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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4
  • 부문 : 의료봉사상
  • 소속(직위) : 삼산의원 원장
  • 수상자(단체) : 김신기 손신실

한센인들과 함께한 28년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로 152. 삼산의원 앞에 도착하자 악취가 코를 찌른다. 삼산의원은 한센인과 그 가족 등 2천여 명이 생활하는 익산농원의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데, 농장에서는 돼지 10만여 마리와 닭 5만 마리, 한우 70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니 이 정도 냄새는 당연할 듯싶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의료진이 만나기 전부터 존경스럽다.

 

“환자들이 여기 익산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와요. 전라도 여수 · 광양 · 장성, 충청도 제천 · 청주, 강원도 원주…. 서울에서도 온다니까. 이상해.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어요.”

 

‘명의’로 소문난 것을 정작 본인만 모르는 김신기(85) 원장은 고령에 따른 체력적 한계로 예약제로 병원을 운영한다.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병원을 운영하면서 하루 50명의 예약환자만 진료를 보는 것이다.

 

삼산의원 자체가 한센인들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는 한센인들이 병원을 많이 찾았다. 그러나 한센인들의 수가 감소하면서 10여 년 전부터는 일반 환자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한센인들은 병원에 올 일이 있어도 주변 시선을 의식해 오후 3~4시에 내원한다.

 

삼산의원은 원래 김신기 원장과 부인인 손신실(79) 원장이 함께 진료한 부부의원이었다. 그러나 손 원장이 류머티즘 등으로 걷기가 불편해져 2011년부터 김 원장 혼자 진료를 하고 있다.

 

김신기 원장은 1929년 6월 7일 전북 익산에서 4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 원장의 부친(김병수 · 1951년 사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익산에 전달한 독립유공자로, 1921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1922년부터 익산에 삼산의원을 개원해 운영했다. 김 원장 부친은 병원을 운영하는 한편 학교와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부친의 영향을 받아 김 원장은 의사가 되기 전부터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1952년 부친의 모교인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김 원장은 공군 군의관(대위)과 전주예수병원 일반외과 수련의를 거쳐 1961년 고향인 익산에 부친의 병원 이름을 딴 삼산의원을 다시 열었다. 이때는 혼자가 아니라 부인 손신실 원장과 함께였다.

 

남편보다 여섯 살 아래인 손 원장은 1935년 5월 10일 전남 목포에서 3남3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 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서울음대 성악과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당시엔 ‘노래는 딴따라나 하는 것’이라며 천시하는 경향이 많아서 의대로 진학해 1958년 전남대 의대를 졸업했다. 1957년 손 원장이 의대 졸업반 여름방학 때 집안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1958년 12월 부부의 연을 맺었다.

 

병원을 함께 운영하면서 부부는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하지만 생활이 안정될수록 김 원장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그러다가 김 원장이 익산로터리클럽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익산시 왕궁면의 한센인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1986년 부부가 진료를 시작한 곳은 한일기독의원이다. 1949년 조성된 한센인 정착농원인 익산복지농원이 농원 산하기관으로 세운 의원이었다. 김 원장은 주로 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손 원장은 농장 안의 양로원에서 환자를 보살피면서 하루 평균 60여 명을 진료했다.

 

한일기독의원에서 일한 지 20여 년이 흐르자 지역에서는 김 원장 내외를 두고 ‘익산의 슈바이처’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던 2007년 위기가 찾아왔다. 대장암과 심장판막증, 심근경색증 등이 찾아온 김 원장이 치료 때문에 병원을 쉬어야 했던 것이다. 농장 운영위원회는 다른 의사를 물색했지만 오겠다는 의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병원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2년간의 수술과 회복과정을 거친 김 원장은 2009년 2월 다시 한센인마을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한일기독의원이 있던 건물을 임대해 예전 부친과 부부가 운영했던 삼산의원 간판을 내걸고 진료를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집사람은 몸이 불편해 병원에 못 오지만, 나 혼자라도 여기에서 계속 진료하다가 죽는 게 마지막 남은 꿈이에요.”

 

결혼한 지 56년째. 함께 백발이 되어 곱게 나이든 부부의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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