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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18
  • 부문 : 복지실천상
  • 소속(직위) :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촉탁의사
  • 수상자(단체) : 이미경

“세상의 명예는 없었지만, 보람 있고 감사한 삶이었다”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약사셨다. 부모님은 내게 항상 ‘나누고 살라’고 말씀하셨다. 내 생일이면 어머니는 고아원에 케이크를 보내셨고, 내가 장학금을 받아오면 그 돈을 가난한 아이에게 전달했다. 부모가 생일파티를 해주고, 장학금 없이도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나와 달리, 세상엔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30년간 상임의사로 근무한 이미경(60) 씨는 자신이 가치지향적인 사람으로 성장한 건 평생 나눔을 몸소 실천한 부모 때문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이미경 씨의 꿈은 의사였다. 아버지를 봐도 슈바이처를 봐도 의사는 ‘과정이 아름다운’ 숭고한 직업이었다. 이 씨는 자신이 가진 의술로 아픈 이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그들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의사가 되고자 마음먹었다.


가톨릭의대와 인턴과정을 마친 후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고 이미경 씨는 재활의학과를 택했다. 장애인들이 기능회복을 하는 데 재활의학과 의사에게 중요한 역할이 있는 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1980년대 초는 재활의학과가 생긴지 얼마 안 된 때라 의사들조차 재활의학과가 무슨 과인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위험부담이 없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한 동기들은 인기 없는 재활의학과를 택한이 씨를 의아하게 여겼다.


가톨릭의대 재활의학과 레지던트 3년차 때교수를 따라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의 순회 진료에 참여했다. 장애인에게 의료적인 부분만 제공하는 병원과 달리 복지관에선 부모교육, 직업재활, 지역사회 연계 등 의료외적인 부분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었다. 복지관에 상임의사가 있는 것도 특별했다. 이미경 씨는 그때부터 전인재활에 조금씩 눈을 떴고 복지관이 바로 자신이 일하고 싶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재활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한 1988년 이 씨는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의 상임의사로 입사한다.


의대에선 주로 소아뇌성마비에 대해 배웠는데, 복지관의 이용자는 소아마비에 국한되지 않고 자폐·지적·언어장애 등 다양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혼자 책을 보면서 공부했지만 계속 그렇게 이어갈 순 없었다. 복지관의 이용자들에게 양질의 재활을 제공하기 위해선 의사로서 함께 일하는 치료사들에게 정확한 슈퍼비전을 줄 수 있어야 했다. 이미경 씨는 복지관에서 근무한 지 4년이 되던 1992년 미국 연수를 떠난다.


1997년 시립서울장애인복지관으로 돌아온 이미경 씨는 미국 연수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의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임상심리사, 특수교사 등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상담, 진단, 치료, 교육 등 재활치료의 전 과정을 팀을 이뤄 접근하는 ‘다영역 진단시스템’을 정립했다.


“장애인이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려면 단순히 기능만 좋아져서는 안 되고 심리·지능·언어·특수교육·직업재활까지 되어야 돼요. 그게 바로 ‘전인(全人) 재활’이에요.”


이미경 씨는 다영역 진단시스템 외에도 특정한 운동패턴을 통해 뇌성마비나 운동기능 장애를 조기 진단할 수 있는 ‘보이타 진단법, 장애아들의 양육자를 아이와 함께 재활치료에 참여시키는 ‘영유아 조기 개입모델, 장애아들의 시각·청각 등 감각조절 기능을 치료해주는 ‘감각통합치료법’을 개발하고 널리 알렸다.


“국내 유일의 장애인복지관 상임의사로 산 30년, 세상의 명예는 없었지만 보람 있고 감사했다”는 이미경 씨. 2018년 6월 정년퇴임했지만 이 씨는 복지관의 요청과 본인의 희망으로 현재 촉탁의사로 계속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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