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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8
  • 부문 : 복지실천상
  • 소속(직위) :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사무국장
  • 수상자(단체) : 오명원

“당사자이기에 뇌성마비장애인들의 마음이 더 잘 보였어요”

 


“1963년, 나는 유독 어렵게 세상에 나왔다. 태어나자마자 피부와 눈 흰자위에 황달이 있더니 이후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의사인 외할아버지와 소아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계신 어머니가 수소문 해 소아재활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섯 살 무렵 집 담장을 넘어 처음 만난 세계가 연세재활원이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근 10년간을 그곳에서 생활했다.”


오명원(54) 씨는 딸만 셋인 딸 부잣집의 장녀로 태어났다. 치료를 위해 유소년기를 재활원에서 보낸 오 씨는 일반 중·고등학교를 거쳐 1982년 그리스도신학대 신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의 봉사를 시작했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는 연세재활원의 부모회가 뇌성마비 아이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설립한 것으로 후원회 없이 어머니들 스스로 삯바느질과 바자회 등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있었다. 


1984년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 뇌성마비 청소년 국제캠프를 개최했다. 한국을 비롯한 영국, 일본 등 외국 국적의 뇌성마비인 친구들을 만났다. 장애를 가진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었던 오명원 씨에게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녀는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모임을 제안했고, 그게 뇌성마비 청년들의 자조와 자립을 위한단체 ‘청우회’의 시초였다.


뇌성마비인 중에는 지적장애가 없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런데 그들은 부모의 방치나 특수학교의 부족 등 여러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놓친 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오명원 씨는 ‘교육의 시기를 놓친 만 18세 이상의 뇌성마비인들이 모여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1985년 뇌성마비장애인을 위한 공부방인 ‘오뚜기 글방’을 열었다.


1986년 신학대를 졸업한 오명원 씨는 곧바로 숭실대 사회사업학과로 편입해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1991년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이 개관하자 오 씨는 그곳의 사회복지사로 채용됐다. 오 씨는 뇌성마비를 가진 당사자로서 부모교육, 여가활동 및 직업재활, 재가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한 자원봉사자 파견사업 등 뇌성마비 장애인에게 최우선으로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 힘썼다.

 

특히 도예와 칠보공예를 이용한 직업재활 프로그램을 개발해 중증의 뇌성마비장애인에게 제공했다. 2000년대 들어 장애인 직업재활 사회적기업이 대두되자 오 씨는 도자기와 칠보공방을 직업모델로 내세운 사회적기업 인증을 고용노동부에 신청했다. 그리고 3년간의 노력 끝에 2012년 ‘꿈을 일구는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인증을 받았다. 2015년에는 서울시의 보조금을 받아 국내 처음으로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한 공동생활가정 ‘오뚜기하우스 1·2’를 개소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중증 뇌성마비 당사자들의 어려움은 고스란히 보호자에게 전가된다. 갈 곳이 없어 집에 갇히게 되자 스트레스를 받아 짜증을 내는 뇌성마비 자녀와 그 보호자들을 위해 주간보호센터 설립이 절실하다고 느낀 오 씨는 2005년 오뚜기 뇌성마비인 주간보호센터를 설립하고, 이어 2012년에는 뇌성마비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힐링캠프’를 기획해 진행했다. 힐링캠프는 1년에 한 번 1박2일 일정으로 뇌성마비 자녀와 부모가 각자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으로, 이는 서울시에서 2015년부터 시행한‘장애돌봄가족휴가제’의 모태가 되었다.


오로지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해 살아온 30년의 시간, 오명원 씨는 본인이 뇌성마비 장애인이기에 그들의 마음이 더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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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사회복지재단 (05505)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43길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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