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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4
  • 부문 : 아산상
  • 소속(직위) : 삼양주민연대 대표
  • 수상자(단체) : 안광훈

달동네 지키는 벽안의 신부님

 

 

‘평생 자가용과 휴대폰 없이 살다 가다.’

 

이 말은 안광훈(73) 신부가 자신이 죽으면 삼으려고 했던 묘비명이다. 70년 넘게 살아오면서 무소유를 실천한 자부심이 깃든 이 말을 수정할 일이 최근에 생겼다. 안 신부와 함께 서울 미아지역의 달동네에 살면서 세입자대책위 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이 지난 8월, 안 신부에게 휴대폰을 하나 억지로 떠넘겼다. 급히 연락할 일이 생겨도 전화가 안 돼 답답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안 신부는 운전은 할 줄 알지만 차를 소유한 적이 없다. ‘로만 칼라’로 불리는 사제복도 거의 입지 않는다. 1966년 한국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달동네 이웃들’과 함께해왔는데, 신부복을 입고 격식을 차리면 그들과 벽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 신부는 지금 송천동으로 이름이 바뀐 미아8동의 다세대주택을 전세로 얻어 혼자 숙식을 해결하며 살고 있다. 크기는 18평쯤, 전세비는 7천만 원으로 대부분 안 신부가 소속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골롬반)에서 마련해 주었다. 1992년 서울 미아지역에서 살기 시작한 뒤 세 차례의 철거 등을 겪으며 마련한 보금자리다.

 

안 신부는 1941년 12월 14일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3남2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본명은 로버트 존 브레난(Robert John Brennan). 체신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만 빼고 가족 모두 가톨릭 신자였다.

 

집에는 매달 골롬반 회지가 배달됐는데, 어린 시절 그는 한국과 필리핀 선교 얘기가 나오는 이 회지를 보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장남인 그가 18세에 골롬반에 입회하면서 신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반대 의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아들이 가려는 길을 격려해주어서 그는 부담을 덜고 호주 시드니의 골롬반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65년의 일이었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지시를 좇아 1966년 한국에 입국한 안 신부는 서울 돈암동에 자리한 골롬반 한국지부에서 2년 동안 적응기를 보낸 뒤 1968년 삼척 사직동성당 주임신부로 보내졌고, 1년 뒤에는 다시 정선성당에 가서 1979년까지 주임신부를 맡았다. 정선에서 안 신부는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여러 활동을 펼쳤다. 1972년 12월에는 정선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고, 1976년에는 무의촌이나 다름없던 정선에 프란시스코 수녀회를 도와 프란시스코의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81~1984년 서울의 목동성당 주임신부를 맡았을 때는 안양천변의 철거민 같은 어려운 이웃을 보살폈다.

 

1985년부터 6년 동안 서울의 골롬반신학원 원장을 지낸 안 신부는 안식년을 맞아 미국 시카고신학대학에서 1년간 성서학을 공부했다. 1992년 귀국 뒤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빈민지역 주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추기경이 삼양동 지역을 추천해주어 주민들과 생활하기 시작하였다. 1998년 삼양동 선교본당이 설립되어 초대 주임신부로 2002년까지 활동했다.

 

안 신부는 현재 1999년 만들어진 삼양주민연대의 대표를 맡고 있다. 삼양주민연대는 주거 마련과 주민 자활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데, 소액대출과 지역맞춤형 일자리창출 · 가사 및 산모 도우미 사업단 · 자활근로센터 위탁운영 · 마을기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잘 알려진 것은 솔샘일터라는 봉제협동조합이다. 1994년 삼양동 지역 주민들이 공동출자해 자립적으로 운영하는 솔샘일터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입었던 수의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과 명동성당 미사에서 입은 장백의(長白衣)를 제작했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미아지역에서 계속 주민들과 함께 살겠다”는 안 신부는 청춘을 바친 한국에 뼈를 묻을 생각으로 충북 제천 천주교 배론성지의 성직자 묘지에 안식처를 마련해 놓았다.

 

“한국 사람들은 친해지면 무척 친절하고 관대해요.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웃끼리 돕고 살던 공동체 의식이 없어져서 안타까워요.”

 

소외된 이들을 보살피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해온 안광훈 신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그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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