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테 마 - 알고 싶고, 하면 좋고, 하지 않는 것 남은옥

미리 알고 싶은 것

시험지 답안
시험 전날이면 '답안지 하나만 있으면 전쟁터에 관우와 장비를 좌우로 거느린 유비보다도 더 든든할 텐데…' 하는 맘을 지울 수가 없답니다. 시험 답안지만 있으면, 그 많은 교과서들 공부하면서, 머리를 달구지 않아도 되고, 복잡한 수학 공식 틈새에서 힘겨운 미로찾기를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시험 보는 날에는 시험 답안지를 10분 만에 쓰고서 자신 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의아해 하는 친구들의 표정을 뒤로 한 채로 교실을 나설 수 있겠지요. 시험이 끝난 뒤에는 친구들과 답안지를 맞춰보면서 부러움의 눈길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시험지를 미리 본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인데도 말이에요.

친구의 마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단 하루만이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상대방이 지닌 맘을 미리 알고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물할 수 있다면…. 생각만해도 행복한 미소가 얼굴 가득 물안개처럼 번져 가네요.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하고 있는데 내가 아이스크림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달려온다면…. 후훗. 그 사람은 너무 감동해서 마구마구 웃다가 메리포핀즈에 나오는 아저씨처럼 하늘로 날아가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요.

복권 당첨번호
복권가게 앞에서 복권을 긁는 아저씨들을 바라보면서 '당첨되는 복권을 미리 알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그 것만 알 수 있다면, 맬 맬 복권 1장씩만 긁어도 한 달이면… 1년이면… 와우~~! 벼락부자가 되어 있을 거예요. 긁어도, 긁어도 1등만 당첨!! 우헤헤~ 잠깜 내 얼굴좀 봐 주세요. 입이 길게 늘어져서 귀에 닿아 있어도 난 어쩔 수 없을 거예요. 상상만으로도 너무 너무 기분 좋은걸요.

사람들의 미래 모습
가끔씩 수없이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옷깃 속에서 그들의 '미래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해 봐요.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마 위로 그들의 미래가 비추어지는 거지요. 마치 영화에서처럼요. 이마에 있으니까 그 사람은 자기 미래를 볼 수 없겠지요. 나만 혼자 사람들의 미래를 알고 있다면…. 아마 비밀을 입 속에 담아두지 못할 거예요. 아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외쳐댔던 이발사처럼 나도 숲속에 들어가 땅을 파고 그 안에다 대고 큰소리로 외치지 않을까요. "누구누구는 모모모가 되어 있을 거예요" 하고 말이죠. 아니면… 특이한 능력이라고 세계의 방송국을 돌아다니면서 방송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유명인사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거구요. 기네스북에도 오르고, 용한 점쟁이라면서 점집에서 복채를 받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밖에
이런 것들 말고도 때때로 미리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이 문득 문득 떠오를 때가 많아요. 수박 살 때, 수박을 자르기 전에 얼마나 잘 익었는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러면 맛없는 수박 사 왔다고 꾸지람 듣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내 운명이나 운세를 미리 알고 싶을 때가 많아요. 인터넷으로 타로점이다, 별자리 점이다, 보긴 하지만 잘 맞지 않잖아요. 내 앞에 놓여 있는 미래가 궁금해서 방방 뛸 때도 있답니다. 미리 알 수 있다면 사고나 불운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신들의 신탁처럼 거부해도 별 수 없을까요?

미리 하면 좋은 것

수해 대비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것 중의 하나는 수해 대비를 철저히 하자는 거예요. 장마철에 금이 간 축대나 물에 잠길 위험이 있는 것들은 미리미리 손질해 두어야 피해를 줄일 수 있겠지요. 동화에도, 둑에 난 구멍을 자기 주먹으로 막아서 마을을 수해에서 구한 아이 이야기가 있고,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도 있는 걸 보면, 미리미리 피해를 예방하는 게 피해가 생긴 후에 복구하는 것보다 백만 배 좋은 것 같아요.

여권
해외 여행 가기 전에는 미리미리 여권을 만들어 놓으면 마음이 편해요. 출국하는 전날까지 여권이 나올지 안 나올지 고민하다 보면, 다른 준비도 하지 못하고, 애만 태우게 되거든요. 미리 짐도 챙기고, 여행 가는 곳의 정보도 찾아보고, 완벽한 여행은 사전의 철저한 준비가 만들어준다구요~~^^*

약속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슴 타는 사랑이야기를 보면서 약속은 미리미리 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신부님이 미리미리 두 사람 모두에게 약속을 일러 주었더라면 그렇게 슬픈 사랑의 결말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몰라요. 우체부 아저씨와 길이 엇갈려서 로미오는 줄리엣의 소식을 까맣게 몰랐으니까요. 그 시대에도 요즘처럼 핸드폰이 있었더라면 우체부 아저씨를 못 만났어도 두 사람이 만났을 수 있었을 텐데… 너무너무 안타까워요.

숙제와 준비물
숙제와 준비물은 전날 미리미리 준비해요. 다음 날 아침, 그날이 운 좋게도 월요일이면 더더욱 전날 미리미리 준비해 놓아야 해요. 월요일은 다른 날보다 더 정신없이 쓩!쓩! 지나가 버리는 총알 같은 날이기 때문이죠. 미리 준비해 놓은 준비물과 숙제는 전쟁터에 나갈 때 총에 총알을 미리 장전해놓은 것 같이 든든한 마음을 갖게 해줘요.

건강
건강도 나빠지기 전에 미리미리 지켜야 해요. 짧은 바지는 다시 늘릴 수 없지만 긴 바지는 작게 줄일 수 있는 것처럼, 건강도 기초 체력이 튼튼하면 잠시 나빠진 건강을 다시 되찾을 수 있지만 기초 체력이 나빠지면 다시 건강해지는 것이 매우 힘이 들기 때문이죠. 더 늦기 전에 오늘부터라도 집앞 학교 운동장에 가서 줄넘기라도 하면서 건강할 때 미리미리 건강을 지켜야겠어요.

미리 하지 않는 것

식사
밥을 먹다가 '밥도 한꺼번에 미리 먹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그건 바보짓이란 결론이 났어요. 특히 일주일치 식사를 미리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지요. 여름에는 특히 입맛이 없어서 맛있는 과일이랑 음식들로 잔뜩 배를 불리고 다음 일주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그치만 절대로 그렇게 해보진 않았어요. 그렇게 한다고 일주일 동안 밥을 안 먹어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일주일치를 한번에 다 먹으면 아마 맛없는 소화제를 후식으로 해야할 거예요. 으~~생각만으로도 끔찍하죠.


전에 숙제가 잔뜩 밀려 있던 날 '여러 날 자야 하는 잠을 미리 한번에 몰아서 잘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봤어요.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을 때는 잠을 잘 못 자게 되니깐 미리 그것에 대비해서 잠을 자 두면 그때 잠을 못 자도 괜찮을 거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잠을 몰아서 자는 일도 현명한 사람이라면 하진 않겠죠. 혹시나 하고 31시간 동안 몰아서 잠을 자보았는데, 다음 날도 밤에 다시 잠이 오더라니까요. 그래서 별명이 31인데…^^;;

그밖에
엉망인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일도 미리미리 하지 않는 것들 중의 하나이죠. 부모님께서 물어보지 않으면 굳이 보여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 전세계 학생들의 심정이 아닐까요. 잘 나온 성적표라면 모를까 눈뜨고 보기 힘든 성적표로 괜히 부모님 맘을 미리부터 상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세금도 미리미리 내지는 않아요. 엄마와 함께 거의 마감일이 다 되서야 은행으로 가게 되요. 함께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걸 보면 우리집만 세금을 늦게 내는 것은 아닌가 봐요. ^^

글쓴이 남은옥은 아산재단 장학생으로, 현재 본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