기 주도 학습 등 학습 기초 능력 계발. 셋째, 다양한 학습
기회에의 접근과 형평성 확대. 넷째, 제도교육 중심 재원 분배 구조의 확대 개편, 다섯째, 교육부
중심 지배 구조의 다원화 지향'이다. 이는 교육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의미한다. 즉 전세계적으로
교육 제도의 새 판 짜기가 진행 중이란 뜻. 1980년대 영국의 언론들도 '금단의 정원을 열어제친 혁명'이라 표현한 바 있다.
문명이, 궁극적으로 인간관이 바뀌고 있다. '식구(食口)'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농업 사회에서 사람은
단순히 '밥 먹는 입'이었다. 그리고 공업 사회에서는 '인력(人力)'이었다. 이 공업 사회에서 교육은 국가
건설에 필요한 수준 정도로 생애 초기의 단순 훈련에 그쳤다.
그러나 21세기, 사람은 '인재(人材)'다. '앎(知)'을 통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지식 기반 사회에서 평생
고용은 사라지고, 지식 자체가 변화한다. 이제 평생에 걸쳐 개인이 스스로 배워야 하는 시대다.
또한 지식에 소유권이 부가됨으로써 지식의 유통과 활용이 제한되고 있다. 각국에서 지식의 자급
자족 체제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자체 생산한 지식, 고급 인력의 유출을
막는 게 교육 개혁의 관건으로 급부상했다.


제1주제: 사회환경의 변화와 교육 패러다임
사회 : 문용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죽은 교육의 살아 있는 대안, 안드라고지
발표1 : 한준상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한준상 교수는 '오늘날의 우리 교육, 이 땅의 모든 학생들이 매일같이 학교라는 십자가에 매달려
피흘리고 있다'고 비유하며 평생 학습 시대의 교육에 대한 격론의 서막을 열었다.
그동안 학교, 대학 등으로 대표되는 제도권의 페다고지(Pedagogy) 패러다임이 우리 교육을 지배해 왔다. 교육이 개인의 잠재력을 발굴·계발하는 도구라면, 인간의 미래를 좌우하는 학교 권력은 막강했다.
한 교수는 이를 '학교 패권주의(School Fascism)', '더러운 교육(Dirty Schooling)'이라 비판하고,
앞으로는 교육이 '어떻게 더불어 사느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살하는 학생들이 늘고,
배움의 의미는 사라져 간다. 졸업장이라는 '공인서'만 받으면 끝이다. 교문 밖만 나서면 배움은
무용지물이다. OECD 국가 중 평생학습력이 가장 떨어지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 교수는 말한다.
한준상 교수는 고대 그리스의 지역 공동체 중심 인성 교육, '안드라고지'를 제안한다. 안드라고지의
이상향은 평생 학습이 가능한 학습 생태계다. 특히 학교를 지역 사회 주민들에게 학습 친화력을
불어넣기 위한 학습 친화적인 배움터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기존의 의무 교육비로 쓰이던 세금을
주민들의 학습 경비 혹은 학습 지불 보증 제도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교육, 페다고지는
인간 교육의 극히 일부이기 때문이다.

토론 : 박원희 단국대 특수교육과 교수, 노종희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
이에 토론자 박원희 교수와 노종희 교수는 '더러운' 교육이란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며, 일례로 높은
비중의 예산과 수십만 교원들의 헌신을 상기시켰다. 또한 실천적 대안으로서 안드라고지가 미흡하고,
지식 기반 사회로 이행하는 데 대한 대안이 없음을 지적했다. 특히 학습 공동체의 지역차는 보완책이
요구되는 심각한 문제다. 이로 인해 인터넷처럼 태생적 기회 여부에 따라 평생 학습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야기될 수 있다. 그리고 학습 마을의 중심은 결국 대학의 몫이기 때문에 대학의 실질 지위를
높여야 한다고 반박했다.
부연으로 한준상 교수는 사람들이 배우는 게 즐겁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습은 개인의 일로,
기관은 도서관·박물관 등을 늘리고 그 이용법을 알려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특히 학교가
배움의 본능을 가꾸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여건, 학생은 인적자원이 아니다
발표 2 : 권대봉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로 개칭하면서 최근 '인적 자원 개발'이 일종의 유행어가 되고 있다.
과연 사람은 무엇인가? 1960년대부터 슐츠 같은 경제학자들은 사람을 인간 자본(Human Capital)으로, 나들러는 사람을 물적 자원과 재정 자원에 비유하여 인적 자원으로 간주하였다. 특히 나들러는 교육·훈련·개발을 묶어서 인적 자원 개발(Human Resource Development)로 총칭한 바 있다.
그러나 권대봉 교수는 교육에서 인적 자원은 학생이 아니라 교육 관련 공무원과 교직원들이라고 말한다.
과거 산업 사회 시절에 사용하던 교육의 틀은 지식 기반 사회의 인재 양성 틀로서 부적합하다.
또한 교육은 궁극적으로 개인이 존재 가치를 발휘하여 자기 실현을 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함은
물론,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사회·국가·국제적 수준에서 기획·실시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사범 대학에 기부를 기피하는 기업들을 성토하고, 국제적 수준의 인적 자원 개발을 위해 아시아
수준에서 한·중·일 교육 네트워크를 결성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토론 : 강무섭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서정화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이에 대해 토론자, 강무섭 원장과 서정화 교수는 학생을 배제한 인적 자원 개념에 반문하고, 인적
자원 개발 개념에 대한 종합적 접근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권 교수는 교육의 목적인 학생이
장래 지식 근로자의 가능태라고 할 때, 인턴십 등으로 부드럽게 변모(Smooth Transformation)할
수 있도록 도와 줘야지, 학생 그 자체로 자원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한 기업마다 인재의 조건이
다르기에 저마다의 개별 요구에 맞추기보다 전반적인 학습 적응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교육
패러다임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2주제 교육환경의 변화와 교육정책
사회 : 박세일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고교평준화의 공과(功過)를 가늠한다
발표 1 : 박부권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중등 교육의 뼈대인 고교 평준화 정책은 일단 '평준화' 개념 자체에 대한 일반의 오해부터,
'하향 평준화'와 동일시되어 온 다사다난한 전력(前歷)까지 우리 교육의 뜨거운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대학 입시와 관련, 적법성 시비마저 일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과외비를 공교육으로 돌려 경제 성장을 위한 자금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실시된
고교 학군별 추첨 배정제(평준화)는 일단 학습성과면에서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박부권 교수는 말한다.
실제 OECD 국가들의 국제 학생 성취도 비교에서도 한국은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다.
그러나 '하향 평준화'란 오명처럼, 전체 학생의 평균은 높으나 상위 3%의 성적은 열등하다.
양(量)에서 질(質)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그래서 박 교수는 학교 시설 수준을
균일화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평준화 정책을 보완하되, 또래 집단에서 동료들의 영향이 가장
큰 만큼 엘리트들을 빼내 공교육을 슬럼화시키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토론 : 정유성 서강대 교양과정부 교수, 황우여 국회의원
그러나 정유성 교수는 평준화의 기본틀에 동의하면서도, 교육 담론이 여론에 일희일비하는 대중주의,
선정적 저널리즘으로 전락하는 일은 분명 지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준화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성적으로 정책을 평가하는 잣대가 문제라는 의견도 개진했다. 정 교수는 획일화된 고교 틀 안에서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당사자들의 고통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에 이를
바탕으로 성적으로 서열화된 현재의 교육을 수평적인 다양화로 방향 전환시켜야 하고, 궁극적으로
교육 문화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황우여 국회의원은 시민이 인간으로서 참된 행복과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며, 개별 건학 이념과 교육 철학 위에 설립된 사립은 평준화 정책에서
제외하고, 수업 과목들도 대학과 같이 원하는 과목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교육 1등이 세계 1등
발표2 : 곽병선 인천교육대 초빙교수
곽병선 교수는 마지막 주제 발표에서 우리 교육 경쟁력의 현주소와 과제를 논했다. 그는 상위
3~5%의 인재로 나머지 사회 전체가 유지된다는 80대 20의 원칙을 강조하고, WTO 교육 개방에
따른 우리 교육의 국제 경쟁력을 물었다. 21세기 한국이 주도적인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초일류
고등 인력을 양성할 교육 제도를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곽 교수는 특히 입시 병폐의 온상지로
서울대를 거론, 서울대가 학부에서 손을 떼고 연구 중심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수 교사 밑에서 우수 학생이 태어나고, 현재 1인당 담당 학생 수가 OECD 국가 중 최대인
교육 현실을 고려할 때, 우수 대학 15개 정도를 전국에 산재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 : 김승권 고려대 산업시스템 정보공학과 교수, 지은림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
이와 관련, 김승권 교수는 교과서 등 지도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교과서가 기계적인 문제 풀이를
강요할 게 아니라 수요자 입장에서 문제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게 하고,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심화
학습을 가능케 하여 질적인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학 입시 관계자로서 지필 고사 점수
(문제 해결력)에 의한 줄 세우기와 다양한 대학 입학 전형 방안이 수용되지 않는 현실, 그리고 교원들의 매너리즘 역시 함께 비판했다.
지은림 교수는 우선 평준화와 비평준화 간의 차이가 적은 것은 사교육이 반영된 결과로, 과외비라는
주요 변인의 통제 여부를 물어 박 교수의 연구를 반박했다. 그리고 이어서 '21세기 학생들을, 20세기 교실에서, 19세기 교사들이 가르치고 있다'며, 스위스 한 교육 평가 기관의 연구와 기업 설문 조사
결과들을 인용, OECD 국가들 중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 교육의 경쟁력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우리 교육도 기업의 경영 마인드를 도입, 생산 품질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GDP 대비,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는 교육 관련 재정 지원의 확대를 급선무 중 하나로 지적했다.

자유 질의
같은 맥락에서 일선 교장의 논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부권 교수가 평준화의 보완책으로 제시한
시설 업그레이드와 다양한 프로그램 구비 같은 대안 등은 교원 수급조차 원활하지 않아 제2 외국어도
불어, 독어에 한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탁상공론이 아니냐는 말이다. 이러한 반론에 박 교수는 일단
사교육 효과로 연구 결과가 오염됐을 가능성은 인정했지만, 엘리트 중심주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했다. 초일류로 불리는 기업조차 국민의 세금과 저축 등을 투입, 운영하고 있는 현실에서 소수 인재가 사회를
이끈다는 논리는 우리의 사회적 맥락에서 재정의돼야 한다고.

정리를 마치며
선진국들은 교육 개혁의 방향과 과제를 놓고 197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에 걸쳐 토론과 논쟁을
거쳐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일단 개혁을 추진하면서는 그 합의에 근거하여 흔들림 없이 단계적으로 추진하였다. 반면에 우리는 공론화 과정을 생략, 개혁의 정당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교육 개혁이 진행됐다.
개혁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묻는 청중의 질문에 한준상 교수는 "선생님 같은 분들이 많아진다면 개혁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 답변했다. 바로 오늘의 심포지엄이 제기한 문제들이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글을 쓰고 정리한 남영숙은 아산장학생으로, 현재 본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