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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9
  • 부문 : 사회봉사상
  • 소속(직위) : 이상옥 헬레나 원장수녀
  • 수상자(단체) :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

소외된 노인들과 함께한 따뜻한 동행

 

 

1971년, 외국인 수녀 세 명이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 양로원을 세우기 위해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Little Sisters of the Poor)’ 프랑스 본원에서 파견한 수녀들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는 1840년대에 프랑스에서 성녀 쟌 쥬강 수녀가 설립한, 교황청 직속의 국제 사도직 수녀회다.

 

1839년의 어느 추운 겨울날, 쟌 쥬강 수녀는 거리에서 반신불수인 시각장애 할머니를 만난다. 쟌 쥬강은 차마 그 할머니를 거리에 버려둘 수 없어 집으로 모셔와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침대를 내어줬다. 돌봄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하나, 둘 갈 곳 없는 늙은 걸인들이 몰려들었다.

 

몇 년이 지나자, 돌보는 노인은 40여 명으로 늘었다. 쟌 쥬강 수녀는 바구니를 들고 거리로 나가 모금을 해 노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가난한 노인을 돌보는 일을 유일한 사명으로 하는 경로수녀회,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의 시작이었다.

 

첫 한국분원 ‘성심양로원’을 운영하다

 

양로원 설립의 뜻을 품고 한국에 온 세 명의 수녀는 외국인 선교사를 위한 한국 어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자신들이 한국에 오게 된 이야기를 가톨릭 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했다. 얼마 뒤, 한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국 메리놀 수도회 소속으로 청주교구 초대 주교인 파 야고보 신부였다.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의 뜻에 공감한 파 야고보 신부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청주 성심양로원의 운영을 외국인 수녀 세 명에게 넘겨준다. 비록 허름한 기와집이었지만,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의 첫 한국분원은 1973년에 그렇게 마련되었다.

 

‘내 집’, ‘내 방’이라 여길 수 있는 공간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는 1973년 성심양로원(1997년 폐원)을 시작으로 1990년 경기도 수원에 ‘평화의 모후원’을, 1997년 전북 완주와 서울에 ‘성 요셉동산’과 ‘쟌 쥬강의 집’을, 2001년 전남 담양에 ‘예수 마음의 집’을 차례로 개원했다.

 

1989년부터 10여 년간 프랑스와 벨기에 양로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이상옥 헬레나(51) 원장 수녀는 자신이 외국에서 목격한 바를 이야기하면서 노인들을 존중하기에 우리 양로원도 변해야 했다고 말한다.

 

“외국의 양로원에 가보니, 노인들 모두가 개인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어요. 각자 본인 취향의 물건들로 자신의 방을 꾸며 놓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아, 이분들은 양로원이 아니라 그냥 자기 집의 자기 방에서 사시는구나, 말년의 평온한 삶이 바로 이런 것 이구나’라고 느꼈지요.”

 

처음부터 원룸 형태로 지은 전남 담양의 예수 마음의 집을 제외한 시설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현재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의 한국분원 시설은 모두 침대, 화장실, 샤워실이 있는 독립적인 원룸 형태를 갖추고 있다. 노인들은 식사만 식당에서 함께 할 뿐 그 외의 기상, 취침, 외출 등에 어떤 제약도 없이 자유롭

게 생활하고 있다.

 

탁발(托鉢)하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하는 양로원의 입소 대상은 인종, 종교, 지역에 관계없이 의지할 곳 없는 65세 이상 무의탁 노인으로,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다. 수녀들은 양로원에 입소한 노인들의 삶의 마지막 순간인 임종과 장례까지 책임지고 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 설립자인 쟌 쥬강 수녀가 말씀하시고 실천하신 것처럼 정부 지원 없이, 탁발로 생활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상옥 원장 수녀에 따르면, 수녀회 설립자 쟌 쥬강 수녀는 ‘우리 수녀회는 고정 수입원을 둬선 안 되며, 모금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탁발, 즉 모르는 이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기도하지 않으면 탁발하러 나갈 수 없을 정도의 심적 부담이 있는 일이다. 21년간 모금활동을 해온 추미경 도미니카(70) 수녀에겐 탁발과 관련한 여러 기억이 있다.

 

“옛날에 공장, 아파트, 빌딩, 가게에 들어가서 탁발하다 쫓겨난 일이 부지기수였지요. 보자마자 손사래를 막 쳐요. 애써 태연한 척 들어가지만, 모금이 안 되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와요. 그러면 그분들이 마음이 안 좋은지 뒤에서 다시 불러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세요. 요즘엔 일주일 에 한 번, 청과물 시장에서 먹을거리 등을 모금하고, 여러 성당을 다니면서 우리 수녀회를 설명하고 모금을 하기도 합니다.”

 

최우선 가치는 ‘노인들의 행복’

 

“저는요, 스물아홉에 혼자가 됐어요. 그런데 제가 글을 모르니까 제대로 된 직장에도 못 들어가고 한복 바느질을 배워 그 일을 하면서 아들 둘을 데리고 겨우 살았어요. 중학교 졸업밖에 못 한 큰아들은 지금 가방 만드는 일을 하면서 사는데, 일이 꾸준하지 않아 사는 게 힘들고, 둘째아들은 오토바이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어요.”

 

20여 년 전 평화의 모후원에 입소한 이경옥 베네딕다(88) 노인의 고단했던 지난 삶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한글을 처음 배우고, 나아가 컴퓨터도 배웠다. 그리고 안내실에서 수녀들을 도와 약 16년간 전화 안내를 하다가 지금은 귀가 안 들려서 쉬고 있다. 그녀는 “수녀님들은 천사들”이라면서 “이곳에 와서 내 삶에 감사하며 기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옥 원장 수녀는 노인들의 행복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사로부터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병원에 있던 노인을 집, 즉 양로원으로 모셔온다. 임종은 집에서 편안히 맞도록 해드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수녀들은 임종까지 3시간씩 교대로 그 곁을 지켜드린다. 노인이 삶을 마치면, 생전에 원하던 대로 사후처리를 해드린다. 의지할 곳 없는 무의탁 노인들의 행복한 말년에 이어 행복한 죽음까지가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가 추구하는 바다.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많은 수도자들에게 자매회의 수녀들은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성가소비녀 수녀회 담당 신부가 느낀 바는 이렇다.

 

“수녀회의 정식 명칭인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라고 하면 우리 사제들이나 수녀들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별칭인 ‘경로수녀회’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양로원 운영에서 독보적이고 전통 있으며 아주 유명한 수녀회예요. 수녀님들이 너무 헌신적이라고 생각해요.”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는 현재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의 32개국에서 3천여 명의 수녀들이 양로원 172곳을 운영하면서 11,500여 명의 노인을 돌보고 있다.

 

한국 분원은 현재 서울, 수원, 담양, 완주의 양로원에서 서른 명의 수녀들이 200여 명의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1973년부터 지금까지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을 거쳐 간 노인은 800여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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