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좌측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재단 포커스

상세페이지
아산재단, 2019학년도 장학증서 수여식 개최 등록일: 2019.02.25

아산재단, 장학증서 수여식 개최

 

 

아산장학생 1,296명에게 장학금 50억 원 전달

 
 
아산사회복지재단(이사장 정몽준)은 26일(화) 오후 1시 30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아산생명과학연구원 강당에서 2019년도 아산장학생 장학증서 수여식을 개최했습니다.
 
아산재단은 이날 대학생 770명, 고등학생 500명, 의생명과학분야 대학원생 26명 등 총 1,296명에게 장학금 50억 원을 전달했습니다.
 
장학생으로 선발된 대학생은 졸업 시까지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으며, 이 가운데에는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소외된 이웃과 나누는 ‘재능나눔장학생’ 130명을 비롯해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학업중단 위기에 놓인 ‘나래장학생’ 174명, ‘성적우수장학생’ 179명, 신체적 장애를 딛고 학업에 정진하고 있는 ‘다솜장학생’ 36명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군인, 경찰, 소방, 해양경찰 등 국가의 안전을 위해 복무하는 대원들을 격려하고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된 ‘MIU(Men In Uniform) 자녀 장학생’ 230명도 포함됐습니다.
 
나래장학생과 다솜장학생 210명에게는 등록금 이외에 생활비로 월 20만원을 지원하여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산재단은 저소득가정의 고등학생들이 온라인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수강권과 교재를 지원하는 이러닝(e-learning) 장학생  500명도 선발했습니다.
 
또한 의생명과학분야를 이끌어갈 우수인재 양성을 위해 국내 18명, 해외 8명 등 총 26명의 대학원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아산재단은 1977년 재단 설립과 함께 꾸준히 장학 사업을 펼쳐오고 있으며, 지금까지 3만 3천여 명의 학생들에게 총 690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인사말>

 

<정몽준 이사장>

 

 

바쁘신데 참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신 모습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산장학생에 선발되신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 장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참석해주신
총장님들과 교수님들, 군과 경찰, 소방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장학생들을 선발하느라 애써주신 
장학자문위원님들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저희 아산재단은 1977년 설립 직후부터 장학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선친께서는 아산재단을 설립하시면서 
재단의 할 일을 ‘끼니를 잇기 어려울 만큼 가난한 사람,
병이 들어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
학자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청소년을 돕고 지원하는 것’
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정식교육이라고는 할아버님께서 가르치셨던 
서당에서의 3년과 초등학교 4, 5, 6학년 과정 
이렇게 3년 다니신 게 전부였지만 

배움에 대한 갈망은 대단히 높으셨습니다.

 

아버님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를 보면,
예전에 청운동 살 때 아버님께선 아침마다 무엇을 쓰셨는데 
그게 이 책이었나 봅니다, 


그 시절에 신문이라고는 동네 구장댁에 배달되었던
동아일보 밖에 없었는데
동네 어른들이 다 돌려보고 난 뒤에
맨 나중에 빼놓지 않고 얻어 보셨다고 합니다.

 

그 구장댁까지 가는데도 걸어서 한 시간이 걸렸다고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신문에 연재되었던 이광수의 소설  「흙」 의 주인공 허숭처럼,

변호사가 되고 싶어서, 서울에서 막노동을 하시면서도 
당시 변호사시험인 보통고시에 3번이나 도전했지만
애석하게도 합격하지 못했다고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배움에 대한 갈구가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대학생 770명, 고등학생 500명,
의생명과학분야 대학원생 26명 총 1,296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합니다.

 

저희 아산재단은 앞으로도 배움의 갈망이 있는 학생들을 돕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축사를 해주실 김갑유 변호사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서울대 법학과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김 변호사는 40대에 한국인 최초로
국제중재법원의 최연소 상임위원으로 선출되셨습니다.

 

현재 국제중재법원 부원장인 김 변호사는  
대구 능인고 1학년 때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갑작스럽게 부친께서 돌아가시자 
김 변호사는 어려워진 집안사정으로 
일을 하며 학업을 이어나가야 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학교의 추천으로 아산장학생에 선발되어 
졸업할 때까지 안정적으로 학업에 전념하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변호사님께서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아버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 있는 한 구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인생을 잘사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잘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재산 많은 부자면 행복한 사람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최선을 다해 자기한테 맡겨진 일을 전심전력으로 이루어내며"


여기 나오는 전심전력이라는 말은 아버님께서 평소 잘 쓰시던 표현입니다. 


"현재를 충실히 살 줄 아는 사람은 우선 행복한 사람이다. 

현재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꿈으로 
언제나 일하는 것이 즐겁고, 작은 일에도 행복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인생을 잘사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급 기술자든 고급 기술자든, 중국집 배달원이든, 
학생이든, 관리든 마찬가지다."

 

아버님의 말씀대로 장학생 여러분들도 현재에 충실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 바랍니다.


저희 아산재단은 항상 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축사>

 

<김갑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오늘 자랑스러운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된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41년전 저는 여러분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산재단이 설립된 1977년의 바로 다음해인 1978년 저는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장학증서수여식에 참석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살던 대구경북지역의 장학증서수여식은 대구시교육청에서 열렸는데 장학생이 20여명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산재단의 설립자이신 정주영 회장님께서 직접 참석하셔서 축사도 하시고 증서도 전달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날 정주영 회장님의 축사는 흥미진진하고 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현대중공업 설립에 관한 이야기 였는데요. 조선소 건설에 필요한 차관을 얻기 위해 영국에 가서 항공사진과 지도를 내 보이고, 당시 500원 지폐의 뒷면에 그려진 거북선으로 우리의 조선능력을 설명해 차관을 받아낸 이야기 그리고 아직 조선소도 짓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스 선주로부터 선박건조계약을 수주했던 전설 같은 이야기를 저는 불과 1.5미터 거리에서 정주영 회장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동화에나 나올 법한 기적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 날 정주영 회장님을 처음으로 뵌 저는 우선 회장님의 건장하신 모습에 놀랐고, 또한 청중을 매료하는 흥이 가득한 말씀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축사가 끝나고 우뢰 같은 박수를 받으신 회장님께서 장학생들에게 일일히 증서를 전달해 주셨습니다. 그 때 회장님께서 저에게 장학증서를 건네시면서 어깨를 툭 치시며 “이봐, 뭐든지 하면 일등해!”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저와 정주영 회장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은 너무 강한 인상으로 남아서 그후로 TV나 미디어를 통해 회장님의 모습을 뵐 때마다 그떄 하시던 말씀과 표정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구의 평범한 가정에서 특별히 아쉬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이른 봄, 평소 건강하시던 아버님이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불과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납니다.

 

고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안된 어느 날 수업 중에 교실문이 열리고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저를 불러내시고 급히 집으로 달려갔던 기억. 안 방에 들어서자 이내 아버님이 큰 숨을 내쉬고 돌아가셨던 기억. 그 때 아버지의 눈을 감겨드리는 임종의 순간이 저는 현실로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꿈인 것 같았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몇 개월이 지나서 학교를 다녀오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 되고서야 나는 아버님이 안계신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평소 술담배도 멀리하시고 누구보다 건강하고 성실하신 아버님이 왜 그런 병에 걸려 갑자기 돌아가셔야 하는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하는 생각들이 자꾸만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바로 그 때 저는 막 설립된 아산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저로서는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아산장학생이 된 이후 저는 서울대 법과대학에 진학했고 대학4학년 때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법조인이 되었습니다. 로펌 변호사로 일하던 중에 해외연수의 기회가 생겨 하바드 로스쿨도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도 취득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분야는 “국제중재”라는 것인데 국제적인 분쟁이 생기면 어느 나라의 법원에 가서 판사 앞에서 재판을 받는 대신 분쟁당사자들이 합의해서 선정한 중립적인 중재인들이 재판을 해서 판정을 내리는 제도입니다. 말하자면, 어떤 국가의 판사가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재판을 하는 “사적재판” 제도인 것입니다.

 

그 절차가 비공개로 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실제로 국제적인 분쟁 중에 크고 중요한 분쟁은 대부분이 국제중재로 해결됩니다. 

 

여러분 혹시 론스타 펀드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5조5천억원 상당의 손해를 청구하고 있는 ISD사건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사건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대리하고 있는데 이 사건도 국제중재입니다. 중재판정부는 영국인, 미국인, 프랑스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난 5년간 중재가 진행되었고 이제 최종판정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이길 수 있도록 여러분들께서도 응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 아랍에미레이트의 부호 만수르를 아시지요? 아랍에미레이트의 IPIC는 네덜란드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IMF 금융위기중에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50%를 사들였습니다. 그 후 2003년 경제위기가 오자 그 상황을 이용해서 지분을 70%까지 늘렸습니다.

 

그러다가 현대오일뱅크의 외국주주와 국내주주간의 주주계약상의 분쟁이 생겼습니다. 서로 상대방의 지분을 강제매입하겠다는 청구를 했습니다. 이 분쟁도 국제중재였습니다. 중재장소는 싱가폴이었고, 중재인들을 영국인, 호주인, 오스트리아인이었습니다.

 

저는 30% 지분을 가진 한국주주측을 대리했습니다. 분쟁에 걸린 경제적 이익은 수조원에 이르렀고, 무엇보다 어느쪽이든 이기는 쪽이 상대방 주식 전부를 강제로 매입한다는 점에서 국제적으로도 대단히 드문 분쟁이었습니다. 전세계 정유업계가 결과를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3년에 걸친 중재절차끝에 결과는 한국주주의 완승으로 종결되었습니다. 한국주주는 현대오일뱅크의 100%주주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현대오일뱅크의 한국 주주는 누구일까요? 바로 정주영 회장님이 기적 같은 스토리로 설립하신 현대중공업입니다. 저는 아산장학생의 한사람으로서 설립자이신 정주영 회장님께서 만드신 현대중공업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낳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게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현대오일뱅크 중재의 결과로 저는 2011년 글로벌아비트레이션리뷰 라는 중재분야의 최고권위지가 주는 “올해의 중재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상은 전세계에서 이루어진 수천건의 국제중재사건 중에서 그 해 가장 크게 이긴 중재사건에 주어지는 상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제가 이 사건의 승리로 세계 1등을 한 것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저는 국제중재를 하면서 내가 세계 1등을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시상식장에서 5건의 후보사건 중에 현대중공업의 이름이 불렸을 때 저는 그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정주영 회장님이 수십년전에 장학증서를 주시면서 “뭐든지 하면 1등하라” 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상패를 회장님께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국제중재분야에는 UN산하 NGO인 ICCA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스포츠분야의 조직위원회 IOC나 축구 분야이 FIFA같은 조직입니다. ICCA는 1960년에 설립되었는데 2009년까지 우리는 위원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2009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40명의 위원 중에 한 명으로 선출되었고 2010년에는 그 조직의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어 4년간 ICCA 조직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현재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진 ICC 국제중재법원의 부원장직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외국을 가본적이 없는 시골 학생이던 제가 아산재단을 만나 장학생이 된 후 정주영 회장님의 말씀대로 진짜 1등이 된 것입니다.

 

아산장학생 여러분, 자랑스러운 아산장학생이 되신 여러분은 이미 세계 1등이십니다. 미래에 대한 꿈에 있어서도 앞으로 나아갈 자신감에 있어서도 여러분은 이미 1등이십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BTS를 저도 좋아합니다.

 

비록 ‘ARMY’는 아니지만, 그 친구들 노래를 즐겨 듣습니다. 그 중 “불타오르네” 라는 노래가 있는데, 여러분도 잘 아시죠? 영어로 Fire 라고 번역된 그 노래는 자신을 믿고 자신의 삶을 불 타오르듯 열정적으로 살아갈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BTS 리더 ‘RM’이 유엔에서 연설하며 강조한 ‘Love Yourself’처럼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고 여러분의 능력을 믿고 불타오르듯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길을 자신 있게 나아가시기를 감히 권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 현재 페이지를 트위터로 공유하기
  • 현재 페이지를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 현재 페이지를 이메일로 공유하기
  • 현재 페이지를 인쇄하기
페이지 처음으로 이동
아산사회복지재단 (05505)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43길 88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